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예술과는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지극히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분야로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부터 인간들은 그림이나 조각을 하는 과정에서 인체를 표현하기 위해 해부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요. 여기서 똑똑, 해부학이 문화예술의 문을 두드립니다.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직접 인체를 해부해 얻은 지식으로 후대에도 길이 남는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현대에는 ‘메디컬 일러스트’라는 이름의 분야가 탄생했죠. 해부학이 예술을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하시다면 지금 바로 펼쳐봅시다!  권지현 기자 rnjswlgus1103@cauon.net

들여다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풍경을 들여다보거나, 마음을 들여다보는 등 우리는 다양한 대상을 들여다본다. 여기 사람의 속을 들여다본 이들이 있다. 의학에 눈독 들이던 예술가들은 직접 해부에 나섰고, 이들은 더욱 섬세하게 인체 구조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의학과 예술, 두 분야의 만남은 어떻게 이어져 왔을까. 

“고대인들은 인간을 작은 세계라고 불렀는데, 이는 아주 적당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신체는 이 세계와 유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이다. '인체 비례도'로 알려진 다빈치의 '비트루비안 맨'은 인체 속 완벽한 질서를 구현하고자 했다.사진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고대인들은 인간을 작은 세계라고 불렀는데, 이는 아주 적당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신체는 이 세계와 유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이다. '인체 비례도'로 알려진 다빈치의 '비트루비안 맨'은 인체 속 완벽한 질서를 구현하고자 했다.사진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우리 속을 파헤치며 
  인간의 몸에는 200여 개의 뼈가 있고 그를 둘러싼 근육과 다양한 신경들이 존재한다. 이를 밝혀낸 것이 바로 해부학이다. BC 3000년경 고대 이집트인들은 미라를 만들 때 심장을 제외한 콩팥, 간, 허파 등만 제거했는데, 이 과정에서 인간의 몸 구조를 학습할 수 있었다. 당시 이집트인들의 목적은 미라를 만드는 것이었고, 고대 그리스부터 인체 구조 탐색을 목적으로 한 해부가 시작됐다.  

  이재호 교수(계명대 기초의학교실)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해부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를 말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을 모시기 때문에 숭배의 의미로 그들의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리스인들은 그들이 위대한 신들의 자식이라 주장하며, 세상 중심에 있는 우수한 종족임을 과시하고자 했죠. 그림·조각을 하는 등 우수한 문화기술을 이어왔는데 그 중심에 있는 인체를 표현해야 했기에 해부학에 관심을 갖게 된 거예요.” 

  그러나 BC 300년경 망자의 혼을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인간에 대한 해부가 전면적으로 금지됐다. 해부학의 암흑기를 지나 1500년대 근대 해부학의 창시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가 등장했다. 그는 실제 인골을 토대로 하여 기존의 해부학에 새로운 초석을 다졌다. 송창호 교수(전북대 해부학교실)는 베살리우스가 뛰어난 해부학자이자 예술가라고 언급했다. “베살리우스의 해부학 그림을 보면 책상 위에 손을 대고 기대어 있는 식으로 그렸어요. 마치 살아있는 모습처럼 형상화했죠. 정확한 그림을 넘어 배경도 함께 그린 것을 보면 뛰어난 예술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해부학은 인체의 구조를 치밀하게 그려낸다. 근대 해부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왼쪽에 위치한 그의 해부학은 특이하게도 배경 그림과 함께한다. 오른쪽에 위치한 작품 '아담과 이브'는 해부학의 생명 탐구라는 목적의식을 나타낸 창조론적 해부도다. 사진출처 네이버 건강백과  사진출처 메드아트
해부학은 인체의 구조를 치밀하게 그려낸다. 근대 해부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왼쪽에 위치한 그의 해부학은 특이하게도 배경 그림과 함께한다. 오른쪽에 위치한 작품 '아담과 이브'는 해부학의 생명 탐구라는 목적의식을 나타낸 창조론적 해부도다. 사진출처 네이버 건강백과 사진출처 메드아트


  캔버스 위 해부학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부흥은 해부학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당시 활동했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알브레히트 뒤러 등의 예술가는 직접 인체를 해부하며 얻은 지식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뒤러의 <아담과 이브>는 남성과 여성의 신체를 해부학적 구조와 비례에 따라 그린 작품이다. 또한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에는 인간의 뇌 해부도가 숨겨져 있다. 아담을 향해 확신에 찬 몸짓으로 다가오는 창조주와 그 주변을 둘러싼 배경이 두개골의 단면과 일치한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당대 위대한 해부학자이기도 했다. 화가가 해부학에 무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다빈치는 직접 시체를 해부하기도 했다. 그는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본 인체의 모습이나 태아가 들어있는 자궁의 해부도 등을 그렸다. 

