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번째 봄이 나에게 오고 있다. 대학 입학 후 처음으로 중앙대에서 맞이했던 봄. 그 때의 따스함과 냄새는 20년 세월을 훌쩍 넘어도 아직도 어제처럼 콧잔등에 남아있다. 설레었다. 키는 나와 비슷하나 왠지 모르게 더 커 보이는 선배들, 가파른 언덕배기 학교, 푸르른 청춘, 그 어느 하나 봄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깔깔대는 동기들의 웃음소리와 시시콜콜한 농담이 마치 봄 햇살 아래 지저귀는 노란 방울새의 울음처럼 시끄럽지만 마음의 안정감을 주었다. 어느 따스한 날에 공대에서 내려가는 가파른 언덕길에서 나는 첫사랑과 만났고 그 아름다운 광경은 봄에 알맞게 어울렸다. 

  그 때는 몰랐다. 내 스스로가 봄이었기 때문에 내 모든 것이 봄과 그렇게 잘 어우러질 수 있었음을... 무엇을 해도 괜찮았다. 잘 몰라도 실수해도 다시 하면 되었다. 움틔어 나오는 새싹, 당장은 달린 열매가 없을지라도 괜찮았다. 그 끝에서 어떤 열매를 맺게 될 줄 누가 예상할 수 있으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였고 무엇이든 가능한 존재였다. 무엇이든 꿀 수 있는 꿈이었고 품을 수 있는 희망이었다. 

  그 후로 10년 가까이 나는 중앙대를 떠나 타 대학에서 대학원생으로서 교수로서 종종 봄을 맞았다. 매해 나를 찾아주는 봄은 어김없이 따스했고 찬란했지만, 점점 더 나는 봄에 어울리지 않음을 느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이 생겨났고, 도전할 수 있는 것과 도전할 수 없는 것이 생겨났다. 난 이제 더 이상 봄이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더 이상 빨갛지 않은 입술. 낭만을 부리는 것은 나태가 되고 도전을 하는 것은 객기가 되며 소신을 갖는 것은 아집이 된다. 그런데도 이런 나에게 어김없이 또 봄은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모교에 교수로 돌아와 만나는 수많은 봄들에게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라떼가 말이 되는 시절인지라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어떤 봄들은 나의 지난 행적에 관해 물으며 나와 같은 길을 가고 싶어 하지만 속으로만... ‘봄아, 너는 누군가의 세월을 답습하지 말고 너만의 꿈을 품고 더 큰 세상에서 빛나거라.’ 무엇을 해도 찬란하고 예쁜 봄. 어쩌면 지는 칼바람이 피는 꽃을 시샘하듯 그들을 만나는 내내 나는 그들이 부러운 지도 모르겠다. 종종 그들의 노력은 잔인하게 평가된다. 졸업은 멀었는데 졸업 후의 일을 걱정한다. 가끔 행복해하고 많이 고뇌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무색할 정도로 그들은 젊고 아름답다. 

  앞으로의 세월동안 내가 마주할 그 모든 봄들을 나는 사랑하리라. 텅 빈 그릇, 아직 점하나 찍혀지지 않은 하얀 캔버스. 때로 그 온전한 깨끗함이 가져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자신을 뒤흔들고 어찌할 바를 몰라 헉헉대더라도... 원래 봄은 종종 날카로운 꽃샘추위의 이빨을 드러내는 법. 이것조차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일이다. 마냥 천진하게 캠퍼스의 봄을 만끽하여라. 너희는 그 자체로서 찬란하다.  


박시현 교수 간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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