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경력을 쌓은 한 청년은 “운이 좋았다”며 지난날을 자평했다. 준비된 자가 아니라면 순전히 운이 좋아서 주어진 기회를 절대 붙잡지 못한다. 준비된 자는 얼마만큼 노력한 사람을 의미하는 걸까. 선뜻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작정 부딪쳐 보며 스스로 확인해 보는 수밖에.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젊음의 패기로 뭇사람의 마음을 힘차게 두드린 이석준 동문(연극전공 1)을 만나봤다. 정해균 기자 sun_virus02@cauon.net

사진제공 제이플로엔터테인먼트

모든 결과는 그 성패와 관계없이 의미를 남긴다. 중요한 건 그 의미를 체화하는 과정이다. 이석준 동문(연극전공 1)은 결과를 추진력 삼아 본인만의 삶을 개척했다. 총명하게 빛나던 그의 눈을 마주하며 그 발자취를 더듬어 봤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뮤지컬 <엘리자벳> 이전에 많은 작품을 연달아 소화하다 보니 뮤지컬배우로서의 가치관이 무너졌던 것 같습니다. 전에는 극을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명확했는데요. 어느 순간 방향성을 잃고 공연이 일처럼 느껴졌죠. 정신적·신체적으로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 7개월 정도 쉬면서 골프, 볼링 등 다양한 취미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쉬는 동안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니 마음가짐을 다 잡는 데 도움이 됐어요. 
  지금은 조선의 소방관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멸화군>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다른 작품에 참여하는 바람에 리딩 쇼케이스에만 참여했던 작품이죠.”

지난 2일 대학로에서 이석준 배우를 만났다. 사진 정다연 기자
지난 2일 대학로에서 이석준 배우를 만났다. 사진 정다연 기자

  -중앙대 연극전공 지원 계기는. 
  “중학생 때 어머니의 권유로 연기학원에 다녔습니다. 학원에 다닌 지 3개월쯤 되는 날 학원에서 열리는 작은 공연에서 노래를 불렀는데요.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더라고요. 그렇게 3개월 정도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해 안양예술고등학교(안양예고)에 진학했습니다. 안양예고에서는 2학년 때 큰 뮤지컬 공연을 진행하는데요. 친구를 따라 오디션을 봤는데 어쩌다 비중이 큰 배역을 따내게 된 거예요. 6개월 동안 또래 친구들과 똘똘 뭉쳐 공연을 준비하는 게 너무 행복했죠. 공연 당일 커튼콜이 끝나고 무대 앞으로 나가 인사를 하는데 파도처럼 밀려오는 박수 소리에 또 한 번 카타르시스가 느껴졌습니다. 중학생 때 느낀 감정과는 차원이 달랐죠. 그때부터 뮤지컬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앙대가 연기 분야에서 정말 유명하잖아요. 중앙대에 진학해야만 뮤지컬을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존경하는 홍광호 배우님께서도 중앙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오직 중앙대만을 목표로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안양예고에서의 생활이 궁금하다. 
  “안양예고와 중앙대 동기이자 뮤지컬배우로 활동 중인 박상혁이라는 친구가 있는데요. 저랑 가장 친한 친구예요.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며 그 친구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래했던 기억이 납니다. 본가가 학교에서 멀다 보니 안양에 사는 상혁이네 집에서 합숙하듯이 살았어요. 아침 6시에 일어나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학교 수업을 듣고 실기 과목이 끝나면 오후 6시까지 노래를 했어요. 저녁을 먹은 후에는 실습실이나 친구 아버지 회사에서 새벽 2시까지 노래를 했습니다. 그러곤 다시 친구 집으로 돌아가 잠드는 생활을 반복했죠. 당시엔 그런 생활이 행복하다 보니 힘든 생활도 반복할 수 있었고 자연스레 실력이 향상된 것 같습니다. 친구와 재밌게 생활하며 중앙대에 진학할 수 있어 정말 행복했어요.” 

  -중앙대 입시 준비 과정은. 
  “1차 실기시험 곡으로 뮤지컬 <미스터 마우스>의 <둘만의 이야기>라는 곡을 준비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참여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대상을 받은 곡이죠. 서브곡으로는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The Confrontation>을 준비했습니다. 
1차 실기시험 당시 개인적으로 준비한 곡을 틀어주면 그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면접장으로 들어가야 했는데요. CD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반주가 안 나오는 거예요. ‘완전히 망했다. 중앙대는 내 학교가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멘탈이 완전히 박살 났죠. 그러다 문득 반주 없이 열심히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결과와 상관없이 그 모습을 독특하게 봐주실 것 같더라고요. 일단 부딪쳐보자는 생각으로 노래를 불렀고 그 모습을 면접관분들께서 좋게 봐주신 덕에 1차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때만 생각하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요.(웃음)”

