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는 ‘전시가 끝나고 난 뒤’ 전시회 작품과 더 넓은 세상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이번 호 문화부는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를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호퍼는 풍요로운 대도시 속 고독함에 눈길을 두었는데요. 20세기에 그려진 작품이지만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그의 그림 속 도시의 고독은 그대로인 듯하죠. 그래서일까요? 호퍼의 작품은 오늘날까지 다양한 예술 장르에 영감을 주며 오마주로 회자되고 있죠. 호퍼가 바라본 세상, 그에 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 봅니다. 엄정희 기자 rlight@cauon.net

도시의 한쪽에는 시끌벅적한 차의 경적과 사람들의 말소리와 같은 소음이, 한편에는 고요하면서도 무겁게 깔리는 듯한 적막이 흐른다. 밤에도 빛나는 대도시의 빌딩은 고요한 밤을 맞이하려는 곳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에드워드 호퍼는 이러한 도시의 빛과 그림자를 바라봤다. 빛을 따라, 그림자를 따라 걸어온 호퍼의 길에는 물감과 흑연이 무수히 묻어 있다.
  
  에드워드 호퍼, 그의 길을 따라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나라였던 미국. 그 속에서 발전을 이룩한 뉴욕은 점차 대도시로 변했다. 자신의 고향이 점차 발전하는 과정을 바라본 호퍼는 자본이 주는 풍요로움보다는 미국 도시민이 지닌 고독감과 절망감에 주목했다. 이에 대도시와 고독은 호퍼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호퍼는 대도시라는 공간 속 인간이 느끼는 고독을 표현하기 위해 빛과 그림자를 이용했다. 작품 속 공간은 광활하면서도 명암 대비를 통해 명확히 분리된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작품에서 어두워진 바깥과 달리 밝은 조명이 켜진 가게의 모습은 이러한 분리를 명확히 보여준다.

  <비스트로 또는 와인 가게>와 <서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 등의 작품에 서 드러나듯 호퍼는 관찰을 통해 그림을 그려냈다. 이번 전시를 담당한 이승아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호퍼의 시선이 머문 곳에 관해 설명했다.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은 ‘무관심으로 흘려버리는 평범한 것’에 머물렀습니다. 쉽게 볼 수 있는 대상과 공간을 세심히 관찰해 포착한 현실을 호퍼 특유의 빛과 그림자, 대담한 구도 그리고 시공간의 재구성 등을 통해 작품으로 구현했죠.”

  긴 무명 시기를 보낸 호퍼를 일으킨 것은 아내 조세핀이었다. 이승아 학예연구사는 호퍼에게 있어 아내 조세핀의 의미를 설명했다. “호퍼는 조세핀의 권유로 수채화를 시작했습니다. 호퍼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 모델은 조세핀이죠. 조세핀은 그의 매니저 역할도 수행했으며, 호퍼가 사망한 이후 거의 2500여 점에 달하는 호퍼의 작품과 자료 일체를 휘트니 미술관에 기증하기도 했는데요. 조세핀은 호퍼에게 영감의 원천이었을 뿐만 아니라 호퍼의 예술에 있어 가장 큰 동반자였을 겁니다.”

  캔버스의 멜랑콜리(Melancholy)
  호퍼는 뉴욕, 케이프코드, 파리 등 여러 곳을 다니며 눈에 담긴 장면을 캔버스에 옮겨왔다. 그중에서도 파리는 호퍼에게 뉴욕만큼이나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비슷한 건물들이 즐비한 미국과는 달리 자연과 건축물이 공존하는 파리의 풍경에 호퍼는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는 카페에 앉아 있거나 길을 걷는 파리지앵의 일상을 관찰하고 수채화로 그려냈다. 호퍼가 파리 근교에 체류할 당시 그린 작품 <카페에서>에서 카페에 앉아 음료 한 잔을 즐기고 있는 파리지앵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좌측은 에드워드 호퍼의 '자화상', 우측은 '카페에서'다. 호퍼는 파리지앵을 관찰하며 수채화 캐리커쳐를 그렸다. 사진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좌측은 에드워드 호퍼의 '자화상', 우측은 '카페에서'다. 호퍼는 파리지앵을 관찰하며 수채화 캐리커쳐를 그렸다. 사진제공 서울시립미술관
'푸른 저녁'의 가운데에 있는 매춘부와 피에로는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들은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진제공 서울시립미술관
'푸른 저녁'의 가운데에 있는 매춘부와 피에로는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들은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진제공 서울시립미술관

 

  <푸른 저녁>에는 인물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묘사하는 호퍼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그림 속 어두우면서도 푸른 저녁 시간대 파리의 카페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들어 있다. 왼쪽의 노동자와 중앙의 매춘부, 광대, 오른쪽의 부르주아 남녀 등. 일본식 램프의 조명을 받는 그들은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수직 기둥은 관람객과 인물들을 나누는 은유적 장치가 된다. 해당 작품은 인물들의 단절적 관계와 심리적 풍경 묘사라는 호퍼의 성숙기 회화의 속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20세기의 호퍼는 21세기에도
  20세기에 그려진 호퍼의 작품은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사람들에게 많은 여운과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호퍼는 작품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하지 않았기에 그의 작품들은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관람객 장미경씨(53)는 호퍼의 작품을 보고 느낀 감정을 나눴다. “에드워드 호퍼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것 같아요. 그의 작품은 난해하지 않으면서 뭔가 가슴 서늘한 느낌을 주죠. 도시의 느낌을 잘 살린 친근하면서도 낯선 느낌이 좋았습니다.”

  관람객 김연정씨(40)는 작품에서 그림을 넘어선 장면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와이오밍의 조>라는 작품을 보고 조세핀과 호퍼 두 사람의 모습이 바로 연상됐어요. 그림을 그리는 조세핀과 그런 조세핀을 그리는 호퍼.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심취한 모습과 상대방을 존중하는 배려가 느껴지는 작품이라 좋았습니다.”

  전시 구성에 대한 의견도 있었다. 관람객 박세희씨(31)는 이번 전시가 대표작뿐만 아니라 호퍼의 습작을 보여줘서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호퍼의 많은 습작을 보며 천재적인 그의 작품이 단기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표작만 보면 그림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잊곤 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그 과정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호퍼는 빛과 그림자를 통해 고독감뿐만 아니라 세상 그 자체를 바라봤다. 21세기의 우리는 20세기를 살아간 호퍼의 작품 속에서 현재를 발견한다. 한 세기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세상에는 빛과 그림자가 존재한다. 바쁜 도시 속 고독도 여전하다. 시간을 관통하는 그의 작품을 바라보며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음미하길 바란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