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마다 달라졌던 죽음의 관념
삶에 가치를 불어넣는 죽음 
 
“무(無)가 존재를 결정한다” 
인간의 마지막은 어떠해야 하는가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말했다. “죽음은 씨앗과 같다” 과육을 다 먹고 나면 씨앗만이 남지만 그 씨앗은 다시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킨다. 그의 말처럼, 죽음은 죽음 그 자체에 머무르지 않는다. 필연적인 인간의 본질로서 자리한 죽음은 늘 삶에 대한 논의를 탄생시켜왔다. 

  시대를 따라 톺아보는 죽음 
  죽음이 존재하지 않은 시대는 없었다. 그 어떠한 조건도 죽음 앞에서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러한 죽음의 부동(不動) 앞에서 사람들은 시대에 따라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어 가며 삶과 죽음이란 문제를 고찰했다. 

  고대 사람들에게 죽음은 겁낼 필요가 없는 대상이었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몸과 영혼이 한 덩어리가 되어 깊은 잠을 빠져드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대의 죽음관은 이집트 미라 풍습에 여실히 담겨있다. 미라는 곧 두 번째 삶인 부활의 때를 기다리며 영혼과 함께 육신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제작됐다. 우리는 이러한 고대인의 사고를 통해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는’과 같이 미라를 표현하는 수식어로 쓰이는 말의 연원을 알 수 있다. 

  점차 지배와 투쟁의 시대로 접어들며 고대에서의 죽음은 명예로움과 같은 사회적 가치와 함께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양상은 고대 게르만족의 영웅서사 문학 작품인 『니벨룽겐의 노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창복 명예교수(한국외대 독일어과)는 해당 작품에서 죽음은 특정한 사회적 가치를 위해 충분히 감수할 만한 대상으로 여겨졌다고 전했다. “『니벨룽겐의 노래』에서 전쟁에 나가는 영웅은 운명의 섭리인 죽음에 스스로 뛰어드는 양상을 보입니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영웅에게 있어 죽음이란 자기 삶의 최고의 순간으로 인식됐죠.” 

  명예로서의 죽음을 중시했던 고대와 달리 중세에 들어 죽음은 공포의 대상 그 자체가 됐다. 15세기 중세 시대 죽음관 표현의 압권은 단연 죽음의 무도라 불리는 예술적 모티프였다. 죽음의 무도는 해골들이 사람들과 춤을 추고 있는 이미지로 표현된 당시 유행했던 예술에서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의 무도가 유행했던 당시 유럽 사회는 십자군 전쟁과 페스트, 독일 농민전쟁 등 시대 종말적인 비극이 연속해 일어났다. 만연화된 죽음에 대한 공포는 곧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메시지로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죽음의 무도에는 종교적인 참회의 성격이 짙게 자리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염원이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 교의에 더욱 의존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죽음의 무도를 나타낸 그림에는 가난한 자부터 교황까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죽음의 대상이 됨을 보여준다. 안미현 교수(목포대 독일언어문학과)는 죽음의 무도에서 묵시론적 표상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세 죽음의 무도는 종말론적 사고에서 기인합니다. 중세인들에게 종말이란 묵시록에 나타나는 성경적 사건이죠. 성서에 계시된 인간 세상의 종말은 계급을 막론하고 이 세상에 찾아오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죽음의 무도는 중세인들이 가졌던 평등한 내세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중세 시대의 예술 모티프 ‘죽음의 무도’에서 해골과 함께 있는 사람들의 신분은 성직자부터 농부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는 죽음이란 신분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임을 보여준다. 사진출처 클래식 클라우드 네이버 포스트
중세 시대의 예술 모티프 ‘죽음의 무도’에서 해골과 함께 있는 사람들의 신분은 성직자부터 농부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는 죽음이란 신분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임을 보여준다. 사진출처 클래식 클라우드 네이버 포스트

  인간의 가치가 대두됐던 시기인 르네상스에 이르러 죽음은 더 이상 막연한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현세를 비관했던 중세와 달리 르네상스 사람들은 인간의 독자적인 힘으로 죽음을 극복하고자 했다. 이창복 명예교수는 『보헤미아의 농부』를 통해 죽음은 인간의 가치를 더욱 실현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해당 문학에서 농부는 자기 아내를 앗아간 ‘죽음’을 신에게 고발합니다. 이에 신은 피고인 ‘죽음’의 편을 들지만, 인간에게 명예를 부여하며 죽음에 맞서 싸움으로써 인간 존재의 가치를 실현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작품은 사랑이라는 인간의 힘으로 아내의 죽음을 극복한 농부의 모습으로 마무리되죠. 이는 중세 시대 죽음을 향한 순응적 태도에서 벗어나 죽음에 반항하는 당대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무엇보다도 죽음에 현혹되지 않고 그에 맞서 인간의 가치를 온전히 실현하는 삶을 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죠.” 

  20세기로 치달을수록 미학적으로 형상화된 죽음의 표상은 그 자취를 점점 감췄다. 당대의 죽음은 집단적 공포를 양산할 만큼 참혹했던 전쟁과 학살, 인종청소 등을 배경으로 논의됐기 때문이다. 중세에서 죽음이 신의 존재와 결부돼 공포의 대상으로 논의됐던 반면, 근대는 언제든 죽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인간 존재에 대한 공포를 동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죽음관을 기반으로 근대 사실주의와 상징주의 사조에서는 죽음을 직면하여 인류의 절망적인 처지를 보여주는 예술이 등장했다.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 또한 잔인한 죽음의 광경을 묘사한 대표적인 상징주의 작품이다. 이는 스페인 내전 당시 독일군이 스페인의 게르니카 지역에 폭격을 가하는 장면을 화폭에 담아냈다. 

