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는 오늘날 극심한 정치적·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다. 반정부시위대는 “카스티요는 나의 대통령”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왔다.
페루는 오늘날 극심한 정치적·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다. 반정부시위대는 “카스티요는 나의 대통령”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왔다. 사진출처 Anadolu Agency

머나먼 과거 15세기 태양이 깃든 잉카제국에 살던 잉카족은 계급사회였음에도 그 속에서 협력과 공존을 좇았다.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간의 조화와 균형은 그들의 삶에 있어 중요한 일부였다. 그러나 잉카족의 정신을 이어받은 페루에서 ‘함께’의 가치는 무너져가고 있다.

  함께를 택한 과거
  잉카족은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택했다. 이는 그들의 세계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잉카족은 하늘과 땅, 태양과 달, 여름과 겨울처럼 대립하는 두 힘의 균형으로 세계가 유지된다고 여겼다. 대립하는 두 힘은 서로 경쟁하는 힘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고 서로를 보완하는 힘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 홀로 있는 것, 고립된 것은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잉카족이 구현한 ‘함께’의 방식은 ‘아이유(Ayllu)’였다. 아이유는 혈연에 기초한 원주민 토지공동체다. 잉카의 아이유 구조는 우리의 품앗이와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서로의 일을 거들어주며 품을 지고 갚고 하는 품앗이처럼 아이유 구성원들은 상호성을 기반으로 노동 교환을 약속했다. 아이유 사회에서 도움 요청을 거절하는 경우는 드물었으며 오히려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사회해방과 국가의 재발명』을 번역한 안태환 작가는 아이유 체제가 지니는 특징을 설명했다. “아이유 노동이 이뤄진 농지의 주인은 공동 노동을 한 사람들에게 임금뿐만 아니라 식사도 대접했습니다. 대접하는 분위기는 음악과 함께하는 축제와도 같죠. 가족 단위를 넘어 마을 공동체 구성원이 서로를 돕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전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등 돌린 오늘날
  
공동체를 중요시했던 잉카는 이제 없다. 1533년 스페인 식민 지배가 시작되며 공동체 의식은 흐려지기 시작했다. 식민 지배 시기 백인 지배 계층과 원주민 피지배 계층의 간극은 벌어졌다. 이러한 불평등 구조는 독립 이후에도 이어졌고 원주민은 현재도 여전히 사회적, 경제적으로 빈곤한 상황이다.

  이러한 세태에도 2021년 6월 페드로 카스티요가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카스티요는 원주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엘리트들의 지역 차별적 조롱과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더불어 지난해 12월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정치적 무능을 이유로 엘리트층과 의회에 의해 탄핵당했다. 대통령 자리는 디나 볼루아르테 부통령이 민주적 투표 없이 이어받았다. 이에 따라 원주민 세력을 주축으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박미숙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미주팀 전문연구원은 반정부 시위를 엘리트층과 원주민의 충돌이라고 분석했다. “원주민 사회는 원주민의 정치적 대변인인 카스티요 전 대통령이 소외된 원주민의 사회적, 정치적 권한을 강화해줄 것을 기대했죠. 그러나 지방 출신이자 정치 경험이 거의 없던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엘리트층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도덕적, 정치적 무능을 이유로 결국 탄핵당했습니다. 이에 원주민 사회가 크게 반발하는 것이죠.”

  반정부 시위와 진압은 3개월간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위자들은 빈곤과 불평등 등 오랫동안 이어져 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헌법을 요구했으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해결책 이 아닌 폭력이었다. 페루 옴부즈맨에 따르면 3월 16일 기준 반정부 시위와 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민간인 48명이 숨졌고 97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박미숙 전문연구원은 페루의 반정부 시위가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를 전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에서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성향이 다른 집단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식민 지배 시절부터 시작된 경제 및 정치에서의 페루 원주민의 소외와 불평등이 오랫동안 개선되지 않아 불평등이 더욱 가중된 상황인데요. 페루의 반정부 시위는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이 개선되지 않고 악화했을 때 사회가 얼마나 극심한 혼란을 겪을 수 있는지 보여주죠.”

  태양 아래, 공동체를 외치며 영광의 시대를 맞이했던 잉카제국은 저버렸으며 그들의 후예는 불평등이라는 통증을 앓고 있다. ‘함께’를 외쳤던 선조의 목소리는 희미해져 간다. 서로를 의지하며 같은 곳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영광의 시대는 다시 도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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