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9조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한다.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후 60여 년 동안 전통 문화를 위한 정책을 시행했으나 그곳에는 확연한 양지와 음지가 존재했다. 전통이 걸어온 길을 따라가 보며 관련 정책이 걸어갈 방향을 비추어 봤다.

  전통 문화정책의 발자취
  전통의 역사는 무구했으나 보존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며 국가 주도의 전통문화재 보호 법규가 마련 됐다. 10년 사이 보호의 범위는 문화재에서 문화예술 전반으로 확대됐다. 1972년 제정된 「문화예술진흥법」은 과거 한국 사회에서 천시됐던 민중 예술까지 보호의 테두리에 포함하며 다양한 문화예술의 종합적인 발전을 기하고자 제정됐다. 해당 시기의 전통문화 관련 정책은 문화재의 가치 활용보다는 보존에 주력했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치며 다수의 문화재가 파손됐기 때문이다.

  김진각 교수(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는 앞선 법들의 제정이 전통문화재 정책의 태동이라고 전했다. “두 법의 제정은 문화재와 전통문화를 국가가 공식적 문화로 간주한 분기점입니다. 두 법을 통해 본격적인 문화예술진흥정책의 출발을 알리는 법적 기반이 확립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죠.”

  초기 정책이었던 만큼 적용의 한계 또한 존재했다. 임장혁 교수(일본어문학전공)는 「문화예술진흥법」시행에도 불구하고 전통문화는 여전히 겉돌았다고 설명했다. “해당 법은 문화예술 진흥기금을 마련하고 곳곳의 문화시설 설치를 이끌었습니다. 다만 당시 민족예술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명목으로 설치된 국립극장은 사실상 서양 예술 중심으로 사용됐죠. 전통예술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전통예술을 위하지 못했습니다.”

  1999년 문화재관리국이 문화재청으로 승격되고 2002년에 ‘문화재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기본계획’이 수립됐다. 이를 통해 기존의 단기적인 보존 중심 시야에서 벗어나 문화재 활용을 위한 중장기적인 비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문화재보호법」 또한 수십 차례의 부분 개정을 거쳐 현재의 체계를 갖추게 됐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를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록물, 민속문화재로 분류하고 있으며 각 분류체계에 맞는 보호 제도를 명시하고 있다.

  무형문화재, 전통문화의 소수자
  「문화재보호법」 아래 무형문화재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문화재를 보존하여 민족문화를 계승하겠다”는 법령의 목적은 무형문화재의 현실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무형문화재는 전승돼야 하는 시대적 소산물임에도 날로 입지가 좁아져간다. 이를 위해 무형문화재 제도가 도입됐으나 실상은 암담하다. 지난해 문화재청에 따르면 무형문화재 전승자의 평균 연령은 약 73.4세다. 무형문화재 122종목 중 18종목은 전승자가 부재하며 69개 종목은 전승자가 1명뿐이다.

  박종군 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 이사장은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 원인으로 문화재청 내 무형문화재 담당 인력 부족과 예산 편중의 문제를 들었다. “현재 문화재청에서 무형문화재를 전담하는 인력은 13명으로 문화재청 전체 인력의 3%가량에 불과합니다. 예산도 유형문화재에 편중될 수밖에 없죠. 이러한 환경에서 무형문화재를 위한 좋은 정책이 추진되고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긴 어렵습니다.”

  무형문화재 보유자는 매달 150만 원의 지원금을 받는다. 그러나 박종군 이사장은 해당 지원 금액이 턱없이 적다고 전했다. “무형문화재의 세계는 공급과 수요의 원칙에서 동떨어진 곳입니다. 아무리 비싼 재료비와 시간을 들여 좋은 작품을 만들어도 수요가 없죠. 150만원의 지원금은 무의미합니다. 이런 구조에서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된다는 것은 삶을 희생하는 일이 돼버렸으니 계보를 잇는 젊은이가 없을 수밖에요. 보유자가 생활고에 허덕이지 않고 책무를 다할 수 있게 국민적 홍보와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해요.”

  무형문화재를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교육적 가치와도 맞닿아있다. 임장혁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 무형문화재가 갖는 의미를 재조명했다. “전통 공연을 비롯한 무형문화재는 공동체의 소중함과 같은 정신적 가치를 지닙니다. 그렇기에 현대 사회에 무형문화재는 충분한 교육적 가치를 갖죠. 정부가 무형문화재를 교육 정책과 연계해 활용하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박종군 이사장은 무형문화재의 계승을 위해 행정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산하의 무형문화재과를 ‘국’으로 승격해 더 세분된 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또한 명칭의 변화도 필요합니다. 유형문화재를 국보라고 칭한다면 무형문화재 또한 인간문화재라는 명칭이 아닌 국보로 칭하는 것이 인식 변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죠.”

  형태가 없다는 것이 가치가 없다는 것으로 환원될 순 없다. 유형이든 무형이든 모든 문화재는 저마다의 모습으로 민족의 얼을 담고 있다. 전통의 숨결은 국가의 정체성과 다름없다. 전통의 온전한 들숨과 날숨을 지켜내는 일이야말로 곧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가치 그 자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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