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가 끝나고 난 뒤, 관람객들은 출구를 빠져나옵니다. 문화부는 전시가 끝나고 난 뒤 작품과 더 넓은 세상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이번 호는 전통의 숨결을 담은 <조선백자전, 군 자지향(君子志向)> 전시회를 통해 바라본 조선백자의 미(美)를 전합니다. 이 전통의 결을 잇는 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흙과 불, 그리고 인(人)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엄정희 기자 rlight@cauon.net

바탕이 외관보다 나으면 거칠고,
외관이 바탕보다 나으면 호화스럽다.
외관과 바탕이 어울린 뒤에라야 군자답다.

-『논어(論語)』옹야편 中-

흙은 자연에서 나와 물레에 올려지고, 물레에서 태를 갖춘다. 태를 갖춘 흙은 가마에 들어가 뜨거운 불과 함께 호흡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백자는 흰 고운 빛에 때로는 당당하게 때로는 담백하게 자신만의 지조를 내비친다. 도자 문화의 정점을 맞이한 조선, 그곳에서 빚어진 백자는 우리에게 군자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푸른 선의 고귀한 품격
  우리 선조의 숨을 담은 조선백자가 한곳에 모였다. 리움미술관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展에서 영롱한 빛을 뿜는 백자를 만날 수 있었다. 전시회에 들어서면 ‘블랙박스’라는 검은 공간 속 각양각색의 조선백자 국보와 보물이 우리를 맞이한다.

  고려에는 청자가 조선에는 백자가 있었다. 고려의 청자는 불교와 맞물렸다면 조선의 백자는 유교와 맞물려 그 꽃을 피웠다. 이기조 교수(공예전공)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재료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청자가 유약의 맛이라면 백자는 태토(바탕이 되는 흙)의 맛이라고 하죠.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재료입니다. 청자를 만드는 흙은 점도가 좋아서 섬세하고 얇은 표현이 가능하죠. 그에 반해 백자를 만드는 백토는 점도가 약하고 퍼석퍼석해 섬세한 표현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백자는 청자보다는 단순한 형태로 만들어졌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백자의 단순한 형태는 속물주의를 거부하는 당시 조선의 유교적인 문화 배경과 잘 어우러졌습니다.”

  조선백자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푸른 청화, 붉은 철화와 진사, 마지막으로 오로지 흰 빛만으로도 아름다움을 전하는 순백자다. 아름다움의 절정인 블랙박스를 지나면 푸른 청화백자를 마주하게 된다. 조선인들은 종이에 그리던 그림을 도자에 옮겨 와 하얀 순백자에 푸른색 안료로 각종 문양을 그린 청화백자를 만들어 냈다. 푸른색 안료의 재료인 코발트는 페르시아와 중국을 거쳐 들어온 매우 값비싼 무역품이었기 때문에 청화백자는 조선 초기에는 왕실에서만 소비됐다.

  청화백자 중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은 위엄을 뽐내는 용이 그려진 <백자청화 운룡문 호➊>다. 커다란 항아리에 용을 그려 장식한 것을 용준(龍樽)이라 부른다. 용준은 왕실에서 궁중의 크고 작은 행사 때 사용했던 의례 용기로, 술을 담거나 꽃을 꽂아 장식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특히 조선백자의 용 문양은 임금의 절대적인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기도 했다. 18세기에 만들어진 <백자청화 운룡문 호>는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작품에 그려진 용은 여의주와 함께 신비로운 구름 속을 가르며 기세를 뽐낸다. 굽은 목 뒤에서 뻗치는 두 개의 기운은 그 권위를 보여준다. 해당 도자 속 용은 다섯 발가락을 가진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고 용준으로는 매우 드물게 길상의 의미를 지닌 칠보 문양이 그려져 있다.

  <백자청화 운룡문 호>를 지나면 각양각색의 멋을 뽐내는 백자들을 볼 수 있다. 단순한 그림부터 화려한 문양까지 다양한 그림이 도자에 그려져 있었다.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전시를 담당한 이준광 연구원은 백자에 표현된 다양한 그림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백자에 그려진 그림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도자라는 바탕에 문양을 패턴화·디자인화해 그려 넣은 종류입니다. 두 번째는 산수라든지 사군자와 같은 모습을 묘사한 종류죠. 마지막으로는 한문으로 시를 적어 넣은 것인데요. 술에 관한 내용을 쓰거나 당시 유교의 이상적인 군주였던 요순 임금을 찬양하는 글을 썼습니다. 최고의 시인이라 여겼던 이백의 시를 통째로 옮겨 적기도 했죠.”

➊ 사진제공 리움미술관
➊ 사진제공 리움미술관

 

  값싼 것을 가장 귀한 것으로
  고귀한 청화백자를 지나면 붉은 갈색의 빛을 지닌 도자가 또 다른 전시의 막을 올린다. 각각 산화구리·산화철을 안료로 사용해 문양을 그린 진사백자와 철화백자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언뜻 보면 다소 투박한 느낌을 주지만 자세히 살피면 그 속에 세심함이 담겨 있다. 진사·철화백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과 같은 전란 이후 17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했다. 청화백자의 값비싼 안료의 대체품으로 철과 구리가 사용됐기 때문이다. 왕실용 사기를 만들었던 조선관요 광주 가마터에서 주로 만들어졌던 청화백자와는 달리 진사·철화백자는 지방에서 주로 만들어졌다. 철과 구리 등의 안료는 청화백자에 쓰이는 코발트 안료보다 비교적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사·철화백자에는 청화백자에 잘 나타나지 않는 다양한 그림이 담기기도 했다. 물고기나 새를 그리기도 했고 호랑이와 까치를 단순화해서 해학적으로 묘사하기도 하는 등 지방의 개성과 해학이 엿보인다.

