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은 꽃피우는 것. 센스는 갈고 닦는 것.” 양홍석 선수는 센스를 갈고 닦아 프로 무대에서 재능을 화려하게 꽃피웠다. 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적하며 송골매 군단에 합류한 양홍석 선수(생활·레저스포츠전공 17학번)는 다음 시즌 힘차게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그는 중앙대를 거치며 선수가 지녀야 할 책임감을 배웠다고 말한다. 앞으로 무거운 책임감이 그를 짓누를 테지만 열정적인 창원 팬들의 응원에 힘입어 더 높이 뛰어오를 그다. 멋진 플레이로 코트를 뜨겁게 가를 양홍석 선수를 서울캠에서 만났다. 정해균 기자 sun_virus02@cauon.net

사진 정다연 기자
사진 정다연 기자

 

"고등학교엔 응원 문화가 많지 않은데 대학교 올라오니 중앙대 학생분들이 응원을 해주시더라고요. 응원을 듣는 게 너무 신났고 점프도 10cm는 더 높이 뛰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고교무대 NO. 1, ‘올해의 농구인 상’ 고등학생 수상자. 고교 농구 무대를 평정했던 앳된 소년은 청룡 군단의 일원이 돼 코트 위 중앙의 이름을 더욱 빛냈다. 등용문을 거쳐 화려한 청룡이 돼 프로의 무대로 비상한 양홍석 선수(생활·레저스포츠전공 17학번). 이제 프로 무대의 화려한 별이 된 그는 6년간 몸담았던 KT를 떠나 LG에서 또 한 번의 비상을 꿈꾼다. 한국 농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앙대, 그 중앙대의 명맥을 잇는 영건 양홍석 선수를 만나봤다.

  -최근 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적했다.
  “자유계약선수 신분이 되고 창원 LG의감독님부터 관계자분들까지 모두 모여 미팅을 가졌습니다. 그때 저를 진심으로 필요로 한다고 말씀해 주셔서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아요. 저를 어떻게 전술적으로 활용할 것인지 등 향후 계획을 자세히 말씀해 주시기도 했죠. LG에 가면 제가 원하는 농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적하게 됐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6년간 몸담았던 KT에서 나오는 발걸음이 정말 무거웠습니다. 6년 동안 저를 응원해 주신 구단 관계자분들과 팬분들께 다시 한번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적 전 팬 미팅도 가졌던데.
  “팬분들께서 프로 데뷔 2000일을 맞아 팬 미팅을 하고 싶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제가 얼마나 사랑받는 선수인지 알려주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주최는 구단에서 해주셨고 이외 대부분의 기획은 저와 팬분들이 함께 준비했습니다. 영화 <리바운드>도 시청하고 팬분들이 궁금해하셨던 부분을 묻고 답하는 토크 쇼도 진행했죠. 사비까지 들여가며 팬 미팅을 기획한 4명의 팬분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박영민 코치의 권유로 부산 중앙고에 진학했다.
  “전주남중에서 농구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어요. 그때 중앙고 박영민 코치님께서 저를 잘 키워 주겠다고 하셨죠. 농구를 배우기 위해선 대부분의 선수가 서울이나 수도권 고등학교로 진학합니다. 전 박영민 코치님을 따라 부산으로 가게 됐죠.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하는데요. 잘하는 선수라는 이미지를 부산에서부터 갖게 됐기 때문입니다. 박영민 코치님께서 개인적으로도 잘 챙겨주셨고 농구도 정말 잘 가르쳐주셨습니다.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농구를 하라고 지시해주셨어요. 덕분에 제가 몸집이 큰 편에 속하지만 더 다양한 공격 옵션을 갖출 수 있었죠.”

  -부산 생활은 어땠나.
  “운동을 배우기 위해 동생과 함께 부산으로 왔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부산에서 숙소 생활을 했는데 집처럼 편하지만은 않았죠. 그래도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잘 챙겨주셨습니다. 음식이 있으면 저희에게 하나 더 나눠주시고 저희가 외롭지 않게 신경 써 주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부산에서 자라길 잘한 것 같습니다. 학생이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타지에서 할 게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농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기량 발전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동생과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딱히 재밌는 에피소드는 없었던 것 같네요.(웃음) 동생은 농구 선수로서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동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짠해요. 제가 연습할 때 동생이 공도 잡아주며 저를 많이 도와줬어요. 제가 이렇게 인터뷰할 수 있을 정도의 선수가 되기까지 동생의 도움이 정말 큽니다.”

