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소외의 현실을 화폭에 담은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 그가 조명한 도시의 씁쓸함은 백여 년이 흘러 오스트리아 영화감독 구스타프 도이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인간의 본연적인 고독이 화폭을 넘어 스크린으로 옮겨왔을 때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을 통해 살펴봤다. 

  회화가 영화가 될 때 
  ‘오마주(Hommage)’는 프랑스어로 존경과 경의, 감사라는 뜻을 지닌 말로, 영화에서 종종 활용되는 기법이다. 어원이 의미하는 바처럼 오마주란 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 자신이 존경했던 작가나 영향을 받은 작품에 보내는 일종의 헌사로서 작품의 특정 장면을 빌려오는 것을 뜻한다. 

  도이치 감독이 오마주를 통해 존경을 표한 대상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이었다. 현대인의 존재론적 결핍이 담긴 호퍼의 회화는 영화 속 한 도시 여성의 고독한 인생을 통해 처연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재현된다.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은 격동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에 그러한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이야기를 입힌 수작이다. 도이치 감독은 호퍼의 회화를 완전히 영화에 되살리는 동시에 연극배우 ‘셜리’라는 인물의 삶으로 현대인의 고독을 이야기한다. 
 
  도이치 감독은 무엇보다도 작품 속 정지된 인물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것에 몰두했다. ‘타블로 비방’은 살아있는 그림이라는 의미의 오마주 형식으로, 배우들이 회화의 한 장면을 흉내 내는 연출 스타일을 일컫는다. 이진영 동문(중앙대 영상학 박사)은 해당 영화가 취하는 타블로 비방의 연출에 관해 설명했다.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은 사건을 풀어나가는 서사성을 강조하기보다 호퍼의 회화를 있는 그대로 재현해 내는 것에 집중합니다. 이는 영화의 형식만을 빌린 회화의 연장선이라고 느낄 정도죠. 이러한 특징은 영화에서 인물 간의 대사가 거의 없다는 점, 3차원적 공간 배경을 기존 회화의 2차원적 평면처럼 구현한 점 등을 통해 두드러집니다.” 

  <셜리에 관한 모든 것>에 사용된 그림들은 <Hotel Room>(1931)부터 <Chair Car>(1965)까지 총 열세 편이며 총 30년에 걸쳐 그려졌다. 그렇기에 회화의 재현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서사에 담아내는 것 또한 관건이었다. 조혜정 교수(문화콘텐츠전공)는 도이치 감독이 다양한 방식으로 회화 속 긴 시간을 개인의 서사에 녹여냈다고 전했다. “회화의 장면이 곧 영화의 씬(scene)이 되기에 서사가 단조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서사적 제약을 보완하기 위해 음성 효과를 활용했는데요. 셜리가 즐겨 듣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음성과 음악은 당시의 사회상을 풍성하게 되살리며 부족한 서사를 보완해 줍니다.” 

사진출처 다음 영화
사진출처 다음 영화
사진출처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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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를 거슬러 이어진 마음 
  도이치가 호퍼의 회화를 빌려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가속화되는 현대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사람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아간다. 이러한 현실은 곧 호퍼가 선택한 회화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이는 도이치에 의해 현대 사회의 격동기 속을 살아가는 셜리의 고뇌로 이어진다. 금융 시장이 붕괴되는 불안정한 경제 상황과 메커니즘 광풍으로 동료 간 밀고가 횡행하던 시대의 배덕 속에서 셜리는 상실과 불안을 겪는다.  

  조혜정 교수는 도이치가 고독을 효과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호퍼의 회화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영화에서 오마주 된 호퍼의 회화에는 공허와 고독에 포위된 한 여성이 등장하고, 이 인물은 타인과 같은 공간에 있을 때조차 그들과 눈을 마주하지 않습니다. 또한 작품 속 명암의 대비와 관객의 시선에서 인물을 거리감 있게 배치하는 형식은 고립의 분위기를 심화하죠. 이러한 호퍼의 회화를 완벽히 재현한 해당 영화는 이러한 호퍼의 작품 세계를 확대해 고독의 정서를 더욱 생생히 전달하고자 했을 겁니다.”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은 화폭을 넘어 스크린을 통해 현대 사회의 고독과 인간 본연의 쓸쓸함을 조명한다. 보이지 않는 고독에 생기를 불어넣을 순 없기에 고독을 그린 그림에라도 숨을 불어넣었던 도이치. 시대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본연적인 고독에 눈을 맞춘 호퍼와 도이치의 작품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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