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우 동문(연극전공 15학번)은 완전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어린 시절을 세트장에서 보냈다. 촬영을 위해 학교에 빠지기도 하고 장시간 촬영을 어린 몸으로 버티기도 했다. 그 경험이 거름이 되었던 걸까. 그는 누구보다 자기 삶에 대한 철학이 탄탄한 어른으로 성장했다.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은 아역배우 박건태는 오늘의 배우 박건우를 더 빛나게 할 테다. 어린 시절부터 초롱초롱하던 그의 눈망울처럼 앞으로 더 반짝일 배우 박건우 동문을 만났다. 정해균 기자 sun_virus02@cauon.net 사진 최예나 기자 yesme@cauon.net

박건우 동문은 아역배우 시절 박건태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미래를 보는 소년'에서 “호떡집에 불이 날 것”이라고 외치던 소년 박건태는 2023년 청년 박건우의 열정까지 내다봤을까.
박건우 동문은 아역배우 시절 박건태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미래를 보는 소년'에서 “호떡집에 불이 날 것”이라고 외치던 소년 박건태는 2023년 청년 박건우의 열정까지 내다봤을까.


“아역배우 시절의 박건태에게 한마디 하자면 그냥 수고했다고 머리를 세게 쓰다듬어주고 싶습니다. 잘 자라줘서 고맙다는 마음도 담아서요.”

“이따 5시에 호떡집에 불이 날 거예요”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드라마 <미래를 보는 소년>의 대사이자 많은 이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 ‘밈(Meme)’이다. 노란 티셔츠를 입고 다급히 전화를 걸던 어린 배우는 어느새 성인이 됐다. 이제 그는 누군가의 어린 시절이 아닌 누군가의 현재와 미래를 연기한다. 외면의 성장과 더불어 견고한 내면을 구축하고자 노력하는 박건우 동문(연극전공 15학번)의 깊은 서사를 따라가 봤다.

  -연극을 전공했다고.
  “아역배우 활동으로 촬영 현장에서의 노하우를 얻었지만 데이터화된 연기 이론에 대해선 잘 몰랐어요. 제가 가진 현장 지식을 이론화하는 데 항상 갈증을 느꼈죠. 연기 이론을 배워 현장 지식을 체계화한다면 제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연기에 대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자 중앙대 진학을 결심했어요. 약 7개월간 연기 입시 학원에 다니며 연기나 발성, 호흡을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수업이 궁금하다.
  “입학하고 처음 들었던 백남영 교수님의 <기초연기1>이 기억에 남아요. 대학교 수업인만큼 체계적이고 어려운 연기 수업을 기대했는데요. 제 기대와 달리 동물의 움직임을 묘사하거나 대사 없이 몸으로만 연기하는 등 기초적인 연기를 배워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현장에서의 치열하고 복잡한 연기와 달리 노는 듯 자유롭게 연기하는 것이 신선하고 인상 깊었어요.”

  -중·고등학교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연기 활동도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싶었습니다. 당시 중학교 내신 점수와 연합고사 점수에 따라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는데요. 용인에서 비교적 합격 컷이 높았던 보정고등학교에 진학하고자 열심히 공부했죠.
  당시 촬영 때문에 학교에 결석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학교에 있는 시간 동안은 두 배로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매사 열정적으로 나선 덕에 고등학교 3년 내내 반장을 맡았고 학교 방송부에서 PD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대학교 생활이 궁금하다.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며 조용히 생활했습니다. 당시 연극전공생이라면 필수로 참여해야 하는 부서활동이 있었는데요. 학교 방송부 경험을 살려 학과 행사 등의 홍보를 담당하는 선전기획부에서 활동했습니다. 나름대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부서 내엔 저보다 훨씬 잘하는 부원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간식을 사 오거나 재밌는 얘기를 하며 부원들의 능률을 높이는 역할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중앙대 필수교양 <ACT>, 배우에겐 어땠나.
  “연극전공생에게도 <ACT>는 부담스러운 과목입니다. 제가 연극전공이니 첫 팀 활동에서 팀원들로부터 묘한 압박감과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기도 했죠.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ACT>를 수강했는데요. 기초 연기 지식 없이 연기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과정이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계속 연기를 공부하고 고민하다 보면 연기가 마냥 즐겁진 않아요. 타과생임에도 전공생보다 더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발표를 준비하는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졌죠. 연기 실력보단 소통이 더 중요한 수업이잖아요. 팀의 일원이자 전공생으로서 의견을 내며 맡은 일을 열심히 해냈던 기억이 납니다.”

  -배우가 된 계기는.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한 기저귀 브랜드 사진 공모전에 제 사진을 제출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사진이 1등을 했고 이를 계기로 어머니께선 저를 아역배우로 키워야겠다고 결심하셨죠. 그렇게 연기학원을 다니면서 처음엔 길거리를 지나가는 꼬마 배역을, 그다음엔 대사 한 마디 있는 꼬마 배역을, 그다음으로 주연배우의 아들 배역을 맡는 식으로 연기를 시작했습니다.”

