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가마에서 불과 흙이 빚어낸 예술이 깨어난다. 절제된 화려함에 취하다가도 표면의 잔잔한 결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흙이 뭉쳐져 불로 구워진 도자기는 자연으로 시작해 자연으로 완성된다. 자연의 예술 가운데 한 도공의 땀과 정성이 자리한다. 전통의 기법으로 수십 년 동안 묵묵히 도자기를 빚어 온 김상곤 도예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통을 굽는 불의 예술가
  김상곤 도예가의 손길은 도자기를 넘어선 ‘불’을 빚어낸다. 불을 만들어내는 김상곤 도예가의 특별한 감각은 그가 전통 기법을 추구하는 이유와 맞닿아있다. “전통 가마에서 때는 불을 잘 이해할 수만 있다면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지닌 도자기를 구울 수 있어요. 저는 가마의 불을 자유자재로 때는 편이에요. 불의 분위기를 마음껏 연출할 수 있으니까 자연스러움과 에너지 효율성을 둘 다 잡을 수 있었어요.”

  뜨거운 가마에 들어간다고 다 도자기가 되는 건 아니다. 전통 가마에서 도자기 다운 도자기가 나올 확률은 약 30%에 불과하다. 반면 1980년대 일본에서 들어온 가스 가마는 가스의 연소열로 도자기를 구울 수 있어 열 조절이 쉽다. 그러나 김상곤 도예가의 걸음은 여전히 전통 가마로 향 한다. “도자기는 불의 예술이라고 불립니다. 불을 이용해 흙과 유약의 빛깔을 섬세하면서도 가장 자연스럽게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자연스러운 미(美)를 만들기 위해선 전통 가마만 한 것이 없습니다. 전통 가마에서는 일일이 장작을 때고 시차를 두고 불을 조절해야 합니다. 또 당일 날씨의 운도 크게 작용하죠. 그래도 힘든 만큼 도자기가 잘 나왔을 때의 뿌듯함도 남달라요.”

 

  시대에 맞는 감동을 구워낼 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 이 말은 비로소 김상곤 도예가의 포부 아래 진가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의 포부는 임진왜란을 비롯한 어려운 시대에서도 꿋꿋이 도자의 맥을 이어간 선조들의 정신과 닮아있다. “저는 이 시대에 맞는 도자기를 만들고자 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전통을 지키고자 했던 조상들의 끈질긴 의지, 이것이 전통의 현대화에 관한 제 해답이 됐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기와를 표현하고자 했는데요. 그렇게 탄생한 검은 도자기는 자연스러운 멋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40여 년 동안 걸어온 도자기 인생은 이제 그의 오랜 꿈을 향해 닮아간다. “돈이 없을 때 공방에 앉아 생각해요. 그래, 유명하지 않으면 어떤가. 무명의 선조 도공들이 묵묵히 도자를 빚었듯 나도 그렇게 도자기의 거름이 되면 된다. 그게 제 오랜 꿈입니다.”

  김상곤 도예가는 후배에게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후배 도예가들이 자존심을 가지고 도자기를 했으면 해요. 남의 것을 모방하지 않고 자신만의 내공이 축적된 상태에서 도자에 담을 수 있는 자신의 철학을 고민해야 합니다. 요즘 시대에는 많은 것을 보고 참고할 수 있잖아요. 이러한 시류에서 설사 모방을 하게 돼도 ‘나 다운’ 모방을 해야죠. 제가 제 기술을 전수해주는 이유도 후배들이 자신의 색깔로 이를 연마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김상곤 도예가는 가마의 불길 앞에 땀방울을 떨어뜨리며 전통을 구워낸다. 그의 땀은 계속해서 불과 흙, 그리고 바람과 함께할 것이다. 그렇게 인간과 자연의 합작은 가마에서 나와 또 다른 전통을 만들어낸다.

전통가마에서 도자를 굽는 김상곤 도예가. 일일이 장작을 때고 시시각각 변하는 불의 분위기를 감지해야 하지만 전통가마에서 나온 도자기는 그 어떤 도자기보다 자연스러운 멋을 낸다. 사진제공 김상곤
전통가마에서 도자를 굽는 김상곤 도예가. 일일이 장작을 때고 시시각각 변하는 불의 분위기를 감지해야 하지만 전통가마에서 나온 도자기는 그 어떤 도자기보다 자연스러운 멋을 낸다. 사진제공 김상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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