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는 ‘전시가 끝나고 난 뒤’ 작품과 더 넓은 세상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이번 호 문화부는 <한 점 하늘_김환기> 전시를 통해 아방가르드의 세계를 바라봅니다. 아방가르드는 기성 예술 관념이나 형식을 부정하는 혁신적인 예술 경향을 말하는데요. 한국의 아방가르드를 이끌었던 선구자, 수화 김환기 화백은 한국인의 공유적 정체성과 가치를 담은 여러 작품으로 현재까지도 깊은 울림을 주는 거장이죠.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회고하며 한국 아방가르드 예술이 지나온 길을 함께 걸어봅시다. 엄정희 기자 rlight@cauon.net

‘늦도록 벽화,
달걀 두 개 먹고 종일 제작.
나대로의 그림으로 밀고 가자.’
-김환기의 수첩 中


“새벽부터 비가 왔나보다. 죽을 날도 가까워 왔는데 무슨 생각을 해야되나. 꿈은 무한하고 세월은 모자라고.” 1974년 6월 16일 일기 속 김환기는 자신의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예감했다. 유한한 세월에 무한한 꿈을 품었던 김환기는 옅어져 가는 시간에도 여전히 붓을 잡았던 것이다. 그의 예술이 총망라된 호암미술관의 <한 점 하늘_김환기> 전시는 김환기의 예술이, 그리고 꿈이 지닌 힘을 보여준다.

  시대를 막론하는 낙천가
  김환기는 한국 아방가르드의 선구자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다. 그의 40여 년의 예술세계는 동경·서울 시기, 파리·서울 시기, 뉴욕 시기로 구분된다. 1933년부터 1956년까지의 동경 시기는 김환기의 아방가르드 예술에 대한 탐색이 본격화된 시기였다. 그는 미술 공부를 위해 일본 유학의 길에 올랐다. 도쿄 니혼대학의 예술과에 입학한 그는 서양화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김환기의 등단작이라고 할 수 있는 <종달새 노래할 때>는 고향에 있는 여동생을 모티프로 삼아 그려졌다. 이 작품은 기하하적 화풍이 짙음에도 김환기의 낭만을 여실히 드러낸다. 태현선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은 <종달새 노래할 때> 등단의 의미를 설명했다. “당시 김환기는 ‘이과전’이라는 일본의 전위적인 전람회에 해당 작품을 내놓았습니다. 1930년대 조선은 일제 식민지였죠. 그런 시기에 일본 본토에서 조선 화가의 작품이 입선됐다는 소식은 국가적으로 큰 이슈였습니다.”

  1937년, 김환기는 일본 유학 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1944년, 서울에서 예술을 이어가던 그는 아내 김향안과 결혼을 하게 된다. 김향안은 김환기의 작고 이후 그의 작품을 모으고 관리하였고 ‘환기미술관’을 건립하여 후대인들이 김환기의 작품과 그의 기록, 예술세계를 탐색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55년 김환기는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 김향안을 따라 세계 미술의 중심지인 파리로 걸음을 옮겼다.

좌측의 '영원의 노래'는 김환기가 파리에서 생활했을 당시 그린 작품이다. 파리에서 생활하면서 작품 소재는 달항아리에서 벗어났지만, 구름, 산, 사슴 등의 십장생과 같은 한국적인 요소는 더욱 짙어졌다. 우측의 '여인들과 항아리'는 대작 중의 대작이라고 평가된다. 가로 5m, 세로 3m로 웅장한 크기의 작품에는 자신의 예술세계에 관한 김환기의 고뇌와 숙고가 오롯이 담겼다. 사진제공 호암미술관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좌측의 '영원의 노래'는 김환기가 파리에서 생활했을 당시 그린 작품이다. 파리에서 생활하면서 작품 소재는 달항아리에서 벗어났지만, 구름, 산, 사슴 등의 십장생과 같은 한국적인 요소는 더욱 짙어졌다. 우측의 '여인들과 항아리'는 대작 중의 대작이라고 평가된다. 가로 5m, 세로 3m로 웅장한 크기의 작품에는 자신의 예술세계에 관한 김환기의 고뇌와 숙고가 오롯이 담겼다. 사진제공 호암미술관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괴롭지만, 그래도
  김환기는 파리에서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접하고 또 교류하면서 자기 예술의 정체성을 탐색했다.

  “내 예술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소. 여기 와서 느낀 것은 시정신이오. 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 할 것 같소. 거장들의 작품에는 모두가 강력한 노래가 있구려. 지금까지 내가 부르던 노래가 무엇이었다는 것을 나는 여기 파리에 와서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소. 밝은 태양을 파리에 와서 알아진 셈.” -1957년 7월 1일 김환기-

  그의 탐색이 도달한 곳은 ‘한국적인 것’이었다. <영원의 노래>는 한국 화가로서의 정체성과 예술성을 굳건히 하고자 하는 김환기의 의지가 담긴 중요한 작품이자 대표작이다. 작품 속 수평과 수직이 교차하는 격자에는 구름과 산, 물, 사슴, 학 등의 십장생과 같은 한국적인 도상과 자신을 표현하는 도자기, 매화, 달 등 다양한 요소가 배치되어 있다.