20세기 대표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상징주의 작품이다. 이는 전쟁으로 인한 죽음의 참상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사진출처 브리태니커 사전
20세기 대표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상징주의 작품이다. 이는 전쟁으로 인한 죽음의 참상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사진출처 브리태니커 사전

  이렇듯 시대에 따라 새롭게 변화해 온 죽음관은 단순히 죽음 그 자체를 넘어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이야기했다. 역사의 오랜 시간 동안 죽음을 통해 사람들은 삶을 슬퍼하기도, 긍정하기도, 때론 반성할 수도 있던 것이다. 

  죽음을 이야기한 예술의 숨결 
  현대 예술에서 죽음은 재현과 상징의 표현 등으로 다양하게 그 의미를 드러낸다. 죽음의 장면을 재현하는 현대 예술가 데미안 허스트의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서는 불가능한 물리적인 죽음>은 상어의 사체를 수조 안에 보관해 놓은 박제 작품이다. 해당 작품은 상어와 같이 공포를 조성하는 거대한 육신을 가진 생명체라도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재현을 넘어 죽음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예술 작품들도 존재한다. 일본 예술가 시오타 치하루의 <대화DNA>는 신발 수백 개가 각각 빨간 끈에 묶인 채 한 곳을 향해 뻗어 있는 연출을 선보인다. 신발들은 각기 다른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 사람들을 상징하며 이 신발들이 한데 묶인 곳은 죽음의 세계를 표상한다. 중국 예술가 쑹둥의 설치 미술 작품 <버릴 것 없는>은 죽음을 마주한 인간의 내면적인 감정을 어머니의 물건들로 상징했다. <버릴 것 없는>은 죽음과 함께 이야기되는 보편적인 감정인 슬픔에 주목한다. 쑹둥의 어머니인 자오샹위안은 남편이 죽은 이후 그의 부재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물건들을 버리지 않고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런 어머니가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모아온 물건들을 전시한 작품이 바로 <버릴 것 없는>이다. 해당 작품은 비극적인 가족사와 죽음에 대한 어머니의 트라우마를 예술로써 승화시킨다. 남편의 죽음이 남긴 슬픔의 흔적 중 그 무엇도 ‘버릴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은 관객에게 이승과 저승, 즉 삶과 죽음이라는 넘나들 수 없는 시공간의 경계를 해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오타 치하루의 '대화DNA'는 수백 개의 신발을 하나로 연결한 붉은 실들을 통해 삶과 죽음의 여정을 보여준다. 사진출처 highlike
시오타 치하루의 '대화DNA'는 수백 개의 신발을 하나로 연결한 붉은 실들을 통해 삶과 죽음의 여정을 보여준다. 사진출처 highlike

  이외에도 과거의 죽음관이 현대적으로 계승돼 영상 매체에 담긴 사례도 있다. 디즈니의 <해골의 춤>은 중세 시대 죽음의 무도라는 모티프를 애니메이션에 활용한 작품이다. 서영주 교수(건국대 영상영화학과)는 <해골의 춤>에서 표현된 죽음의 무도에 접목된 카니발적 세계관을 설명했다. “중세의 죽음의 무도는 생사를 관장하는 신 앞에서 신들의 피조물인 인간들이 춤을 추는 모습에서 전복적이고 희화적인 카니발의 형태를 보이죠. 이와 마찬가지로 <해골의 춤>에서도 현실계에서 허용되지 않는 주검들이 출몰하는데요. 이 자체가 기존의 삶과 죽음의 질서를 와해시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춤과 노래를 동반하는 유머러스함을 영상으로 보여주며 죽음의 세계를 향한 고정관념을 전복시키는 모습은 죽음의 무도의 카니발적 성격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죠.” 

  삶을 위해 존재하는 죽음 
  사람들은 대개 죽음의 존재를 부정하며 애써 그것을 외면한 채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을 직시함으로써 유한한 인간 존재의 비애 속에서도 최선이라는 가치를 피워내야 한다. 

  이창복 명예교수는 죽음이 존재하기에 인간이 살아가는 삶이 비로소 가치를 지닐 수 있음을 전했다. “우리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며 절대 알 수 없는 유일한 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죽음이 바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죠. 유리컵이 유리로 꽉 차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결코 유리컵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컵 안에 있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비로소 유리컵의 가치와 의미를 만들어 주죠. 마찬가지로 인간의 엄연한 속성이지만 살아가는 동안에는 확인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존재가 우리 인간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태도로 죽음이 선사한 삶의 가치를 인식해야 할까. 이창복 명예교수는 언제라도 죽을 준비를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훌륭한 삶의 가치를 일궈내는 최선의 방법은 언제라도 죽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하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찰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죠.” 

  인간의 삶은 죽음을 향한 여정이다.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음에 하루하루 더 가까워져 간다는 것이다. 죽음을 사유하는 일은 곧 삶을 사유한다는 말로 환원된다. 비록 유한한 인간 존재가 갖는 비애가 인간을 서럽게 할지라도, 죽음에 대한 거부권이 없는 인간은 죽음을 향해 오늘도 온 마음을 다해 달려 나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바로 ‘삶’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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