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미학이 보내는 날 선 비판
공생의 가치를 그리는 친환경 예술


“이 땅 위에서 우리의 가슴 속에 편린 돼 있는 자연의 심성을 일구어나가는 과정을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바깥미술회’의 생태 미술가들이 하늘에 바치는 맹세, ‘고천(告天)문’의 일부다. 생태 예술가들은 파괴되어 가는 자연을 대변하며 여전히 예술에 생태 담론을 녹여내고 있다. 환경 자체의 보호를 넘어 인간 존재의 의미를 천명하는 포스트 휴머니즘의 담론 속에서 생태 예술이 갖는 고유한 힘을 들여다봤다.

  새 시대는 새 예술의 태동을 이끌고
  인간이 지질의 흔적을 주도하는 세상, 인류세(人類世)가 열렸다. 본래 새로운 지질시대는 자연에 남겨진 흔적에 따라 구분된다. 지금은 신생기 제4기인 홀로세에 해당한다. 그러나 빙하기 이후 1만 1700년을 거친 홀로세는 저물었다. 자연에 새로운 흔적이 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파괴된 오존층과 바다의 데드존, 대규모 영농으로 침식된 토양. 이를 비롯한 수많은 생태 위기는 곧 인간이 자연에 남긴 뚜렷한 흔적이었다. 이러한 자연에 남은 새로운 흔적은 새 시대인 인류세의 시작을 알렸다.

  인류세의 흐름에 맞서며 1970년 전후로 생태학적 세계관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는 기존 서구 사회의 인간 중심주의적 태도를 반성함과 동시에 생태 위기에 관한 인식적 변화와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는 사유 방식이다. 이러한 인류세의 논의와 생태적 담론의 확산은 예술의 세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술은 1960년대부터 꾸준히 생태 보호의 메시지를 작품 안에 담아 노래해 왔다. 버려지는 산업 쓰레기를 작품 재료로 하는 정크 아트와 자연을 캔버스 삼은 대지 미술이 그 예다. 이후 1990년대에 이르러 미술가들은 더 거세게 생태 위기의 문제를 고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숲의 나무에 그림을 그려 자신의 저작권을 주장함으로써 벌목과 송유관 설치에 반대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주의 예술을 행했다. 특히 지역 공동체 구성원이 지역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생태 예술도 부상했다.

  전혜숙 교수(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는 현대미술 작품에 생태 위기의 문제의식이 투영되는 추세를 언급했다. “미술은 항상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현재 사회의 화두는 미래의 삶에 대한 기대와 동시에 생태 위기의 우려에 관한 담론인데요. 미술가들은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단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넘어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통해 생태 위기의 적극적인 해소를 꾀합니다. 신베이시 지역에서 도시 개발로 인한 하천 오염 해결을 위해서 미술가의 주도하에 지역 주민과 정부 기관이 협업해 생태 프로젝트를 전개한 것처럼요.”

  가지각색 녹색의 스펙트럼
  생태학제연구전문가인 에밀리 E. 스콧은 인간이 초래한 현실의 생태 이슈에 접근하는 동시에 생태적 담론 그 자체를 추구하는 예술을 생태 예술이라 정의했다. 이러한 정의를 구심점 삼아 생태 예술은 저마다의 형식으로 미술과 자연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내고 있다.

  슬로베니아 미술가인 마야 스므레카는 인간과 자연의 바람직한 관계의 방향성을 논의하는 대표적인 생태 미술 작가다. 그녀의 사진 작품 <Encounter>은 원시적인 자연에서 벌거벗은 두 남녀와 개가 함께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는 인간과 동물을 비롯한 자연 속의 경계가 사라진 조화를 의미한다.

  스므레카는 작품을 통해 인류세 시대에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교란된 생태계에 주목하기도 했다. 대표작 <BioBASE: risky ZOOgraphies>는 양쪽으로 나뉜 수족관에 암컷 가재와 수컷 가재를 각각 넣고 가 운데에 사다리를 설치해 서로 왕래해 생식할 수 있도록 한 설치 미술작품이다. 이는 강제로 이주당한 가재와 유사한 환경이다.

  전혜숙 교수는 해당 작품이 인간 중심 주의가 불러올 파국을 경고한다고 설명했다. “마야 스므레카의 작품에서 인간에 의해 강제로 옮겨진 암컷과 수컷 가재는 왕래할 수 있는 환경임에도 한 마리의 암컷이 무성생식으로 암컷만 복제해내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지구상에서 지켜야 할 ‘생태적 거리두기’를 위반하고 생물을 인간의 입맛대로 뒤섞어버리는 인간 중심주의적 태도가 불러올 공포를 이야기 한다고 볼 수 있죠.”

  생태 미술 협회 바깥미술회는 자연 자체를 전시 공간으로 삼아 설치 미술을 행 한다. 바깥미술회 작품의 세계관 내에서 인간과 자연을 경계 짓는 이분법은 존재하 지 않는다. 이들에게 자연이란 인간의 일부이며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향한 바깥미술회의 인식은 공존을 넘어서 공경에 달한다. 이들은 전시회 시작 전에 하늘에 고사를 지내며 직접 작성한 ‘고천문’을 낭독한다. 고천문에는 자연을 대상화하지 않고 그 속에 있는 미학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이라는 다짐이 담겨 있다.

