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6일 서울특별시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노란봉투법 연내 입법 촉구 결의대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의 손에는 노란봉투법을 지지하는 내용의 피켓이 들려있다.
지난해 10월 6일 서울특별시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노란봉투법 연내 입법 촉구 결의대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의 손에는 노란봉투법을 지지하는 내용의 피켓이 들려있다.

 

2013년 말, 한 언론사 편집국으로 노란 봉투가 전달됐다. 노란 봉투 속에는 편지와 함께 4만7000원이 들어있었다. 쌍용차 노동자가 정리해고 반대 파업에서 사측에손해를 입혀 47억원을 손해배상하라는 판결을 본 평범한 주부 배춘환씨가 노동조합원들을 돕기 위해 보낸 것이다. 노란봉투법은 이 일화에서 비롯됐다. 노란봉투법은 천문학적인 손배·가압류로 노동조합(노조)의 활동이 위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발의됐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은 거부권 행사까지 거론되며 개정에 난항을겪고 있다.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갈등을 알아보고 쟁점을 분석했다.

  깊어지는 갈등

  2010년 12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생산직 근로자 희망퇴직결정에 반발해 파업 및 농성을 벌인 사건이다. 한진중공업 노조는 “정리해고 전면 철회”를 요구하며 크레인을점거하는 등 농성을 벌였고 그 결과는 약 158억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었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CJ대한통운(대한통운)의 하청 택배노동자들이 ‘택배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라며 원청인 대한통운 본사에서 3주간 농성한 것에 약 2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농성과 파업이 일어나기 전 원청인 대한통운은 하청인 택배노조 조합원들의 사용자가 아니기에 대화 대상이 아니라며 택배노조와의 단체교섭을 거부했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은 사업주와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자를 사용자로규정해 조합원들에 대한 대한통운의 사용자성을 인정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어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총파업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2022년 12월 6일, 화물연대 파업 관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나서는 기업을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같은 날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보도자료를 통해 “화물연대 파업의 영향으로 공공주택 건설공사가 중단될 경우 하루에 최대 46억원의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며 “파업으로 인한 입주 지연 피해가 발생할 경우 손해배상청구를 검토할 수있다”고 밝혔다. 화물연대는 발표 3일 뒤인 9일 총파업을 중단했다.

  위 사례들은 노란봉투법의 대표적인 취지를 잘 드러낸다. 노조나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천문학적인 금액의 손해배상은현실적으로 이행이 어렵다는 점과 노동조합법의 사용자의 범위가 현실 노사관계를 규율하기에 좁다는 점이다. 이상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책2본부장은 “수많은 노조가 파업 후 사측의 보복성 손해가압류 폭탄으로 와해됐다”며 “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정부와 사측이 손배가압류를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압박 줄이기? 책임 거두기?

  노사관계의 여러 문제 속에서 등장한 노란봉투법은 노동자·사용자·정부 모두의 입장이 분분해 입법에 갈등을 겪고 있다. 그중 가장 갈등을 겪는 부분은 손해배상책임과 관련한 논의다. 현행 노동조합법은 합법적인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는 노조 또는 근로자에 대해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다. 하지만 그외의 행위로 인한 손해는 노조의 책임이 인정될 경우 노조와 조합원들 사이에 부진정연대책임이 성립한다고 본다. 반면 노란봉투법은 노조의 책임이 인정될 경우 배상의무자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한다고 본다. 이는 조합원 개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겠다는 의미이다. 이상윤 본부장은 “손해배상 청구 자체를 금지시키는 것이 아닌 사용자가 손해배상소송을 노조 탄압 목적으로 남용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라며 “노동조합의 파업에서 이뤄지는 폭력·파괴행위를 용인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손해배상 책임 관련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의견을 보였다. 송강직 교수(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손해배상액 책정에서 쟁의행위를 기획, 주도한 노조 간부뿐만 아니라 이에 참가한 근로자들 상호간의 부진정연대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사실상 근로자들의 단결권 및 단체행동권을 일부부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영수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은 “불법행위가 없으면 손해배상도 없고 가압류도 없다”며“불법 파업에 대해 손해배상을 하면 손해배상에 대해 파업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밝혔다. “다만 사용자들이 근로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앞세워 압박을 하는경우도 있기는 하다”고 덧붙였다. 노조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에 따라 손해배상의 상한액을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정 교수(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재정적으로 열악한 노조에 감당하지 못할 금액을 청구해버리면 노조 자체가 와해된다”며 “15억 이상을 손해배상 청구할 수 없도록 규정한 영국 사례처럼 한국도 노조 재정을 공개한 후 손해배상의 상한액을 설정해 노조의 재정상태에 동떨어지지 않는 손해배상청구를 하도록 해야한다”고 언급했다.

