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 읽지 않은 책들과 쓰지 않는 펜들이 가득하다. 잘 읽고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의 잔해들이다. 책과 펜을 소유하는 일로 잘 읽고 잘 쓰는 일을 대신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모으고 채우기보다는 버리고 비워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지금은 모두 잃었지만, 아끼고 사랑한 책과 펜이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끼고 사랑한 책들과 펜들이다. 부친이 국민학교 4학년 때 사주신 50권짜리 계몽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과 이모가 중학교 입학 선물로 사주신 ‘파카 45 만년필’과 ‘파카 조터 볼펜 샤프 세트’가 그것들이다. 책과 펜이 귀한 시대여서, 그 책들을 읽고 또 읽고 그 펜들로 쓰고 또 쓴 기억과 감각이 생생하다. 그 책들과 펜들은 내 존재의 일부가 되었다. 버리고 비워 모으고 채울 수 있었다. 

  욕망의 대상을 찬찬히 그리고 꼼꼼히 들여다보면 욕망의 실체와 만난다. 내가 새 책과 새 펜에 집착한 진짜 이유는, 잘 읽고 잘 쓰고 싶기 때문이다. 잘 읽고 잘 쓰기 위해서는, 정당하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열심히 읽고 써야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어렵고 힘든 일을 피하고 책과 펜을 소유하는 쉽고 편한 일을 택했다. 이처럼 욕망의 실체를 알면, 욕망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다. 반성과 성찰의 힘이다. 이러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나는 부끄러움을 배우고 소유의 삶에서 존재의 삶으로 조금 더 나아간다.  

  윤동주 시에 등장하는 시적 대상은 시적 주체를 반성과 성찰로 이끈다. ‘하늘’<서시>, ‘별’<별 헤는 밤>, ‘십자가’<십자가>, 우물<자화상>, ‘구리 거울’<참회록>, ‘백골’<또 다른 고향>이 그러하다. 그리고 이러한 반성과 성찰의 처음과 끝에 ‘부끄러움’이 놓여 있다. 윤동주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랬다. 부끄러움에서 시작된 삶은 부끄러움 없는 삶으로 완성된다.   

  1974년에 발표된 박완서의 단편 소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은 여전히 큰 울림을 준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나는 각종 학원의 아크릴 간판의 밀림 사이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펄러덩펄러덩 훨훨 휘날리고 싶다. 아니, 굳이 깃발이 아니라도 좋다. 조그만 손수건이라도 팔랑팔랑 날려야 할 것 같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고. 아아, 꼭 그래야 할 것 같다. 모처럼 돌아온 내 부끄러움이 나만의 것이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나의 부끄러움이 모두의 부끄러움이 될 때, 분명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다.  

  한자어 염치(廉恥)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염치에서 얌체가 나왔다. 얌체는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을 얕잡아 부르는 말’이다. 염치가 없으면 얌체가 된다. ‘뻔뻔하다’는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염치없이 태연하다’는 형용사다. 얌체는 뻔뻔하다. 뻔뻔한 얌체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매일 부끄러움을 배워야 한다. 
 

류찬열 교수
교양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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