  -‘고교 무대 NO. 1’ 고등학생 양홍석은 어떤 선수였나.
  “저는 고등학교 시절 중 언제가 가장 즐거웠냐는 질문에 1학년 때가 가장 즐거웠다고 답하곤 합니다. 스트레스받지 않고 형들과 어울려 즐겁게 농구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3학년 때는 맏형으로서 팀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중압감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기량 발전을 이뤄내야 하는 시기라 조금 고통스럽게 운동했어요.”

  -고등학생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상대 선수가 있다면.
  “지금은 상무 농구단 소속인 송교창 선수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교창이 형도 고등학생 때부터 유명했죠. 제가 고등학교에 막 입학할 시기에 교창이 형이 제게 ‘너 농구 너무 잘한다’고 한마디를 던진 적 있어요. 그때 막 온몸에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나요.(웃음) 저랑 포지션도 같으니 더 존경했었죠. 막상 매치업 해보니 슛 타점도 높고 빨라서 상대하기 버거웠습니다.”

  -2016년 올해의 농구인 상을 받았다.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1년 동안 가장 잘한 대한민국 농구 선수 딱 한 명에게 주는 상이거든요. 제가 이 상을 타도 되나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어요. 수상을 통해 거만해지기보다는 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죠. 올해의 농구인 상 수상자에 걸맞은 선수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중앙대에 진학한 이유는.
  “연세대, 고려대에서도 스카우트가 왔지만 저는 중앙대가 좋았습니다. 중앙대에서는 더 자유롭게 농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고려대에서 제 이름이 적힌 유니폼까지 제작해 가져오셨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중앙대에 가고 싶었죠. 양형석 중앙대 농구부 감독님과 이름도 비슷하고 체형도 비슷해서 사촌지간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는데요.(웃음) 아는 관계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프로 무대를 모두 밟았다. 언제가 가장 즐거웠는지.
  “대학교 1학년 때입니다. 1학년 때 4학년 형들이랑 함께 뛰었거든요. 주목받으며 경기할 수 있었던 게 너무 재밌었죠. 또 고등학교엔 응원 문화가 많지 않은데 대학교 올라오니 중앙대 학생분들이 응원을 해주시더라고요. 응원을 듣는 게 너무 신났고 점프도 10cm는 더 높이 뛰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웃음) 프로에서도 즐겁게 경기하고 있어요. 다만 프로는 어느 정도 책임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마냥 즐기면서 농구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허훈 선수와 함께 KT의 지명을 받았다. 당시 기분이 어땠나.
  “제가 초등학생 때부터 허훈 선수는 유명했어요.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죠. 중앙고 시절에도 연세대로 전지훈련을 가면 ‘우와 허훈이다’하며 우러러봤던 기억이 있어요. 훈이 형과 함께 지명돼서 너무 기뻤습니다. 옆에서 보고 배우려는 마음에 들뜨기도 했죠. 훈이 형이 1순위로, 제가 2순위로 동시에 같은 팀의 지명을 받았잖아요. 어린 패기로 ‘우리가 한 번 판을 뒤집어보자’ 이런 당찬 포부도 갖고 있었던 게 기억납니다.”

  -KT의 연고지가 부산이던 시절에 중앙고에 자주 갔다고.
  “자주는 아니에요.(웃음) 그래도 가려고 노력했습니다. 부산에 있으니 간간이 후배들 간식이라도 사줄 수 있잖아요. 제가 고등학생일 때도 프로에 있는 선배들이 한 번씩 학교를 찾으면 큰 동기부여가 됐었거든요. 후배들에게 제가 동기부여가 됐을진 모르지만 제가 느꼈던 걸 후배들도 느끼길 바랐습니다.”

  -2018-2019시즌 팬 투표 1위를 하며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얼떨떨했죠. 팬 투표 1위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기회가 올까 싶네요. 허웅, 허훈 형이 있어서 힘들 것 같아요.(웃음)”

  -농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인지.
  “이번 시즌(2022-2023)에 허훈 선수가 입대해서 제가 더 잘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이번 시즌이 큰 벽처럼 느껴졌죠. 하루하루 경기를 뛰고 운동하면서 스트레스도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코치님이나 동료들 얼굴 보기가 부끄러워 피해 다닐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죠.”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외국인 선수들과 더 원활히 소통하기 위해 영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문법보다는 회화에 초점을 맞춰서 공부해왔죠. 또 타지에서 온 외국인 선수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헤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과외를 받으며 예습·복습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아직은 영어가 너무 어려워요.(웃음)”

  -팬분들께 한마디.
  “어린 시절부터 프로구단에 몸담았는데 KT 팬분들께서 정말 잘 챙겨주셨어요. 과분하게 사랑받았다고 생각하고 정말 행복했습니다. 앞으로 만나 뵙게 될 창원 LG 세이커스 팬들께도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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