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휴대전화가 두 대입니다. 시쳇말로 ‘투폰’을 사용하는 것이죠. 기자가 휴대전화를 두 대씩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본 사람은 하나같이 그 이유를 묻는데요. 그럴 때마다 “지우는 걸 잘 못해서”라는 답으로 일관합니다. 사진과 동영상, 애플리케이션의 캐시, 영양가 없는 내용의 메모들 모두 언젠가 다시 필요할 것 같았거든요. 사진은 각도가 묘하게 달라서, 캐릭터를 한참 키우다가 관둔 게임은 아까우니까 등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특히 둘 중 먼저 사용하기 시작한 휴대전화에는 6년 전부터 모은 메신저의 대화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조별 과제가 끝나면 곧바로 채팅방을 나가는 분은 모르실 수 있겠지만, 메신저의 대화 기록은 생각보다 엄청난 용량을 차지합니다. 제가 휴대전화를 두 대 사용하게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가끔 메신저의 대화 기록을 들여다보면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대화 내용만으로 행복했던 그때 그 감정을 불러올 수 있다니, 기자는 기꺼이 휴대전화를 두 대 들고 다니는 수고로움을 받아들였습니다. 기억은 신의 선물이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 경우겠죠. 물론 좋은 감정만 기억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괴로울지라도 잊지 않아야 하는 기억도 있습니다.

  기자는 얼마 전 고교학점제 시행을 중심으로 달라지는 대학 입시에 관한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해당 기사를 준비할 때 스스로 크게 실망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공교육의 구조적 모순이 항상 불만이었던 고등학생 때의 기자는 언젠가 우리나라 교육 체계를 변혁하리라는 소망을 품기도 했는데요. 대학에 입학하고 상황이 편해지자 공교육이 이토록 큰 변화의 국면을 맞이한다는 사실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얼마나 지났다고, 올챙이 적을 다 잊어버린 개구리처럼요.

  기자는 자신이 어렵게 지내던 시절을 잊지 않는 사람만이 변화의 바람을 불러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는 이런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어른들도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서로 끌어내리지 못해 안달 난 우리 사회의 기현상을 일축하는 지적입니다. 기억하는 자만이 남에게, 어쩌면 과거의 자신에게 손 내밀 수 있으며 이로써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기억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신문도 이와 상통하지 않을까요. 기자가 휴대전화 메신저의 대화 기록을 통해 기억을 수집해 두듯이 신문은 학교의, 세상의 기억을 담아냅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봤을 때 당시의 감정을 소환할 수 있게 만들 것입니다. 기사를 통해 느꼈던 행복과 분노, 안타까움과 흐뭇함, 나아가 자신이 처해 있었던 상황과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굳은 결의까지. 신문은 언제나 여전히 여기에 있습니다. 기억하고 싶다면 찾아 주세요.
 

신지윤 대학보도부 정기자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