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으로 뒤덮인 땅에서 그들만의 삶의 궤적을 그려간 그린란드의 원주민, 이누이트족. 그들의 삶을 그려내는 도화지와 같은 얼음은 기후 위기로 인해 파괴되고 있다. 천년의 삶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 이가 불러온 나비효과를 알아봤다.

  하얀 땅에 피어난 그들만의 지혜
  이누이트족은 북극에서 기원전 2400년부터 살아 가고 있는 하얀 땅의 원주민이다. 그린란드와 알래스카, 시베리아 북부에 자리한 이누이트족은 ‘에스키모’ 로 익히 알려져 있다. 에스키모는 ‘날고기를 먹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누이트 문화를 야만적으로 바라봤던 서구인이 붙인 별칭이었다. 그러나 이누이트족의 삶은 야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누이트족의 사냥에 담긴 철학은 감사와 존중을 기반으로 한다. 강서정 교수(국민대 교양대학)는 고래사냥 과정을 담은 이누이트족 민담 「쿠자바르쑥」을 통해 그들이 사냥감을 대하는 태도를 설명했다. “민담의 주인공 쿠자바르쑥은 고래의 움직임과 소리에 집중합니다. 이는 고래가 사냥꾼을 선택해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라는 믿음과 사냥감을 향한 존중의 마음을 기반으로 하는데요. 사냥감에 대한 존중이 동반하기 때문에 이누이트족 문화에서 사냥이란 사냥꾼과 사냥감의 일반적인 관계를 넘어서는 의미였죠.”
 
  이누이트족의 사냥 문화는 오랜 전통을 지녔다. 바다표범과 물개 또한 사냥의 대상이었다. 일반적인 사냥은 꽁꽁 언 바다에 구멍을 뚫은 후 동물이 숨을 쉬기 위해 구멍으로 올라오면 잡는 방식이다.

  이누이트족은 극지방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했기에 바다표범이나 곰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었다. 모자에 털이 달린 현대 외투 ‘파카’의 시초가 이누이트족의 털외투 ‘아노락’이다. 부츠 ‘카미크’는 바다표범 가죽으로 만들어 가벼운 동시에 방수 기능까지 탁월해 사냥에 제격이다. 이누이트족은 동물의 희생으로 얻은 옷을 조심스럽고 아름답게 입으려고 노력했다.
 

이누이트족은 동물을 존중하는 사냥 문화와 현대 의류에도 영향을 준 의복 문화의 전통을 지닌 민족이다. 그러나 급격한 기후위기로 이누이트족은 전통의 소실과 건강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누이트족은 동물을 존중하는 사냥 문화와 현대 의류에도 영향을 준 의복 문화의 전통을 지닌 민족이다. 그러나 급격한 기후위기로 이누이트족은 전통의 소실과 건강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사진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기후 위기, 잔혹한 날갯짓의 나비
  환경파괴의 대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누이트족의 몫이었다. 지구온난화는 23년간 28조 톤의 얼음을 녹였다. 이 중 약 4분의 1이 그린란드의 얼음이다.

  기후 변화는 이누이트족의 삶의 터전을 앗아가는데 그치지 않았다. 이는 그들의 사냥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며 심각한 건강 문제를 양산했다.

  사냥터의 변화로 사냥감이 감소하며 이누이트족의 식탁에는 점차 탄수화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승호 교수(건국대 지리학과)는 이러한 변화가 이누이트 족의 건강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이누이트족은 원래 육식을 하기에 당을 섭취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기후 위기로 사냥감 확보가 어려워지며 빵과 감자와 같은 당을 과잉 섭취하게 됐어요. 불필요한 당이 체내에서 분해되지 못하고 성인병을 유발합니다.”

  이원상 극지연구소 본부장은 기후 변화가 신체건강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누이트족은 얼음 위를 지나 이동합니다. 기후 변화로 단단한 얼음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이누이트족은 굉장한 심리적 불안에 시달리고 있죠.”

  기후 변화로 인한 전통의 소실은 특히나 이누이트족 청년에게 치명적이다. 캐나다 통계청은 2019년 기준 이누이트족 중 청년 세대 자살률이 가장 높다고 밝혔다. 이승호 교수는 전통의 소실로 정체성을 잃은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에 주목했다. “사냥은 이누이트족의 정체성이에요. 그런데 사냥이 어렵게 되니 식량 확보를 위해 낯선 화폐 경제에 불안정하게 편승할 수밖에 없죠. 그러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되고 이는 자살과 대마초, 알코올 중독으로 번집니다.”

  북극은 북극다워야, 그들은 그들다워야
  지구 평균 기온이 점차 올라가며 따뜻한 북극은 현실이 돼가고 있다. 이원상 본부장은 기온 상승에 따른 위기를 조망했다. “그린란드에서는 매년 약 2800억 톤의 얼음이 녹아내리는데요. 이는 전 지구 평균 해수면을 0.78mm가량 상승시키는 양입니다. 현재의 기온 상승 추세라면 2100년에 해수면은 2m 가까이 상승할 것입니다. 이는 극지방 원주민들의 삶은 물론 전 지구 해안선까지 바꿀 테죠.”

  기후 위기로 인해 파괴된 이누이트족 문화의 회생을 위해서는 정책과 인식의 측면에서 다양한 변화가 요구된다. 임수정 연구원(건국대 기후연구소)은 이누이트족에게 필요한 것은 외부적인 정책보다는 전통 문화의 유지라고 전했다. “이누이트족에게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을 묻는 설문에서 ‘전통문화의 유지’의 응답률이 가장 높았어요. 현대식 교육을 비롯한 정책들도 외부의 기준으로 도출한 결과물일지 모릅니다.”

  이승호 교수는 이누이트족을 향한 인식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우리의 활동으로 인한 기후 변화의 피해는 고스란히 이누이트족의 몫입니다. 사람들은 북극하면 외로운 북극곰만 떠올릴 뿐, 그들의 북극에 이누이트족은 없습니다. 같은 인간으로서 고통받고 있는 그들에게도 관심이 필요할 때죠.”

  이누이트족은 자연과 함께 살아갈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기후 변화의 화살은 되려 그들에게 향했다. 녹아 사라지는 얼음은 이누이트족의 눈물이 돼 흐른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시선과 노력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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