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택배기사 ‘사장님’께서 현관문 앞까지 택배를 갖다주셨습니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다음 날 받아볼 수 있는 편리한 세상입니다. 어떻게 하루 만에 도착할 수 있었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운송장 조회를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모두가 잠든 시간에 일하는 화물 운송 기사 ‘사장님’들의 흔적이 보입니다. 간선 상차 0시 57분, 간선 하차 4시45분. 끝자리도 간격도 불규칙한 시각은 어떤 기준이라도 있는 걸까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새벽의 어둠만큼이나 물류의 세계는 불확실합니다. 사장님들은 상·하차 대기 시간 동안 쪽잠을 자거나 식사를 해결합니다.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과로’와 ‘규정 위반’뿐입니다. 사장님인데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니 말이 안 된다고요? 이상한 일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노동법의 현주소입니다. 사장님이 넘쳐나는 참 이상한 세상입니다.

  택배 노동자와 화물 노동자는 대부분 ‘특수고용노동자’입니다. 이들은 법적으로 1인 자영업자, 즉 사장님입니다. 종속된 상태가 아니므로 노동 방법과 시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사장님이 과로로 고통받고 있다는 말은 꽤 어색하게 들리는데요. 이들이 실질적으로 사장님이 아닌 노동자이기 때문입니다. 사용자가 불명확한 상태에서는 노동 과정과 결과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합니다.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자 권리를 위한 법과 제도에 근거하여 보호받지 못합니다.

  화물 노동자는 화주와 계약을 성사하지 못하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실상 고용 불안정 상태입니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불평등한 계약관계라도 일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 이유입니다. 최소한의 임금을 보장할 안전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노동자 사이의 경쟁이 과열되면 임금은 비상식적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무리한 규정 위반 또한 이러한 이유에서 발생합니다.

  경쟁을 완화하고 최소한의 임금을 보장하고자 하는 제도가 바로 '안전운임제'입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 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하고, 그들을 과로에서 벗어나게끔 합니다. 이는 도로 위 안전과도 직결된 문제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안전운임제를 폐지하고 도리어 노동자를 억압하고 있습니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법대로 하라고 말하는 것보다 무책임한 일은 또 없습니다. 부당함은 사실상 ‘법대로 하기’ 어려운 상황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제도는 빠르게 진화하는 고용 형태에 맞서 노동자를 보호하기는커녕 기득권층의 이익만을 대변하며 퇴보하고 있습니다. 허울뿐인 자유 앞에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목소리는 한없이 작아집니다. 부조리가 ‘자유’로 포장되는 현실에 유감을 표합니다.

임은재 사진부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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