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을 주기 위해 고민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선물 받는 것만큼이나 설레고 행복한 일이 선물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김부섭 현대병원장(의학과 81학번)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의 기쁨이 크다고 말했다. 의료봉사와 기부라는 선물을 주기 위해 그가 고민하고 노력한 시간, 선물 받은 이의 얼굴을 보며 느꼈을 감정이 그에게는 모두 행복으로 다가왔으리라. 그는 중앙대를 포함한 다양한 곳에 오랜 기간 기부를 이어왔다. 우리 모두 그에게 큰 선물을 받은 셈이다. 김부섭 동문은 봉사를 고민하는 이가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정해균 기자 sun_virus02@cauon.net

사진제공 현대병원
사진제공 현대병원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상상해 보라. 그 속에 작은 빛은 누군가에게 등대이자 희망이다. 하지만 태양이 작열하는 가운데 작은 빛은 수많은 빛 중 하나가 된다. 어둠 속에선 잠연히 주변을 밝히고, 빛으로 가득 찬 곳에선 그 속에 스며들어 묵묵히 일을 해내는 이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이들의 미래에 빛을 더하는 김부섭 동문(의학과 81학번)을 만나봤다.

  -중앙대 의대에 진학해 정형외과학 석·박사 과정까지 밟았다. 
  “재수 시절 삶과 죽음, 인간의 본질을 고민했습니다. 의학을 공부하면 인간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죠. 당시 타대 의대도 합격했었는데요. 다수의 친구와 선후배가 재학 중이던 중앙대를 선택해 진학했습니다.
  학문은 창조적으로 계속 탐구할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형외과학이 바로 그런 학문이었죠. 정형외과학은 특정 질병에 대한 치료법이 고정돼 있지 않습니다. 골절됐을 때 깁스를 할 수도, 수술할 수도 있고 수술이 불가할 경우 증상을 치료하며 호전을 기대하는 방법도 있죠. 다양한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점에 흥미를 느껴 이 분야를 전공하게 됐습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12월, 자발적으로 병상을 제공했다고. 
  “코로나19 확산 전부터 감염병 환자 수용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 당시 감염병에 대처하기에 병원시설이 턱없이 부족함을 깨달았어요. 이에 2020년 3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병원 본관 7층에 감염병 환자를 분리·수용해 치료하는 음압격리 병동을 조성해 놓은 상태였죠. 다른 병원에는 관련시설이 부족했기에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을 자처하게 됐습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어요. 감염병 환자를 받으면 다른 환자들이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병원이 망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죠. 한 치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만큼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직원들과 함께 노력했습니다.”

  -2021년 전국 지역응급의료센터 평가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코로나19 최종 치료와 지역 내 응급환자를 부담하는 비율이 높아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지역내 권역응급의료센터가 문을 닫거나 병상이 부족한 상태가 이어져 현대병원으로 환자가 몰렸는데요. 몰려드는 환자 중 코로나19 환자를 구분하기 위해 응급실 내 음압병실을 새로 조성했습니다. 품귀현상으로 구하기 어려웠던 인공호흡기와 인공신장기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기도 했죠. 당시 모든 직원이 매달려 일했어요. 오전 7시 30분쯤 출근해 오후 10시 넘어 퇴근하는 생활을 약 3년 동안 반복하다 보니 체중이 약 10kg 줄기도 했습니다.(웃음)”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재난 상황이니 이것저것 생각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병원에 환자가 오는데 의사가 치료하지 않고 돌려보낼 순 없잖아요. 직원들에게도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게 아니니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감으로 치료하자’고 말했죠. 우리 병원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찾아오는 환자를 모두 받아 치료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원칙대로 하자’. 김부섭 현대병원장의 병원 경영 철학이다. 그의 눈빛에서 단단한 심지를 엿볼 수 있다. 사진제공 현대병원
‘원칙대로 하자’. 김부섭 현대병원장의 병원 경영 철학이다. 그의 눈빛에서 단단한 심지를 엿볼 수 있다. 사진제공 현대병원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그들을 따라 봉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1998년 현대병원 개원 후 매주 수요일마다 오전 진료를 마치고 병원 주변 장애인 시설 등에서 봉사했는데요. 그곳에서 함께한 봉사자들을 따라 국내외 봉사에 활발히 참여하면서 봉사의 재미를 깨달았죠.”