  바깥미술회 소속 임충재 작가는 바깥미술회의 기본 정신은 생태의 원형적인 추구에 있다고 전했다. “생태계의 원형을 변화시키지 않는 것이 바깥미술회의 기본 정신 입니다. 그렇기에 전시가 마무리되면 자연에 설치했던 작품을 다시 분해하죠. 남는 건 사진 자료 뿐이기에 작가로서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것이 바깥미술회만의 특별한 속성입니다.”

  바깥미술회의 작가들은 자연의 본성을 해치지 않는 작품을 추구함과 동시에 인간 중심 사회를 은유적으로 비판한다. 2019년에 열린 두물머리 전에서 선보인 임충재 작가의 <나뭇잎>은 쇠붙이로 나뭇잎의 형상을 구현해낸 작품이다.

  임충재 작가는 해당 작품을 통해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경제 성장은 날카로운 쇠붙이와 같은 위협이라는 의미를 표현했다고 전했다. “생태계를 이야기하면 누구나 녹색의 빛깔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생태를 파괴하는 무분별한 성장은 나뭇잎의 푸르름을 차갑고 날카로운 은색으로 변하게 하죠. 나무에 파고드는 쇠붙이는 언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할지 모릅니다.”

  생태 예술은 미술을 넘어 일상생활에도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예술품이자 상품인 친환경 흙 화분을 제작해 판매하는 기업 ‘하늘빚다’의 행보가 대표적이다. 이곳의 흙 화분은 환경 오염 물질인 플라스틱이나 세라믹 재료가 아닌 자연 재료인 흙을 사용하여 굽지 않는 제작 방식을 거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최정임 하늘빚다 대표는 흙 화분을 비롯한 친환경 예술품이 갖는 선순환적 가치에 주목했다. “자연에서 만들어져 자연으로 돌아가는 흙 화분은 환경적 선순환을 실현 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지구 환경은 결코 현대인만을 위한 것은 아니죠.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위해 친환경 예술품에 관한 논의는 계속 이뤄져야 합니다.”

  생태에서 나아가 실존을 논하다
  인간 중심주의에 머물러 있는 사회는 생태 위기를 비롯한 인류세 시대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이러한 냉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기존의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위계적 관계를 수평적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담론이 대두되고 있다. 이는 곧 ‘광활한 자연과 첨예한 기술 속에서 인간의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되는 ‘포스트 휴머니즘’의 담론과 결부된다. 그리고 생태 예술이 궁극적으로 함의하는 인류와 자연의 공존이라는 메시지는 인간 존재를 묻는 포스트 휴머니즘에 실마리를 제공한다.

  유현주 생태미학예술연구소 대표는 자연과 공존하는 인간에 대한 고찰과 생태 예술이 추구하는 가치가 맞닿아있다고 설명했다. “생태 예술가에는 나탈리 카르푸셴코처럼 환경 문제를 시적으로 표현하는 작가, 나아가 융합 작업 예술을 통해 직접적인 환경개선을 도모하는 작가까지도 존재하죠. 다만 이들은 공통으로 자연보호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행동주의적 혹은 사회비판적 성격을 갖습니다. 궁극적으로 생태 예술이 갖는 의의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공존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기존의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하죠. 바로 이 지점이 인간을 ‘공생하는 생명체’로 정의한 포스트 휴머니즘의 담론과 만나는 지점입니다.”

  이어 유현주 대표는 앞으로 생태 미술은 인간의 성찰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발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생태 예술은 기후변화와 사회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다뤄야 합니다. 또한 근본적으로 지구공동체가 지속하기 위해 인간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작업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술 안에 담겨 있는 생태적 담론은 결코 자연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생태적 담론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인간이 살아가야 할 방향성에 답하기 위함이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보는 순간, 우리 인간의 존재 또한 온전히 자연을 벗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소박한 동시에 원대한 이 목표를 위해 오늘도 예술가들은 세상 곳곳에 녹색의 아름다움을 방울방울 흩뿌리고 있다.

사진출처 하늘빚다 도예공방
사진제공 임충재 작가
사진출처 Art Laboratory Berlin
생태 예술은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비인간 존재와의 공존을 꿈꾼다. ‘하늘 빚다’의 흙 화분은 생명이 함께 공생하는 지구를 지향한다. 일부 생태 예술은 제 모습을 잃어간 자연을 표현한다. 좌측 임충재 작가의 '나뭇잎'과 우측 마야 스므레카의 'BioBASE: risky ZOOgraphies'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생명력이 사라진 세상과 교란된 생태계를 보여준다. 생태 예술은 그 자체로 공존의 메시지를 담기도 한다. 하단 작품은 스므레카의 'Encounter'로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사라진 공존의 세상을 보여준다.
생태 예술은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비인간 존재와의 공존을 꿈꾼다. ‘하늘 빚다’의 흙 화분은 생명이 함께 공생하는 지구를 지향한다. 일부 생태 예술은 제 모습을 잃어간 자연을 표현한다. 좌측 임충재 작가의 '나뭇잎'과 우측 마야 스므레카의 'BioBASE: risky ZOOgraphies'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생명력이 사라진 세상과 교란된 생태계를 보여준다. 생태 예술은 그 자체로 공존의 메시지를 담기도 한다. 하단 작품은 스므레카의 'Encounter'로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사라진 공존의 세상을 보여준다.
사진출처 Maja Smrekar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