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는 ‘전시가 끝나고 난 뒤’ 작품과 더 넓은 세상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우리의 삶은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이 이어지듯이 늘 연속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도 죽음이라는 끝맺음이 있죠. 인간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번 호 문화부는 죽음을 눈앞에 둔 이들을 담은 <있는 것은 아름답다> 사진전과 고대부터 현대까지 죽음을 다룬 다양한 예술작품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성찰해 봤습니다. 엄정희 기자 rlight@cauon.net

“하루하루 죽어가는
이 시간들을
절대 헛되이 보내지 마세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있는 것은 아름답다> 展 관람객-


기자는 매일매일을 그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살아왔다. 다가올 내일을 기대하지도 특별히 여기지도 않고 그저 흘려보내듯 살아갈 때도 있었다. 기자에게 있어 내일은 늘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는 피하지 못할 운명인 죽음을 맞이해야만 한다. 죽음은 암울하고 슬플 것이라는 기자의 예상과는 달리, 전시회 속 죽음이라는 내일을 앞둔 이들의 액자는 빛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없는, 인생
  기자는 지난 4월 28일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에 위치한 충무아트센터에서 진행 중인 앤드루 조지 작가의 전시에 방문했다. 전시는 ‘있는 것은 아름답다’와 ‘Everything Reminds Me of Everything’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시회에 들어선 기자를 맞이한 것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종이였다. 내가 사라진 뒤 남아 있을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남겨보라는 질문에 관람객들이 남긴 답이다. 한 관람객은 “사랑과 사람, LIVE와 LOVE. 비슷한 소리가 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라며 삶과 사랑을 함께 성찰하기도 하고 또 다른 관람객은 “그래도 그럼에도 살아있어서 행복했다”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도 했다.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는 아벨의 조언은 단순하지만 큰 울림을 전한다.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는 아벨의 조언은 단순하지만 큰 울림을 전한다.

  글이 채워진 벽면을 지나니 죽음을 앞둔 20명의 사진이 전시돼 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사진 속 사람들이 인생과 행복, 죽음 등에 관한 질문에 답변한 내용이 적혀있다.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을 한 아벨의 사진이 기자의 눈길을 끌었다. 아벨은 자신이 마주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관해 이야기했다. “마치 문이 열리는 것처럼 느껴져요. 여기서 해야 할 일을 마쳤으면 돌아가는 거죠. 간단한 일이에요. (중략) 여러분은 인생의 편도 티켓을 쥐고 있는 셈이에요. 인생을 허비하지 마세요.” 아벨이 전하는 담담한 조언은 일방통행인 인생에서 뒤보다는 앞을 보며 희망을 따라가는 것이 조금 더 나은 인생을 만든다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불치병을 진단받은 에디샤의 세상은 무너졌다. 그러나 그녀는 죽음 앞에서 삶을 포기하기보다 남편과 십 대의 두 아들과 함께 힘든 여정 속 희망을 향해 나아가기를 택했다.
불치병을 진단받은 에디샤의 세상은 무너졌다. 그러나 그녀는 죽음 앞에서 삶을 포기하기보다 남편과 십 대의 두 아들과 함께 힘든 여정 속 희망을 향해 나아가기를 택했다.

  환자복을 입고 여러 호스를 달고 있지만 따뜻한 미소를 건네는 이도 있었다. 두 아들의 엄마이자 불치병 진단을 받은 에디샤였다. 에디샤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행복과 시간의 의미를 되짚었다. “행복이란 정말 간단해요. (중략) 아침에 눈을 떠서 창가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는 것, 그리고 햇볕을 피부로 느끼는 것이 정말 좋아요. (중략) 시간이요. 매 순간을 될수 있는 한 최고의 방법으로 보내고 싶어요. (중략) 되돌릴 수 있다면, 인생을 더 즐기고, 나중에 해도 되는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며 살려고 노력할 거예요.” 에디샤의 미소와 말은 평소라면 쉽게 잊었을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과 그것이 모여 우리의 행복과 웃음이 된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죽음이라는 것은 대개 우리에게 공포로 다가온다. 누군가는 죽음을 말하며 절망하기도, 공허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는 죽음뿐 아니라 삶을 이야기한다. 전시 기획자인 파르비스 에숀쿠로브는 전시가 지니는 진정한 의미를 전했다. “이 전시는 삶의 끝인 죽음을 앞두고 삶의 가치가 어떠한지를 말하면서 오히려 죽음보다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관람객들은 20명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삶과 죽음에 관한 자신의 가치관을 돌아보게 되죠.”

  20명의 이야기를 마음에 담다 보면 ‘Everything Reminds Me of Everything’으로 전시가 이어진다. ‘Everything Reminds Me of Everything’은 작가 앤드루 조지가 생각한 ‘삶’을 표현한다. 해당 작품은 자연을 담은 여러 사진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 액자의 높낮이 배치를 다르게 하여 모든 작품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높낮이를 달리하며 선으로 이어진 사진들은 우리의 삶을 표현한다. 절망으로 내려가기도, 희망으로 올라가기도 하는 우리의 인생은 여전히 이어져 있음을 말한다. 사진 봉정현 기자
높낮이를 달리하며 선으로 이어진 사진들은 우리의 삶을 표현한다. 절망으로 내려가기도, 희망으로 올라가기도 하는 우리의 인생은 여전히 이어져 있음을 말한다. 사진 봉정현 기자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여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기법을 ‘포토콜라주’라고 한다. 파르비스는 포토콜라주 기법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설명했다. “작품에 여러 사진이 사용됐는데, 각 사진이 찍힌 시간과 장소가 모두 다릅니다. 동시에 사진의 배치도 위와 아래로 들쑥날쑥하며 다 다르죠. 이 사진에 담긴 장면과 배치 모두가 우리의 삶 그 자체를 보여줍니다. 우리 각각의 삶의 배경은 모두 다르죠. 또 사진 배치처럼 우리 인생은 역경 속 어려움을 겪어 아래로 내려가기도 다시 회복하며 위로 올라가기도 해요. 그렇게 우리의 삶은 이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죽음을 보고, 삶을 돌아보며
  누구나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죽음. 기자는 전시를 통해 이를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관점을 발견했다. 나의 삶은 어떻게 지나왔는가, 나의 삶이 지니는 가치는 무엇인가. 여러 문장의 고민을 지나자 이내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는 오늘의 희망을 바라보게 됐다.

  관람객 윤아영씨(30)는 전시를 보며 삶의 태도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전했다. “전시는 이전에도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의 경험이 너무 좋아 재방문하게 됐습니다. 왜 신은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고통을 주는 걸까 싶기도 하면서, 죽음을 마주한 채 ‘내 인생은 좋았다’고 회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제 삶의 태도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됐죠. 앞만 보고 혹은 두려움에 쫓겨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이 전시를 통해 삶의 방향성과 태도를 점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조금은 따뜻한 방식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같은 전시입니다.”

  전시의 작가 앤드루 조지는 말한다. “이제는 우리는 삶의 마지막을 받아 들여야 하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한 때다.” 무엇이든 마지막을 받아들이기에는 큰 결심과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한 과정을 지나 마지막을 수용하는 순간, 평화와 희망이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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