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사진기자를 꿈꿔 중대신문에 입사했다. 하지만 숨이 턱턱 막히는 업무량에 그만 꿈을 잊고 매주 빠르게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주어진 기사를 착실하게 써나갔다. 아무 생각 없이 기사를 업무로만 대하던 기자는 지난해 10월 29일 토요일 밤 뜻밖의 변곡점을 맞았다.

  심심풀이로 인스타그램에 접속한 기자는 평생 잊지 못할 충격적인 사진을 보게 된다. 시퍼렇게 죽어가는 다리와 대충 얼굴만 가린 모포. 무덤처럼 쌓여 있는 시체와 널브러진 전단. 이 모든 것이 전쟁터가 아닌 번화가에 놓여 있었다. 순간 헛구역질이 나와 바로 화면을 꺼버렸다. 방금 본 장면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잊히지 않았다. 검색해보니 이태원에서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는 뉴스가 속보로 우후죽순 올라오고 있었다. 시민 50여명이 심정지라는 소식 이후 밤새 핸드폰을 뒤척거리며 더는 사망자가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일요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잊은 채 다시 월요일이 왔다. 중대신문 취재 지시도 평소 같았다. 그러나 도무지 평소처럼 업무를 진행하지 못했다. 기자라는 직책을 달고 있으면서 토요일에 있었던 일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조심스레 편집장님께 관련 사진 기획을 건의했고 처음으로 현장에 가까이 가 취재하게 됐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현장에 갔다. 슬픔에 빠져 우는 사람들. 스님이 염불 외는 소리. 이태원은 거대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수십 명의 사진기자들은 셔터 소리를 내며 이곳의 장면을 단 한 개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담아냈다. 곳곳에 오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진기자라는 꿈을 갖고 처음으로 말하고 싶은 게 생겨 취재를 왔지만 도저히 슬피 우는 사람의 모습을 담을 수 없었다. 결국 누군가 남긴 쪽지와 텅 비어버린 현장, 이 순간 이태원의 모습만 남겼다. 당시 이태원을 바라본 나의 시선이었다.

  참사를 기록한 나의 기획은 많은 이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받았다. 직접 현장에 가 취재 하며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내 사진이 위로가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중대신문을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제야 주어지는 취재 지시를 따르는 것만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며 가까이서 보도했을 때 진짜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장이 되니 정기자 때보다 깊이 있는 보도를 이어 나갈 수 있게 됐다. 유례없는 산불이 난 지 1년이 지난 울진에 가 직접 이재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며 언론에서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이야기를 신문에 실을 수 있었다. 평소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나의 견해를 사진 기획으로 구체화하기도 했다.

  어느덧 이번 학기 7번의 발행이 끝나고 5부의 신문만을 남겨두고 있다. 남은 시간 동안 사진부는 더 가까이서 커다란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취재 대상에 더, 더 가까워질수록 시선은 깊어지고 세심해진다. 이 시선이 누군가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깊이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수첩을 연다.

봉정현 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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