  -합격자 발표 때 손에 땀을 쥐었겠는데. 
  “그렇죠. 제가 입시를 준비하던 2017년 당시 수능 다음날 중앙대 합격자 발표가 예정돼 있었는데요. 당시 포항 지진으로 수능이 일주일 연기되며 합격자 발표도 일주일 뒤로 밀렸습니다. 합격자 발표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미쳐버릴 것 같았죠. 중앙대 합격이 너무나 간절하다 보니 불합격 글자를 보면 멘탈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일부러 아침 7시쯤 잠들어 발표 시간인 오후 2시 넘어서까지 잤습니다. 오후 2시 20분쯤 어머니께서 절 깨우시더라고요. 어머니께선 덤덤한 척 연기하시며 결과를 확인해 보라고 말씀하셨지만 이미 어머니의 표정에서 합격을 직감했죠. 휴대전화를 보니 선생님들께 부재중 전화가 엄청나게 와 있었어요. 지옥 같은 입시가 끝나고 중앙대 일원이 된다는 사실에 하늘을 가진 듯이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뮤지컬배우가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뮤지컬배우가 완벽한 공연이라고 느껴도 관객 입장에선 다를 수 있어요. 배우와 관객의 호흡이 들어맞아 공기부터 다르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죠. 극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잘 전달했다고 느꼈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김현진 배우님과 함께한 뮤지컬 <쓰릴 미>에서 관객과 호흡이 일치하는 경험을 했어요. 새로운 시도들이 많았던 공연이었죠. 현진 배우님께서 먼저 무대에 등장해 극의 분위기를 잡아주시면 문이 열리면서 제가 무대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는데요. 그 순간 잡생각이 사라지면서 극에 몰입되더라고요. 관객분들도 몰입해서 감상해 주시니 공연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들었습니다. 공연이 10분 만에 끝난 느낌이었어요.(웃음) 정신을 차리니 기립 박수가 쏟아졌고 서로 눈을 마주하며 좋은 무대였다는 것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중앙대 수업은. 
  “30초짜리 예고편을 제작해 발표했던 백남영 교수님의 수업입니다. 두 시간 동안 팀원들과 대사를 짜고 직접 연기하는 게 정말 힘들었죠. 저희 팀의 주제는 백설공주였는데요. 저는 난쟁이 역할을 맡아 연기했어요.(웃음) 당시엔 힘들었지만 동기들과 친목을 다질 수 있었던 수업이라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어떤 자세로 오디션에 임했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시에 오디션을 보러 갈 때 패기가 넘쳤어요. 오디션에서 불합격하면 불합격하는 거고, 내 이름 석 자를 알리고 오면 되는 거고. 내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했죠. 오디션을 마치고 나서 찜찜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준비한 것들을 열심히 보여주자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패기 넘치게 열심히 연기했을 땐 오디션 결과가 좋았던 것 같아요. 반대로 찜찜한 기분이 들면 아쉬운 결과가 나왔죠. 지금 생각하면 지나치게 패기가 넘쳤던 것 같아서 반성하고 있어요.(웃음)”

이석준 배우가 뮤지컬 '풍월주'에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이석준 배우가 뮤지컬 '풍월주'에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제공 주식회사 랑

  -올해 데뷔 4주년을 맞이했다. 
  “대학로 주변 카페에서 데뷔 4주년 축하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요즘 대학로 근처에 올 일이 없다 보니 오늘 인터뷰를 할 겸 잠깐 들렀다가 왔습니다. 7개월 정도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4주년 축하 이벤트를 받으니 감회가 새로웠죠. 기다려 주신 팬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들을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는데요. 돌이켜보면 스스로를 많이 소모한 듯해 앞으로는 신중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하고 싶은 모든 작품을 하기보단 제 능력과 컨디션에 맞게, 더불어 관객분들께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작품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극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관객분들께 잘 전달할 수 있는 배우가 될 수 있도록 건강을 챙기고 마음가짐을 다 잡으려고 합니다.”

  -입대 계획이 궁금하다. 
  “군대는 한 2년 뒤쯤 생각을 하고 있어요. 더 미뤄질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2년간은 아마 입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은. 
  “제 이름 중에 ‘석’이 있잖아요. 돌 석(石) 자를 따서 팬분들을 돌멩이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돌멩이 분들께서 항상 저를 기다려 주시는 마음을 제가 정말 잘 알고 있어요. 앞으로도 무대에서 행복하게 교류하면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감사하다는 말씀보다 더 드릴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요. 너무나 감사하죠.”

  -중앙대 학생들에게 한 마디. 
  “중앙대라는 엄청난 학교에 입학했잖아요. 앞으로 분명 시련이 닥칠 텐데 그때마다 중앙대에 들어온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중앙대도 입학했는데 못할 게 뭐야’라는 생각으로 모든 일에 임하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웃음) 저도 그렇게 생각하며 항상 모든 일에 열심히 임하려고 하죠.”

  -당신에게 중앙대란?
  “너무나 진학하고 싶었던 동경의 학교였고, 그 학교의 일원이라서 너무 행복합니다. 언제든지 꼭 되돌아가고 싶은 곳이죠. 여전히 동경의 대상이기에 별다른 수식어 없이 제게 중앙대는 존재만으로도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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