  오승진 교수(광주여대 상담심리학과)는 이처럼 김환기가 한국적인 예술을 그려낸 이유에는 그의 개인사와 더불어 역사적 사건이 개입한다고 전했다. “1913년 태어난 김환기는 광복과 6·25전쟁 등의 역사적 혼란기를 겪었습니다. 일본으로의 유학, 프랑스와 미국에서의 체류 등 공간적 이동도 많았죠. 이런 타향 생활이 그에게 그리움이라는 주제에 몰두하게 했고 이러한 그리움이 한국적인 소재들을 통해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후기 작품에서는 한국적인 형태는 많이 사라지지만 색채와 제목을 통해 여전히 한국적 성격이 드러나죠.”

  창작이라는 행위는 늘 고통을 수반한다. 회화에서도 하나의 붓 터치에 앞서 수없이 많은 고민과 괴로움이 작가를 관통한다. 삼호그룹 정재호 회장에게 거금을 받고 가로 5m, 세로 3m라는 엄청난 크기의 작품 의뢰를 받은 김환기도 작품을 그리며 고뇌에 휩싸였다.

  “늦도록 벽화. 달걀 두 개 먹고 종일 제 작. 나대로의 그림으로 밀고 가자.” -1960년 김환기-

  오랜 숙고 끝에 자신만의 예술을 하고자 마음을 정한 김환기는 <여인들과 항아리>라는 대작이자 걸작을 완성해냈다. 수 많은 고민 끝에 도달한 결론으로 김환기는 해당 작품에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그대로 담았다.

  1963년 김환기는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해 명예상을 수상했다. 그는 같은 대회 대상 수상자인 미국 화가 아돌프 고틀리브의 작품을 보며 현대 미술의 중심지로 부상하는 뉴욕으로의 행선을 결정했다. 1963년, 그렇게 김환기는 또다시 한국을 떠났다. 고향에서 머나먼 뉴욕은 그에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방아쇠였다.

  점화는 김환기 예술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에 있는 사람들을 추억하며 하나하나 점을 찍어나갔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IV–70 #166>는 세상에 나온 김환기의 첫 전면점화 작품이다. 김환기는 친우였던 시인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작품을 통해 노래했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고, 면이 모이면 입체가 된다. 김환기는 도형의 기초가 되는 점, 선, 면을 유랑하다 점에 정착했다. 김환기의 점화를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IV–70 #166'에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 별을 노래한 시정(詩情)이 녹아들어 있다. 사진제공 호암미술관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고, 면이 모이면 입체가 된다. 김환기는 도형의 기초가 되는 점, 선, 면을 유랑하다 점에 정착했다. 김환기의 점화를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IV–70 #166'에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 별을 노래한 시정(詩情)이 녹아들어 있다. 사진제공 호암미술관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그의 예술에 젖다
  20세기를 살아온, 20세기를 그리워하며 점을 찍었던 김환기의 예술은 한 세기가 지난 21세기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오승진 교수는 김환기의 작품이 오늘날 여전히 높게 평가되고 또 사랑받는 이유를 설명했다. “김환기는 추상을 도입하면서 한국 현대 미술에 혁신을 가져왔죠. 또한 그의 작품에는 그리움, 고향, 조국이라는 일관된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이에는 한국인의 공유적 가치와 정체성이 잘 표현돼 있습니다. 이런 작품이 우리 내면에 있는 감정의 현을 울리기에 김환기가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사랑받는 것이죠.”

  관람객 김명선씨(54)는 이번 전시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후기를 전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김환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갔는지 볼 수 있었어요. 또한 개인 소장으로 잘 전시되지 않던 작품까지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데요. 이번 전시를 놓치면 절대 안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관람객 최미옥씨(49)는 이번 전시 속 김환기의 점화에 관한 감상을 남겼다. “김환기 작품이 이렇게 대규모로 모인 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다양한 작품을 통해 초기 작부터 최근작까지 작업 변천사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Universe 5-IV-71 #200>는 두 점화가 하나가 되는 작품인데 서로를 완성시키는 느낌이 좋았어요. 한마디로 김환기의 점은 하늘이고 바다이고 우주였습니다.”

  한국 아방가르드의 선구자이자 늙지 않는 꿈을 지녔던 김환기는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자신의 예술 정신을 고수했다. 그는 어디에 있든 늘 고향을 그리워하며 붓을 들었다. 점이 모이고 선이 모여 탄생한 그의 작품이 들려주는 노래는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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