  -오랜 기간 몽골과 카자흐스탄에서 봉사했다고. 
  “몽골은 의료환경이 아주 취약합니다. 그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과거 미국이 우리나라의 의료분야가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해줬듯 말이죠. 몽골과 카자흐스탄의 의료인을 한국에 초청해 4~6개월간 연수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2014년에는 매주 몽골로 의료봉사를 갔는데요. 금요일 오전 진료를 마치고 몽골로 가 3일간 수술을 진행한 후 월요일에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몽골에서 절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죠.
  우리나라의 의료봉사는 주로 일회성으로 진행되곤 해요. 전 그런 봉사에서 진실성을 느끼지 못했어요. 적어도 10년은 그 국가에서 정기적으로 봉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은 몽골에 가 이렇게 말했어요. ‘10년 동안 봉사하며 너희를 가르칠 테니 10년 후에는 너희도 다른 나라에 가 그들을 도우라’고 말이죠. 2018년에는 몽골에서 가르친 제자들과 함께 카자흐스탄으로 의료봉사를 가기도 했습니다.”

  -바쁜 봉사 일정으로 가족들에게 소홀해지지는 않나. 
  “여름에 해외 봉사를 떠날 땐 가족과 함께 가는데요. 8~9일 동안 24시간 붙어 지내며 함께 봉사합니다. 이후엔 ‘2009년에 어느 국가를 갔었지’, ‘2010년에 봤던 별이 아름다웠지’와 같은 대화를 나누며 그 순간을 추억하기도 하죠.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서로에 대한 이해심이 많아집니다. 가족들끼리 잠깐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재미와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봉사하죠. 기부금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고 봉사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잠을 줄이다 보면 삶에 대한 태도가 진지해집니다.”

  -‘빛도 소리도 없이’ 봉사한다고. 
  “한 비영리단체(NGO)의 ‘빛도 소리도 없이 봉사하라’는 슬로건이 참 좋더라고요. 일부 NGO는 진정성 없이 빛과 소리만 많이 내는 것 같기도 해요.(웃음) 봉사하는 사진만 찍고 정기적으로 봉사를 진행하지 않는 모습에 실망감을 느끼기도 했죠. 그래서 묵묵히 봉사만 하자는 생각으로 ‘작은빛’이라는 봉사단을 만들었어요. 작은 빛은 더 환한 빛이 있을 때는 스스로 밝기를 낮춰 튀지 않도록 합니다. 하지만 빛이 없는 곳에서는 스스로를 태워 주변을 밝히죠. 그런 마음으로 봉사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중앙대에 약 55억을 기부했다. 
  “의학과 81학번은 모두 장학생으로 입학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낸 돈으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에 항상 마음의 빚이 있었죠. 
  대학에 다니며 교수님들로부터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학문을 배웠기에 현재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공부할 기회를 제공해 준 장학금에 대한 고마움을 갚고 저 역시 다음 세대에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사회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었어요.”

  -꾸준히 나눔을 실천하기가 어렵진 않은가. 
  “어려운 건 없습니다. 내가 재미있고 보람을 느껴 봉사하는 거니까요. 기부하기 위해 돈을 더 벌고 봉사하러 가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잠을 줄이다 보면 삶에 대한 태도가 진지해지는 것 같습니다. 엉뚱한 행동을 하지 않고 열심히 살게 되죠.”

  -봉사의 매력은. 
  “봉사는 타인이 아닌 자신을 돕는 겁니다. 중앙대에 제 이름을 딴 ‘김부섭 장학기금’이 있는데요. 갖가지 사연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고 학업을 지속하는 모습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런 기쁨의 순간이 조금씩 모이다 보면 어느 순간 행복에 도달할 수 있죠. 행복은 살면서 순간순간 느끼는 자그마한 기쁨들의 집합이에요. 돈과 시간이 많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죠.
  봉사자들 사이에 껴 봉사하다 보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봉사하길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앞으로의 봉사계획이 궁금하다. 
  “2028년까진 카자흐스탄에서 봉사하려고 합니다. 70살이 되기 전까지는 지금과 같은 삶을 이어가고 싶죠. 그 이후에는 다른 사람들이 봉사를 이어 나갈 수 있도록 틀을 잘 짜놓으려고 합니다. 그러곤 다른 사람들이 더 봉사할 수 있도록 저는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순리라고 생각해요.”

2022년 카자흐스탄에서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김부섭 현대병원장의 모습이다. 사진제공 현대병원
2022년 카자흐스탄에서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김부섭 현대병원장의 모습이다. 사진제공 현대병원

  -대학생 김부섭에게 하고 싶은 말은. 
  “대학생 때 다양한 것들에 도전했더라면 삶의 깊이가 더욱 깊었을 것 같습니다. 의대 학생뿐만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공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공부가 삶의 전부가 될 수 없습니다. 눈앞에 있는 일에만 열중하다 보면 편협한 시각을 갖게 되죠. 당시에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다양한 경험을 쌓지 못한 게 정말 아쉽습니다.”

  -당신에게 중앙대란?
  “소중한 인연을 맺게 해준 존재입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잖아요. 중앙대를 졸업해 동문으로서 활동하고 교류하는 것들이 삶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라 생각하는데요. 중앙대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고 사회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죠. 삶을 살아가는 힘을 배울 수 있어 항상 고마운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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