  백자에 그려진 그림이 같아도 청화백자인지 진사백자, 철화백자인지에 따라 천차만별의 인상을 준다. 전시된 청화백자 <백자청화 운룡문 호 >와 철화백자인 <백자철화 운룡문 호➋>에는 같은 용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청화백자에서는 용의 신비로움과 상서로움이 더욱 크게 느껴지고 철화백자에서는 용의 강인함과 굳셈이 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이준광 연구원은 이러한 재료로 인한 차이점을 설명했다. “도자의 첫인상에서 전달되는 힘의 차이가 있습니다. 매화 그림을 예로 들면 청화백자에 그려진 매화는 온실 속 화초같이 보호받고 자란 느낌을 준다면 진사·철화백자 속 매화는 추운 날에도 꿋꿋이 피는 매화처럼 선비의 절개가 느껴지죠.”

  순백자는 아무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더라도 도자 그 자체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충분히 담고 있다. 오히려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기에 백자의 가장 기본이 되는 태토를 직접적으로 감상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성종실록』에 따르면 성종은 이렇듯 티 없이 맑은 백자에 관해 사람으로 치면 지극히 공평하고 바르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관요에서 제작한 백자는 청명한 색으로 절제된 격조의 미학을 바탕으로 한다. 지방에서 만들어진 순백자는 대부분 생활 용기로 제작되었는데 관요에서 만들어진 순백자와는 달리 회색이 서려 있거나 갈색조를 보이기도 한다.

'백자철화 운룡문 호'와 '백자양각 연판문 병'. 조선백자에는 선조의 얼이 담겨 있다. 용준을 통해 국가의 엄정한 품위와 용맹함을 나타내며 때로는 티 없이 맑은 순백자를 통해 군자의 정신을 말한다.
'백자철화 운룡문 호'와 '백자양각 연판문 병'. 조선백자에는 선조의 얼이 담겨 있다. 용준을 통해 국가의 엄정한 품위와 용맹함을 나타내며 때로는 티 없이 맑은 순백자를 통해 군자의 정신을 말한다. 사진 제공 리움미술관

 

  진정한 명품(名品)
  도자는 구워지면서 모양이 휘거나 굴곡지기도 한다. 이렇듯 완벽한 모양과 대칭을 이루지 않더라도 조선백자의 지극한 아름다움은 그 가치를 지닌다. 이기조 교수는 조선백자의 가장 큰 강점을 도자에 대한 선조의 태도를 통해 설명했다. “조선백자가 지닌 가장 큰 강점은 진실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의 도공은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 감추거나 덮으려고 하지 않았죠. 조선백자에는 둥근 면을 직선으로 깎는 과정에서 돌이 빠진 구멍이 있거나 완벽한 대칭이 아닌 작품들이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도자가 구워지는 과정에서 휘어지면 이를 엄격하게 규제했어요. 그러나 조선은 이런 과정을 감추지 않으며 진실성을 추구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문화적 인 여유와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과정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우리 선조의 진실성이 담긴 조선백자는 500여 년의 시간을 지나 다시 우리 곁에 모였다. 이준광 연구원은 이번 전시를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조선백자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고미술 전시는 고루하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조선백자의 화려함을 보여주고자 했는데요. 공간과 연출을 통해 조선백자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더욱 선보이고자 했죠. 마지막으로 백자를 통해 당시 조선이 어떤 사회였는지, 수양을 거듭하는 군자라는 이상향이 백자에 어떻게 투영된 것인지 상키시키고 싶었습니다.”

  이기조 교수는 관람객들이 조선백자라는 우리의 명품을 알아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조선은 우리나라 전 역사를 통틀어서 학문적, 문화적으로 최고를 향유했던 시대입니다. 도자뿐만 아니라 공예, 글씨, 학문이 정점을 찍었죠. 그 시대 정점을 맞이한 우리 문화 예술품은 우리와 같은 핏줄의 선조가 만들었습니다. 조선백자를 만든 사람과 같은 핏줄을 가진 우리가 조선백자를 보고 느끼는 것과 외국인이 느끼는 것은 다르죠. 한국인이 외국의 명품이 아닌 우리나라의 명품에 더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가 다시 문화의 정점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3년 한곳에 모인 조선의 백자가 서울의 현대인에게 전하는 고귀함은 글로 전부 표현할 수 없다. 흙의 숨결과 선조의 손길을 직접 마주하며 곡선의 유려함을 느낄 수 있다. 조선백자의 시간은 조선에서부터 오늘날까지 흐른다. 여전히 전통을 잇는 손길은 조선백자 시곗바늘을 돌리고 있다. 조선백자를 마주하면서 시곗바늘을 따라 과거의 군자를 마주하며 오늘날로 이어지는 전통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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