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앞장선 역사 왜곡
대일 저자세 외교 언제까지


3.1운동을 기념하는 국경일에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일본의 책임과 사과’가 아닌 ‘자아 성찰과 협력’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며 우리나라가 대처해야 할 복합적인 위기들이 있음을 강조했다. 이어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의제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다”며 우리나라에 있어 일본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5분 20초 분량의 기념사 동안 일본의 책임과 사과를 언급하는 대목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문장이다. 과거는 단순히 지나버린 시간에 그치지 않는다. 개인에게 있어 과거란 지금의 그를 구성하는 조각이자 처절했던 모든 순간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삶조차 이럴진대 한 나라의 역사는 오죽할까. 그런 의미에서 이 문장이 지니는 무게는 가볍지 않다. 과거를 비튼다는 것은 현재를 부정하고 미래를 바꾸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는 식민사관을 설파하며 조선의 역사를 비틀었다. 조선이 당파싸움만 하다 성장하지 못해 식민지로 전락하게 됐다는 당파성론이 대표적이다. 식민사관을 통해 일제는 자본주의가 싹트던 조선을 외부의 조력이 필요한 국가로 만들었고 이는 식민지배의 정당화로 이어졌다. 2023년 3.1절에 이뤄진 역사 왜곡이 우리에게 충격을 준 것은 그것이 조선총독부 총독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 때문이었다.

  식민 지배의 책임을 조선의 무방비 탓으로 돌린 대통령의 저의는 무엇일까. 3.1절 기념사를 두고 일어난 논란에 대통령실은 “양국 국민은 과거보다 미래를 보고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채 아물지 못한 과거는 뒤로한 채 미래를 보고 가야 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심정은 어떨까. 양국 관계개선 필요성이 제기될 때면 뒤로 미뤄지는 것은 과거가 아닌 자국민이라는 것을 정부는 아는지 의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저자세 외교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6일 일본에서 해상자위대 창설 7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 관함식이 열렸다. 우리나라 해군은 2015년 이후 7년 만에 일본에서 열린 관함식에 참석했다. 행사에 참여한 장병들은 이즈모함에 걸린 해상자위대기를 향해 경례해야 했다. 해상자위대기는 욱일기와 동일한 디자인이다.

  2월 16일엔 서울특별시 남산 부근의 한 호텔에서 나루히토 일왕의 생일 행사가 열렸다. 해당 행사에선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 중 하나인 기미가요가 틀렸다. 기미가요는 일왕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은 일본의 국가로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조선인에게 강제로 부르게 했던 배경이 있다. 행사에 참석한 산케이 신문은 “윤석열 정권이 대일관계 개선을 지향해 찌그러진 양국 관계를 벗어날 호기라고 판단했다”고 분석했다.

  현 정부의 대일 외교가 관계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는 하지만 국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저자세 외교라는 지적을 피할 순 없을 듯하다. 우리나라 정부가 일본에 납작 엎드릴 동안에도 과거를 지배하려는 일본의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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