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가 끝나고 난 뒤, 관람객들은 출구를 빠져나옵니다. 전시회를 빠져 나오는 순간 그들과 혼재하던 전시의 세계는 막을 내리죠. 문화부는 전시가 끝나고 난 뒤 작가와 작품에 관해 깊은 이야기 를 해보려 합니다. 이번 호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말하는 <나탈리 카르푸셴코 사진전: 모든 아름다움의 발견>과 함께 친환경 예술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엄정희 기자 rlight@cauon.net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인간과 자연이 분리돼 있다. 아파트가 빼곡한 도시와 나무의 초록이 만개한 숲, 신호등의 빛으로 흘러가는 도로와 물의 흐름을 이끄는 바다. 인간과 자연은 닮은 듯 너무나도 다르다. 그러나 나탈리 카르푸셴코는 이러한 차이점보다는 인간과 자연이 공유하고 있는 지점에 주목한다. 그녀의 사진은 끊임없이 공존을 외치고 있다.
  
  공존을 외치며 순간을 포착하다
  서울특별시 성동구 아차산로에 위치한 그라운드시소 성수. 이곳에서는 <나탈리 카르푸셴코 사진전>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전의 주인공 나탈리 카르푸셴코는 카자흐스탄 출신의 예술가이자 사진가이며 환경운동가다. 그녀는 처음으로 카메라를 구입하고 난 후 세계 여행을 떠났다. 곳곳을 탐험하던 그녀에게 대자연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그중에서도 물과 인간이라는 두 가지 요소는 나탈리의 뮤즈가 됐다.

  나탈리는 자신의 예술을 “인간이 물을 통해 자연과 연결되고자 하는 열망의 표현이며, 지구에 대한 감사를 불러일으키는 운동”이라고 표현한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인간의 연결점을 찾고자 한 나탈리의 사진은 이곳 한국으로 와 여러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기자는 직접 전시를 관람해 그녀가 그리는 공존의 세계를 감상해봤다.

푸른 바다 아래에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가 존재한다. 'Miracle N°2'는 고래와 인간이 함께 유영하는 모습을 담아냈다. 좌측 'Plastic Ties N°2'와 우측 'Plastic Mermaid N°3'는 아름답지만 관람객은 이가 바다 쓰레기로 만들어진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푸른 바다 아래에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가 존재한다. 'Miracle N°2'는 고래와 인간이 함께 유영하는 모습을 담아냈다. 좌측 'Plastic Ties N°2'와 우측 'Plastic Mermaid N°3'는 아름답지만 관람객은 이가 바다 쓰레기로 만들어진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외침의 공간에 걸음을 내딛다
  전시공간은 다소 어둡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전시의 설명과 빛나는 작품에만 집중하여 감상할 수 있다. 공간에 입장해 좁은 통로를 지나면 ‘Ocean Breath’를 테마로 전시된 사진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사진들은 생명력이 넘치는 아름다운 바다와 고래 그리고 인간이 함께 유영하며 교감하는 순간을 기록한다. 그녀의 작품에는 나체의 사람과 고래가 함께 등장한다. 인간과 자연, 동물 사이의 유사점은 모두 벌거벗은 채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나탈리는 이를 포착하여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원시적인,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냈다.

  웅장한 디지털 배경과 함께 만날 수 있는 첫 번째 작품은 <Falling deep N°2>이다. 작품은 다리를 감싼 한 여성이 깊은 바다에 떨어지는 장면을 담고 있다. ‘풍덩’ 소리가 들리는 듯한 생생한 장면이었다. 관람객이 전시라는 바다에 빠져들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듯한 첫 작품이다.

  흔히 고래는 카르마(업보)가 좋은 사람만이 가까이할 수 있으며 고래가 사람을 궁금해할 때만 교감을 시도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고래와의 교감은 어쩌면 인간에게는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Miracle N°2>, 기적이라는 제목의 작품에서는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고래와 인간이 함께 나란히 유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상에서 쉽게 마주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장면을 통해 관람객의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고자 한 나탈리의 의도가 잘 전달되는 작품이다.

  나탈리는 단순히 고래와 인간만을 조명하지는 않았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뿐 아니라 나아가 아름다움을 생각의 도구로 만들었다. 나탈리는 ‘Plastic Mermaid’라는 테마로 오염된 바다 환경을 비춘다. 많은 사람이 바다 오염을 떠올리면 갖가지 색의 쓰레기가 떠다니는 바다, 그물에 함께 엉켜 있는 해양 생물, 쓰레기를 먹거나 쓰레기에 상처 입은 동물을 떠올린다. 그러나 나탈리는 황홀하고 아름다운 장면으로 바다 환경 오염 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Plastic Ties N°2>와 <Plastic Mermaid N°3>은 천을 걸치고 물속을 부유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았다. 이 모습은 신성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천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해양쓰레기인 비닐이다. 관객은 작품의 아름다움이 사실은 쓰레기로 만들어졌다는 역설을 깨닫게 된다.

  걸음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Ocean Breath’를 지나면 연이어 ‘Angel’과 ‘Rising Woman’, ‘Wild Breath’ 테마의 공간이 펼쳐진다. 각각 물에서 인간이 느끼는 평안함, 인류의 근원이라는 물과 여성, 동물과 인간의 교감을 말한다.

  ‘Angel’ 테마의 <Angel Julie N°6>은 말린 나뭇잎으로 만들어진 날개로 날갯짓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았다. 물속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이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인간이 자연 속에서 편안하고 활력있는, 자유로운 모습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Rising woman’ 테마의 <Rebirth of Woman N°1> 속에서는 여러 여성이 물이 고인 바위와 구멍 사이에 웅크리고 있다. 이는 아기가 어머니의 자궁과 양수 속에 있는 모습을 상기시킨다. 무언가를 품는다는 공통점을 지닌 물과 여성의 연결은 인류의 근원과 생명력을 더욱 직관적으로 나타낸다.

  이어 마지막 테마인 ‘Wild breath’에서 마주한 <Lisa and the Cheetah>는 인간과 치타가 다정한 교감을 나누는 장면을 보여준다. 다만 몇몇 인간의 포옹이 치타를 서식지 감소와 밀렵, 불법 거래 등 여러 위협으로부터 지켜주지는 못한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은 소수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공감과 실천에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의 끝 무렵 나탈리는 우리에게 제안한다. “상상해보세요. 77억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이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될지.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질지. 세상의 모든 피조물과 얼마나 조화로운 삶을 살게 될지. 이제 그 상상이 당신의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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