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섬, 일본의 홋카이도에는 아이누족이 산다. 그들의 탄생 설화인 <레타르 세타>와 이를 기반으로 등장한 만화 <모노노케 히메>는 현대 사회에 새로운 메시지를 던진다. 인간과 자연의 대립, 그 속에서 공존의 가능성을 찾는 것은 과연 불가능할까.
 
  <레타르 세타>, 하얀 개 이야기
  
사람의 기원에도 여러 이야기가 있듯 민족의 기원에도 여러 이야기가 있다. 우리 민족의 설화 <단군신화>에 따르면 우리는 곰의 후손이 될 테다. 옆 나라 일본에는 하얀 개의 후손이 있다. 일본 홋카이도에 사는 아이누족이 그 주인공이다.

  일본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홋카이도에는 하얀 털을 가진 개와 한 소년이 함께 살았다. 소년은 하얀 개에게 아낌없는 애정과 사랑을 주었다. 하얀 개는 사람이 되어 자신을 아껴준 소년에게 도움을 주고싶다고 생각했다. 개는 소년을 위해 물통에 물을 푸려다 강으로 빠져버렸고 허우적거리다 이내 하천에 이르렀다. 지쳐 잠이 든 개는 꿈속에서 신의 기척을 느끼고, 눈을 뜨자 개는 아름다운 인간 소녀가 되어있었다. 집에 돌아온 소년은 소녀의 어머니가 개의 신이라는 것을 밝힌다. 소녀가 성장하자 소녀의 꿈에 개의 신이 등장해 소년과 가정을 꾸리라고 말했다. 그렇게 부부의 연을 맺은 소년과 소녀의 후손이 아이누족이 됐다는 이야기다.
 

'모노노케 히메'는 아이누족의 '레타르 세타' 설화를 원작으로 한다. 자연을 지키고자 하는 ‘산’과 인간 ‘아시타카’의 여정은 우리에게 자연과 인간의 공존 가능성을 제시한다. 사진출처 스튜디오 지브리
'모노노케 히메'는 아이누족의 '레타르 세타' 설화를 원작으로 한다. 자연을 지키고자 하는 ‘산’과 인간 ‘아시타카’의 여정은 우리에게 자연과 인간의 공존 가능성을 제시한다. 사진출처 스튜디오 지브리


  원령공주 이야기에 담긴 아이누족
  2003년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는 <레타르 세타>를 배경으로 한다. 이는 근대화의 과정 속 숲을 파괴하는 인간과 숲을 지키려는 신의 대립을 그린다. 하얀 들개에게 길러진 모노노케 히메 ‘산’과 에미시족의 차기 족장 ‘아시타카’의 관계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공존 가능성을 묻는다.
  
  조용상 교수(용인예술과학대 방송영화제작과)는 <모노노케 히메>에 등장하는 에미시족과 아이누족의 유사성에 관해 말했다. “만화에서 아시타카가 속한 에미시족은 주류인 야마토인으로 인해 북쪽으로 밀려나죠. 아이누족도 일본 본토에 살던 주류 원주민 야마토인으로터 배척당합니다.” 조혜정 교수(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는 <모노노케 히메>에 반영된 아이누족의 신앙을 설명했다. “아이누족은 자신들이 숭배하는 거대한 짐승들이 숲을 다스리는 신이라고 믿었습니다. 만화에도 들개신과 사슴신 등이 등장하죠. 이는 만화와 아이누족과의 연관성을 보여줘요.”
  
  아이누족의 설화 <레타르 세타> 에서 하얀 개였던 소녀와 인간 소년이 부부의 연을 맺는 것처럼 <모노노케 히메>는 산과 아시타카의 연결을 보여준다. 산과 아시타카는 죽음의 위협에서 서로를 구해준다. 인간에게 죽은 사슴신을 되살리기 위해 함께 고군분투하기도 한다. 만화 초반부 산과 아시타카는 서로에게 낯섦만을 느낀다. 하지만 후반부에는 인간을 원망하는 산이 아시타카에게 마음을 열고, 아시타카는 산을 만나러 다시 숲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러한 장면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얀 개가 전하는 메시지

  아이누족 설화 <레타르 세타>와 <모노노케 히메>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이야기한다. 조혜정 교수는 <모노노케 히메>가 오늘날 전하는 메시지를 언급했다.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야하는지에 대한 답을 줍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와 사회, 세대, 젠더 등 많은 분야의 갈등과 대립이 심화하고 있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모노노케 히메>는 공존의 가치와 공존을 위한 단계로써 이해와 타협이 필요함을 상기시키죠.” 서로를 배척하는 만화 속 자연과 인간의 모습은 우리 인간 사회를 닮았다. 이제는 공존을 위해 서로에게 한 걸음 내디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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