우리는 많은 이들과 함께 살아가기에 같은 사안에도 다양한 이견이 존재합니다. 여러 의견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갈등과 함께 지냅니다. ‘VS를 넘어서’는 사회의 다양한 갈등 상황을 짚어보며 충돌과 대립을 넘는 논의의 출발점이 되고자 합니다. 이번 호 사회부에서는 젠더를 둘러싼 갈등을 살펴봅니다. 젠더갈등은 인터넷 기사,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쉽게 나타납니다. 이에 비해 실생활 대화 속에서는 관련 이야기를 꺼내기 조심스럽죠. 온라인상에서와 실생활 대화 간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회부는 온라인과 현실의 젠더갈등을 비교하고 현실에서 건전한 논의가 이뤄져야할 방향을 분석해 봤습니다. 조현덕 기자 ducko3o@cauon.net

 

사회부는 10대부터 30대의 청년을 대상으로 지난 5월 23일부터 5월 26일까지 젠더갈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응답한 122명 중 117명(약 95.9%)은 젠더갈등이 온라인을 통해 많이 표출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에서 젠더갈등은 이전부터 꾸준히 관찰된 문제다. 200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온라인상의 젠더갈등을 들여다보고 양극단의 의견이 과잉대표되고 있는 현실을 짚어봤다.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젠더갈등

  웹 기반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2000년대 초에 등장해 사용자의 익명성과 함께 여러 관심사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사이트가 급속도로 많이 생겨나며 누구나 간단한 사이트 가입만으로 커뮤니티 개설과 가입을 할 수 있게 됐다. 온라인 공간의 발달로 같은 관심사, 연령, 성별을 가진 사람이 모여 일종의 건전한 모임, 공론장을 형성했다.

  1999년 카메라 정보 및 사진 공유를 목적으로 시작한 ‘디시인사이드’와 2009년 연애, 취미, 쇼핑 등 여성 간 관심사를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여성 전용 커뮤니티 ‘여성시대’, 2009년 디시인사이드의 일간 베스트 게시물을 모아 저장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일베저장소(일베)’ 등이 설립됐다. 이러한 커뮤니티들은 다양한 관심사의 사람들이 생각을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점차 ‘김치녀’, ‘한남충’ 등의 단어를 스스럼없이 쓰며 본래의 목적을 잃고 상대 성별에 대한 혐오의 장으로 변모했다.

  젠더학을 전공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한 김현정 석사(워싱턴대 국제대학원 한국학 박사과정)는 “같은 성별이 자주 모이는 커뮤니티에서 각자의 의견이 동일 성별 이용자에게 쉽게 지지받을 수 있다”며 “이에 온라인의 익명성이 더해져 젠더 갈등을 쉽게 표출하는 특징을 보인다”고 온라인상의 젠더갈등을 분석했다. 홍찬숙 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온라인 커뮤니티는 시민적 저항의 공론장으로 작용하기도 했으나 이 안에서의 발언에 대한 사회적 제재나 반성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더불어 온라인에서의 발화 내용은 시간이 지나도 휘발되지 않고 문자로 남아 표현이 점차 극단적으로 변한다”고 지적했다.

  한쪽 성별이 다른 성별에 대한 혐오, 비하 발언을 하는 양상을 보이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젠더갈등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2015년 디시인사이드의 ‘메르스 갤러리’의 시작과 맞물린다. 한국에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일어났을 때 메르스 의심환자인 한국인 여성 2명이 홍콩에서 자가격리 조치를 거부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해당 보도가 시발점이 돼 여러 커뮤니티에서 ‘이기적인 김치녀’, ‘김치녀 때문에 한국에 메르스 퍼진다’라며 여성을 공격하는 혐오성 글이 게재됐다.

  하지만 해당 보도가 오보로 밝혀졌고, 여성들은 메르스 갤러리에 그동안 받았던 혐오표현들을 미러링했다. 당시 메르스 갤러리에선 ‘김치녀’를 미러링한 ‘김치남’ 등을 포함한 글이 여럿 올라왔고 한국의 메르스 첫 감염자가 남성인 점을 들어 이를 비하하는 글도 작성됐다. 일방적인 비난글부터 그동안 당했던 여성 혐오를 토로하는 글까지 메르스 갤러리에 무분별하게 게재됐다. 홍찬숙 연구원은 “남성들이 온라인에서 사용하는 말투를 여성이 미러링하기 시작한 메르스 갤러리 사건 이후로 젠더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며 “해당 사건 이전에는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남성이 일방적으로 여성을 배제하는 분위기가 주를 이뤘지만 이후에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 혐오를 표출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언급했다.