  -아역배우 활동이 힘들진 않았나.
  “아역배우로 활동하며 12시간 넘게 촬영하거나 무리하게 학교 수업을 빼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역배우를 배려하는 촬영 현장은 아니었죠. 어렸을 때부터 그런 환경을 경험하다 보니 자연스레 적응한 것 같습니다. 모든 어린이가 저처럼 힘들게 사는 줄 알았어요.(웃음) 힘든 순간들도 있었지만 배우로서의 출발선을 끊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죠. 아역배우 시절의 경험이 현재 제게는 피와 살이 된 것 같아요.
  힘들어도 연기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었는데요. 배역을 잘 소화하거나 어려운 장면을 마쳤을 때 촬영 현장 관계자분들의 칭찬에 큰 성취감을 느꼈죠. 촬영 이외에 부가적으로 배우는 것들도 재밌었습니다. 드라마 <김수로>를 촬영할 땐 말을 타는 장면을 소화하기 위해 3개월 정도 승마를 배웠어요. 드라마 <자명고>의 무술장면을 위해 액션스쿨에 다니며 무술을 배우기도 했죠. 칭찬도 받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다 보니 당시엔 힘든 일이라고 느끼지 못한 것 같습니다.”

  -‘호떡밈’을 알고 있는지.
  “그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어요. <미래를 보는 소년> 촬영이 끝나고 몇 년 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면서 ‘밈화’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 작품을 교과서로 배운 세대가 아니라 뒤늦게 그 사실을 접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많은 분이 저를 알아주시고 좋아해 주시니 감사한 마음이죠. SNS에 호떡밈 게시글이 올라올 때마다 지인들이 절 태그해 놀리는 건 조금 피곤하긴 합니다.(웃음) 신기한 게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그 밈이 다시 SNS에 올라오더라고요. 그런 관심들이 감사하죠.”

  -아역배우 이미지가 강한데.
  “아역 출신 배우의 고민은 아역배우 이미지의 고착화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성인 연기자로서 어떻게 연기 생활을 이어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죠. 입대 전까진 아역배우 이미지에서 탈피하려면 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요즘엔 아역배우와 성인 연기자 모두 제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내면이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역배우는 작품 내에서 서사가 짧은 배역을 연기하니 단편적으로 연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성인이 되면서 서사가 길고 입체적인 배역을 연기하니 감정이 깊어지는 요소가 많아졌죠. 이를 잘 표현하기 위해 내실을 다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역배우에서 성인 연기자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이런 생각이 좋은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해요. 좋은 연기를 위해선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경험하기엔 한계가 있어 독서를 통해 간접경험을 하고 있죠. 성숙한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하고자 노력 중이에요.”

  -배우라는 직업의 매력은.
  “자신의 삶을 넘어 타인의 삶까지 경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배우는 다양한 배역을 연기하며 스펙트럼 넓은 경험을 할 수 있는데요. 어떤 배역을 맡아 연기할 때 그 사람의 삶을 잠깐 살아볼 수 있죠.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작품 안에서 제가 맡은 배역은 어떻게 행동할지 고민하며 그 사람의 인생을 맛볼 수 있습니다.”

  -아역배우 박건태에게 한 마디.
  “수고했다고 머리를 세게 쓰다듬어주고 싶습니다. 잘 자라줘서 고맙다는 마음도 담아서요. 한 사람이 인격체로 성장하기까지 주변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직 인격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는 주변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모할지 알 수 없죠. 해외에선 아역으로 활동하던 배우가 크면서 탈선하기도 하잖아요. 아역배우로 활동하며 정신적·체력적으로 힘들었을 텐데 엇나가지 않고 잘 커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있다면.
  “연기가 싫었던 적이 별로 없는데요. 드라마 <김수로> 촬영 중 사춘기를 겪으면서 연기하는 게 싫었던 적이 있습니다. 호르몬 변화로 외적인 부분이 변하다 보니 수백 명이 보는 앞에서 연기하는 게 부끄러웠어요. 연기하는 게 행복하지 않았죠. 당시 감독님과 부모님, 스태프들이 격려해주신 덕에 마음을 다잡고 작품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연기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연기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요.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연기를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꿈을 찾아 방황하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재능과 영감에 기반한 폭발적인 연기도 중요하지만 기본 습관에서 오는 안정적인 연기도 중요하죠. 안정적으로 연기할 수 있는 좋은 습관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좋은 습관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영감은 버려라. 습관이 더 믿을 만하다. 습관은 영감을 받든 받지 못하든 당신을 지탱해 줄 것이다.’ 제 마음에 와닿은 미국의 소설가 옥타비아 버틀러의 말입니다. 꿈을 향한 열정이나 집요함도 좋지만 좋은 습관을 갖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습관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지탱해줄 수 있죠.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은 아니지만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습니다. ”

  - 당신에게 중앙대란?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이어준 다리 같은 존재예요. 촬영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다르게 같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선후배님들과 좋은 교수님들을 만나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죠. 중앙대에 진학하지 않았다면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과 인연을 이어갈 수 없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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