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때는, 미래의 ‘나’를 믿고 있었습니다. 지난여름의 어느 날 원고 청탁을 받고, 넉 달쯤 뒤의 내가 이 글을 진작 다 써놓았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정말로 흔쾌히 수락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많은 일이 밀려 있었고 미래의 ‘나’가 저절로 원고를 작성해놓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감 기한이 다가오고 말았습니다. 지금 저는 그야말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삼색펜을 딸깍거리고 몇 분에 한 번씩은 월드컵 축구 중계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혹시 강단사색 코너를 비워 놓고 중대신문을 발행해도 되는가 하는 헛된 생각도 한 번씩 하고 있습니다.

  쓰는 것은 늘 어렵습니다.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2019년 11월쯤부터 마침 재난 서사에 대한 연구논문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덮치며 작품 속에서 보던 재난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최진영의 소설 『해가 지는 곳으로』를 보면서 하던 생각을, 이제 뉴스를 보면서 해야 했습니다. 많은 것들이 혼란스러웠고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한참 동안이나 제대로 글을 쓰지 못하고 슬럼프는 길어졌습니다. 문서창의 커서가 왜 움직이지 않을까 계속해서 자책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 시간을 견디던 어느 날 별다른 계기 없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커서 위치가 조금씩 오른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작가들은 ‘희망도 절망도 없이’ 다만 계속 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끈기 있게 해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여러 해 전까지도 저는 희망도 절망도 소거시킨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과 괴로움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는 그런 불안과 괴로움을 없애버릴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저 어쩔 수 없이 계속 그 마음들을 제 안에 내내 품고 있는 상태로 지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아무튼 저는 계속 쓰고 있을 것입니다. 원고 청탁은 계속 수락되고, 머리도 계속 쥐어뜯고 삼색펜도 계속 딸깍거릴 것입니다. 애써 숨긴 불안의 뒤에서 제 목소리가 조그맣게 흘러나오는 것이, 저의 삶에는 무척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당신의 그 목소리들을 듣는 것도 마찬가지로 저의 삶에는 가장 소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그러한 쓰기의 고통과 불안을 짊어지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도 힘들지만 그럼에도 쓰고 있는 그 시간의 누적이 정말 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무엇을 위해서든 쓰고 읽고 또다시 쓰는, 그 희망도 절망도 없는 일들을, 그래서 늘 마음 깊이 응원하고 있습니다. 희망도 절망도 없다 하더라도, 불안과 괴로움은 끝까지 남아 있으니까요. 그 불안과 괴로움을 우리는 함께 견딜 것입니다. 

서세림 교수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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