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승한 승객 수만큼 갖가지 사연을 싣고 달리는 버스, 지나치는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존재다. 여기 버스를 색다르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달리는 버스를 그냥 보내지 않고 매력을 포착해 온 이종원 동문(사진전공 15학번)은 오늘날 도로에 존재하지 않는 버스를 여러 대 소유하고 있다. 그는 버스가 지닌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국에 버스 박물관을 짓고 버스 테마 공원을 만드는 꿈을 가진 이종원 동문. 꿈을 향해 삶을 운전해가고 있는 그의 버스에 올라타 지나온 길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해균 기자 sun_virus02@cauon.net 사진 정다연 기자 almostyeon@cauon.net

2월 27일 다빈치캠에서 이종원 동문을 만났다. 그는 본인이 소유한 버스를 소개하며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2월 27일 다빈치캠에서 이종원 동문을 만났다. 그는 본인이 소유한 버스를 소개하며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버스 박물관을 짓겠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회에 뛰어들었고 이를 위해선 누구보다 상업적이고 냉정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덕업일치’, 본인이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뜻의 신조어다. 스무 살 이종원 동문은 지상파 프로그램에 출연해 엔진 소리만 듣고 버스 차종을 맞히며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버스를 사랑한 청년은 이제 희귀한 버스를 하나씩 모아 대여하는 일을 한다. 촬영소품대여사업가가 된 그는 어느덧 20여 대의 버스를 소유하고 있다. ‘덕업일치’를 이뤘지만 그는 더 큰 꿈을 꾼다. 한국에 버스 박물관을 짓고, 버스 테마 공원을 세우는 일이다. 버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업을 빠르게 확장해나간 그이기에 왠지 그가 꾸는 꿈은 금세 이뤄질 것만 같다. 머지 않은 미래에 꿈을 이루고, 또 새로운 꿈을 꿀 이종원 동문을 만났다.

  -버스에 관심 가지게 된 계기는.
  “뉴질랜드에 살다 온 적이 있습니다. 뉴질랜드에선 지역마다 옛날 교통수단을 직접 타보며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이 있어요. 그만큼 옛날 물건에 대해 깊은 애착이 있죠. 하지만 한국은 교통수단을 타고 이동하는 것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통수단이 가지는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도외시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게 됐죠. 그렇게 13살 때 한국에 버스 박물관을 짓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습니다.”

이종원 동문은 직접 버스를 운전하기도 한다. 그가 운전하는 버스의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더욱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이종원 동문은 직접 버스를 운전하기도 한다. 그가 운전하는 버스의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더욱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기억에 남는 수업이 궁금하다.
  “3학년 때 수강한 <예술사진프로젝트>입니다. 기말 평가로 사진 전시를 했었는데요. 당시 60명의 수강생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이 없었죠. 교수님께서 제 버스를 활용해 내부를 갤러리처럼 활용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그렇게 30명은 학교 근처 건물에서, 나머지 30명은 5명씩 돌아가며 갤러리처럼 꾸민 버스 내부에서 전시했던 기억이 있어요. 버스를 활용한 첫 전시라 반응이 좋았어요. 예술대 교학지원팀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죠.”

  -사진전공이 도움이 됐나.
  “다른 촬영 대여 업체에선 차만 대여해주면 끝이지만 저는 최적의 촬영 시간대나 날씨, 운행 경로를 추천합니다. 그 과정에서 사진을 전공하며 배웠던 지식을 활용할 수 있었죠. 사진은 조명부터 촬영까지 모두 혼자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사진, 영상, 조명에 대한 개념이 모두 잡혀 있죠. 이런 지식을 십분 활용해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각도나 콘셉트, 로케이션을 추천하기도 해요. 드라마나 영화를 촬영할 때 배우의 연기가 끊기지 않도록 차를 운전하는 것도 중요한데요. 신호등이 빨간불로 변했는데도 대사를 이어가기 위해 신호를 위반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죠. 이에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는 최적의 운행 경로를 제안하곤 합니다.”

1990년대를 재현한 삼성증권 광고에서 이종원 동문의 버스를 찾아볼 수 있다. 화면에 등장한 그의 버스는 많은 이의 머릿속에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할 테다. 사진출처 삼성증권
1990년대를 재현한 삼성증권 광고에서 이종원 동문의 버스를 찾아볼 수 있다. 화면에 등장한 그의 버스는 많은 이의 머릿속에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할 테다. 사진출처 삼성증권

  -인생의 전환기가 있다면.
  “1학년 때 MBC <능력자들>에 출연하며 인생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버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방송에 많이 출연했지만 저처럼 버스에 관해 진지하게 논하며 역사 유물로서 버스를 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방송 출연을 계기로 버스를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할 수 있었어요. 덕분에 버스를 활용한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널리 알릴 수 있었죠. 방송 출연 후 버스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유명해져 주변에서 버스 성대모사를 요청하기도 했어요.(웃음)”

  -사업 시작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생 때부터 촬영 소품차 대여 사업에 관심을 두고 관련 업계에서 일했습니다. 사업에 대한 사장님들의 조언과 어깨 너머로 배운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죠. 관련 업계에서 일하며 촬영에 필요한 버스나 트럭이 있으면 직접 구해다 드리고 그에 대한 수입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좋아하는 차와 전공한 사진을 융합해 독창적이고 경쟁력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싶었습니다. 버스 대여 사업이 틈새시장이라고 생각했죠. 업계에서 일하면서 촬영이 끝나면 사용했던 버스를 처분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영화, 드라마, 뮤직비디오, 광고를 촬영하며 필요한 버스를 빨리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죠. 수요가 충분하다고 생각해 사업을 결심했습니다.”