  누가 사장인가

  현행법에 비해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가 더 넓다. 노란봉투법은 현행법에서 규정하는 사용자를 넘어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로 본다.

  최근 중앙노동위원회(중노)는 대한통운이 하청 택배노동자와 근로계약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단체교섭을 거부한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해석했다. 이에 반발해 대한통운이 중노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는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하므로 단체교섭을 거부할 수 없다’는 이유로 패소하는 등 법원도 원청의 사용자성을 폭넓게 인정했다. 이상윤 본부장은 “이번 노란봉투법 개정안은 ‘실질적으로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지배·결정하는자’를 사용자에 포함했다”며 “노동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단체교섭의 상대방으로서 노조법상 사용자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정한다”고 평했다.

  우려를 표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장영수 교수는 “원청과 하청의 관계는 회사마다 다르기 때문에 사용자 범위 확대는 상당한 문제를 야기한다”며 “현실과 맞지 않고 악용될 소지도 상당히 크다”고 언급했다. 다만 “형식상으로는 하청이지만 실질적으로 자회사처럼 운영되는 경우라면 원청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이정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사용자가 노동자를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다’는 잣대가 굉장히 애매하다”며 “같은 사안에도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어 법적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전했다.

  더 넓은 쟁의의 기준

  현행 노조법은 노동쟁의를 근로조건의‘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해 발생한 분쟁상태로 정한다. ‘결정’이란 문구를 넣어 사용자가 노동법을 위반하거나 노조와 다르게 해석했을 때 발생하는 ‘권리분쟁’을 노동쟁의의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단체협약 체결 요구나 기존 규정 개선을 위해 발생하는 ‘이익분쟁’은 노동쟁의의 대상으로 본다.

  그러나 노란봉투법은 현행법에서 ‘결정’이라는 문구를 삭제해 권리분쟁을 노동쟁의의 범위에 포함시킨다. 현행법에 따르면 사용자가 노동법을 지키지 않았을 때 근로자가 파업 등 쟁의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이다. 노란봉투법은 동일한 행위를 적법하다고 판단해 교섭, 파업을 할 수 있는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이정 교수는 “권리분쟁의 대표적인 예시는 ‘해고’”라며 “부당해고 관련해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같은 사안에 대해 파업을 할 수 있게 된다”고 노동쟁의 확대는 조심히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껏 노동쟁의를 좁게 해석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송강직 교수는 “현재의 해석은 노동위원회가 노동쟁의에 대한 조정을 활발히 하기를 기대하는 노동위원회법의 취지와 상반된다”며 “분쟁의 사전예방이라는 노동쟁의 조정제도의 취지에 비추어볼 때 노동쟁의의 개념을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경제계를 대표하는 6단체는 노란봉투법이 통과될 경우 파업만능주의, 국가경쟁력 저하 등의 영향을 불러올 것이라 평했다. 한편 노동계는 노조법 전면 개정을 위한 첫걸음이라 평하며 의미 있는 진전이라 언급했다. 큰 파장이 예상되는 법안의 논의, 개선 움직임을 위해선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사람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동시에 국민도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