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야기 중에서 ‘해와 달이 된 오누이’라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어느 산골에 오누이와 어머니가 살고 있다. 하루는 어머니가 건넛마을에 일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호랑이를 만난다. 호랑이는 어머니에게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말한다. 호랑이는 처음 말과 달리 떡 하나로 만족하지 않고, 떡을 모두 빼앗아 먹는다. 호랑이의 탐욕은 떡에서 끝나지 않는다. 호랑이는 어머니에게 팔과 다리를 달라고 하고, 최후에는 몸뚱이까지 먹어 치운다.

  호랑이는 이에 그치지 않고 어머니의 옷을 입고 아이들만 있는 집으로 간다. 배고픔을 참으면서 어머니를 기다리던 세 아이는 호랑이에 속아 문을 열어준다. 호랑이는 세 아이 중에서 젖먹이를 데리고 부엌으로 나가서 잡아먹는다. 방에 있는 두 아이는 놀라서 나무 위로 도망친다. 호랑이가 아이들을 쫓아 나무를 올라오자 아이들은 하늘을 향해 간절히 기도한다. 기도의 응답으로 하늘에서 새 동아줄이 내려오고, 남매는 동아줄을 잡고 하늘로 올라간다. 하지만 호랑이는 썩은 동아줄을 붙들고 올라가다가 줄이 끊어져 죽는다.

  이 이야기를 떠올릴 때면 오누이가 하늘에 올라가 해와 달이 되었다는 해피엔딩보다 어머니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부분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항상 호랑이가 어머니에게 하는 말 ‘떡 하나만 주면 안 잡아먹지’를 듣고 사는 것은 아닐까? 선거 때면 호랑이 떼가 우르르 몰려와 우리에게 속삭인다. ‘한 표만 찍으면 안 잡아먹지’. 그뿐인가 ‘시키는 일만 하면 안 잡아먹지’하며 눈알을 부릅뜬 호랑이 등 우리 주변엔 호랑이들로 가득 차 있다.

  약자의 표상인 품팔이 어머니와 우리의 모습은 너무나 닮아있다. ‘하나만’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처음엔 떡을, 나중에는 신체까지 호랑이에게 강탈당한다. 결국에는 목숨마저 잃게 된다. 이제 남은 것은 아이들뿐이다. 그러나 아무런 힘이 없는 아이들이 호랑이의 마수로부터 구원받을 현실적인 방법은 없다. 아이들은 초월적인 힘을 빌려야만 호랑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새 동아줄’이 내려오지 않았다면 아이들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우리는 일상 세계에서 항상 ‘새 동아줄’을 기원하며 살고 있다. 현실의 고난과 어려움을 종교, 이데올로기, 판타지 등으로 대체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의 사정은 옛날이야기와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현실에 내던져진 이상 혼자의 힘으로 세계 내에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아야 한다.

학생들이 지금 내게 그 동아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답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함께 고민하고 찾아가자고 제안할 수는 있다. 어쩌면 대학은 자기만의 동아줄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나만의 동아줄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명현 교수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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