  이후 메르스 갤러리에서 활동하던 이용자 중 일부는 ‘메갈리아’ 사이트를 개설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메갈리아에선 여성혐오 표현에 대해 미러링 전략을 사용했다. 하지만 어린 남자아이를 한남유충이라고 부르는 등 혐오정서가 나타났고 여러 사건을 거치며 분열돼 일부 회원이 워마드를 개설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남초 커뮤니티인 일베저장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김치녀, 맘충과 같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더불어 메갈리아, 워마드 회원에 대한 비하성 표현이 난무했다. 특히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에는 온라인상의 갈등이 현실화돼 일베 회원이 추모 포스트잇을 훼손하기도 했다.

  전문가에게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가 젠더갈등에 미친 여러 영향을 들어볼 수 있었다. 김현정 석사는 “일부 여성 커뮤니티가 극단적 방식의 미러링을 통해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관계임을 강조했다. 남성들은 이에 대해 모든 것이 동등하다면 ‘여성도 군대를 가야한다’, ‘데이트, 결혼 비용을 반반으로 부담해야 한다’ 등의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찬숙 연구원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상대 성별에 관한 막연한 편견과 혐오가 표출될 가능성이 우려된다”며 “이러한 시각의 영향으로 다수의 사람이 양쪽 성별 둘 다 문제라는 양비론적 시각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고 전했다.

  본질과는 점점 멀어지는

  온라인상에서 극단적인 커뮤니티를 통해 젠더갈등이 심화하는 현상을 넘어 양극단의 의견이 한쪽 성별의 의견인 것처럼 과잉대표되는 현상도 보인다. 자체 설문조사에서 ‘젠더에 대한 논의에 양극단의 의견이 과잉대표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약 35.25%(43명)가 매우 그렇다, 약 45.9%(56명)이 그렇다고 응답하며 약 81.15%의 청년이 긍정으로 답했다. 더불어 일부 양극단 커뮤니티의 과잉대표가 온라인상의 젠더갈등에 영향을 미쳤냐는 질문엔 약40.16%(49명)가 매우 그렇다, 약 53.28%(65명)가 그렇다고 응답하며 약 6%를 제외한 청년 모두 긍정으로 응답했다.
 

  과잉대표된 극단적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해당 커뮤니티를 넘어 온라인 전체 분위기, 나아가 사회 전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2021년 1월부터 8월까지 한 남초 커뮤니티에서 언급되는 내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언급 내용은 페미니즘 비판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고 꼴페미, 한남 등의 혐오단어와 함께 여성 징병제에 대한 키워드가 2번째로 많이 검색되기도 했다.

  대중적인 포탈인 네이버에서도 단어 ‘꼴페미’가 사용되는지 빅데이터 분석 사이트 ‘블랙키위’를 통해 알아봤다. 해당 단어는 네이버 블로그·카페·포스트 등에서 26일 기준 지난 한 달간 164개의 게시글에서 사용됐다. 일부 커뮤니티에서 주로 언급되는 단어가 주요 포털에서도 꾸준히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치계에서도 여성 징병에 대해 검토하는 포럼이 열리는 등 일부 커뮤니티의 의견이 대표돼 일반에 널리 알려지고 있다.

  전문가들도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의 극단적인 의견이 젠더갈등의 모든 것으로 과잉대표되는 문제를 지적했다. 김현정 석사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발현되는 젠더갈등이 오프라인에서 여성과 남성이 체감하는 차별과는 거리가 있음에도 그것이 젠더갈등의 모든 것인 양 여겨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홍찬숙 연구원은 “온라인에서는 반성적, 성찰적 주장보다 편 가르기를 할 수 있는 무책임한 발언들이 더 조회수를 높인다”며 “그것에 언론과 정치가 주목하는 순간 과잉대표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미디어와 정치계가 과잉대표된 젠더갈등의 부작용을 심화시킨다고도 언급했다. 김현정 석사는 “온라인에서 과잉대표된 의견이 대중들에게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면 과잉대표된 의견일지라도 결국 젠더갈등의 아젠다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계도 온라인상에서의 젠더갈등 요소를 강조해 선거에 이용하기도 한다”며 “이러한 현상은 온라인상의 젠더갈등이 현실에 쉽게 흡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홍찬숙 연구원은 “오프라인에 온라인의 젠더갈등이 흡수되지 않으려면 언론의 비판적, 성찰적 기능이 살아 있어야 하고 사회적 공론장에서 시민들의 토론과 성찰을 통해 (과잉대표된 극단적인 의견들이) 걸러져야 한다”며 “현재는 오히려 언론과 정치세력이 과잉대표를 통한 정치적 목적 달성에서 더 큰 효용성을 찾고 있어 문제가 크다”고 언급했다. 온라인상에서 젠더갈등이 심화돼 특정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전체 온라인, 그리고 현실에까지 양극단의 젠더갈등이 논의의 전부인 양 대표되고 있다. 이는 젠더에 대한 건전한 해법 모색을 막는다. 편협한 접근에서 벗어나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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