  -처음 구매한 버스는.
  “2017년 11월에 첫 버스를 구매했습니다. 한국 최초로 도입된 초저상 버스인 2007년식 대우버스죠. 바닥에 계단이 없어 노약자나 장애인이 승하차하기 편한 버스예요. 기업이나 운수업체에서도 옛날 버스 보존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당시 버스에 관심이 많은 동호인과 후원 모금을 해 이 버스를 샀죠.
  두 번째 버스는 고등학교 후배와 함께 돈을 모아 2019년에 구매했어요. 처음에 한두 대 모으던 게 이제 23대가 됐습니다. 버스를 계속 구매하는 과정에서 중앙대와 많은 분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사업이 확장되면 회사에 중앙대 후배들을 고용하거나 학교에 기부금을 내는 등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차는 어떻게 구매하나.
  “보통 수출상사나 매매상을 거치지 않고 차주에게 직접 구매합니다. 차주와 직접 거래하는 게 훨씬 저렴하거든요. 공항 등에서 진행하는 입찰에 들어가 낙찰을 받기도 해요.
  사람들은 대형버스가 승용차보다 크니 비싸다고 생각하지만 매입 비용이 사실 더 저렴해요. 한국에선 10년 이상의 영업용 버스를 사용할 수 없어 연식이 오래된 버스는 싸게 매입할 수 있죠. 화물·승합차로 분류돼 세금도 많이 나가지 않아 가격 경쟁력도 있습니다. 사업 초창기엔 차 수리비가 많이 들어 어려운 시기가 있었어요. 하지만 점차 요령이 생기고 사고도 줄다 보니 수익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보유하고 있는 버스 중 가장 좋아하는 버스는.
  “돈을 가장 많이 벌어다 준 1996년식과 1997년식 현대 시내버스입니다. 동시에 제 미숙함으로 수리비가 많이 나간 버스이기도 합니다. 인천공항에서 셔틀버스로만 운행해 주행거리가 짧아 신차와 다름없어요. 1990년대 차는 미싱 링크예요. 다른 촬영 대여 업체들이 1980년대, 2010년대 콘셉트의 버스는 갖고 있지만 1990년대 버스는 갖고 있지 않죠.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에선 이 버스를 대여합니다.
  이 버스는 시내버스의 초기형 모델이라 결함이 많아요. 원래 에어컨 전용 엔진과 에어컨 전용 배터리를 따로 사용하지만 이 버스는 차체 배터리로 에어컨 가동과 버스 전체 엔진 전력 계통까지 통합돼 운영됩니다. 저는 뒤늦게 안 사실인데 이 차가 운행될 당시에도 배터리 방전 사태가 속출하던 차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사업을 빠르게 정착시켰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블로그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누적 방문자 수가 110만명 정도 되죠.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검색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제 블로그 글이 상단에 노출되는 거예요. 블로그를 통해 사업 관련 연락도 많이 왔습니다. 인터넷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업을 빠르게 정착시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고비는 없었나.
  “사업 초기에 수리비가 많이 나올 때면 회의감이 들기도 했는데요. 고비를 넘기고 나니 회의감이 사라졌죠. 사업 초창기에 고비가 있을 수 있어요. 그 고비를 잘 이겨낼 수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죠. 내가 하는 사업에 비전이 있다고 생각하면 내 주관을 밀고 나가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난 뒤에 후회하는 게 낫죠.”

  -사업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 마디.
  “저는 사업가로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풍족하고 찬란했던 1980년대와 1990년대 향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요. 이에 맞춰 다양한 시대극이 나오고 있죠. 마침 제가 옛날 시대극에 쓰기 좋은 버스들을 갖고 있으니 시대 운이 많이 따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대극이 많이 나오는 시기에 경쟁업체들이 공간 문제로 버스를 모두 없애버린 상황이었는데요. 제가 보유한 옛날 버스에 대해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면서 비교적 비싼 단가로 대여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업을 하다가 지칠 때가 있을 텐데 답답해하지 않았으면 해요. 준비된 사람한테 기회가 찾아오니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 기회를 잘 잡았으면 합니다.”

  -‘덕업일치’의 삶은 어떤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더는 그 일을 좋아하기 힘들다고 얘기하잖아요. 저도 조금 그렇긴 했죠. 버스를 좋아하는 동호인이었을 땐 신차 시승 이벤트에 가곤 했는데요. 지금은 일이 바빠 잘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버스를 타기만해도 가슴 설레는 시기는 지나가고 버스를 이용해 수익을 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버스 박물관을 짓겠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회에 뛰어들었고 이를 위해선 누구보다 상업적이고 냉정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업을 계속 이어가 제 꿈을 위한 발판이 충분히 마련된다면 미래에는 옛날 버스를 체험할 수 있는 테마 공원도 세우고 싶어요.”

  -당신에게 중앙대란?
  “꿈을 펼칠 수 있게 해준 곳입니다. 그래서 더 고마운 곳이죠. 중앙대라는 첫 징검다리가 없었다면 사실 다음 단계의 징검다리들도 없었을 거예요. 사업의 첫 단추를 잘 끼울 수 있었던 좋은 보금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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