  송창호 교수는 다빈치의 해부학적 업적에 관해 설명했다. “다빈치는 해부를 통해 신체의 구조와 기능을 연관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심장의 구조를 해부해서 심장이 어떻게 뛰는지, 근육을 보고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등을 연구했죠.” 

  유임주 교수(고려대 해부학교실)는 다빈치가 르네상스 시대의 CT(computed tomography)를 연구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다빈치는 우리 인체를 신이 만든 걸작이라 봤고 완벽한 비례가 존재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러한 가정 아래 <비트루비안 맨>이 만들어지기도 했죠. 또한 다빈치는 두개골을 다양한 각도의 단면으로 분석한 창의적인 연구를 했습니다. 현대의 CT와 같은 3차원 분석 연구를 시도한 것이죠.” 

  메디컬 일러스트, 아시나요? 
  코로나19가 창궐했던 2019년, 코로나바이러스 모형이나 신속항원검사의 과정 절차를 묘사한 그림이 등장했다. 이처럼 의학적 지식 또는 생물학적 정보를 쉽고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시각적으로 표현한 미디어를 ‘메디컬 일러스트’라고 한다. 메디컬 일러스트는 메디컬 아트, 바이오 메디컬 커뮤니케이션, 메디컬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용어로 불리며 여러 미디어 매체를 통해 표현되는 메디컬의 의미를 담는다. 

  메디컬 일러스트는 의학 분야뿐만 아니라 해부학, 생물학, 생명공학 등 의과학 콘텐츠에 기반해 제작된다. 이렇게 시각화한 자료들은 논문이나 의학 서적 등에 사용돼 내용 이해를 돕기도 한다. 메디컬 일러스트는 2D, 3D, 영상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메디컬 일러스트 기업인 ‘사이엑스아트’의 손동휘 대표는 메디컬 일러스트의 핵심 키워드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입장이다. “메디컬 일러스트 혹은 애니메이션의 목적은 과학 정보 전달에 있어요. 복잡한 과학적 지식이나 최신 항암제 작용과 같은 의학적 지식을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죠. 이런 점에서 메디컬 일러스트는 커뮤니케이션이 핵심 키워드이자 그를 중심으로 제작해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메디컬 일러스트 자체가 예술 작품이 된 경우도 있다. 메디컬 일러스트 기업 ‘메드아트’에서 게시한 작품 중 <꺄악!>은 뭉크의 <절규>에서 비명을 지르는 입과 크게 치켜뜬 눈 주위의 근육을 표현해 더욱 공포스러운 장면을 표현했다. 또한 메드아트의 <일생-적자생존>은 해부학적 지식을 근간으로 각종 뼈대와 근육을 표현하며 인류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나리 아트메디컬 대표는 메디컬 일러스트 작품을 만들 때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설명했다. “고객의 의도가 가장 충실히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기에 충분히 소통한 후 이미지 그래픽화 작업을 진행합니다. 또한 그림을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연구 내용이 잘 드러나고 보기 좋게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죠.”  

심장이식 해부도를 그린 메디컬 일러스트다. 메디컬 일러스트는 의학 정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메디컬 일러스트는 끝없는 과학 발전의 동반자로서 계속 함께할 것이다.  사진제공 아트메디컬
심장이식 해부도를 그린 메디컬 일러스트다. 메디컬 일러스트는 의학 정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메디컬 일러스트는 끝없는 과학 발전의 동반자로서 계속 함께할 것이다. 사진제공 아트메디컬


  두 분야의 만남이 향하는 곳 
  메디컬 일러스트는 AR, VR,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연구 결과 발표를 위한 온라인 경쟁이 심화되며 홍보를 목적으로 한 일러스트의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손동휘 대표는 메디컬 일러스트의 밝은 전망에 관해 예측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모델을 처음 만들었을 때와 6개월 후 다시 만들었을 때 두 모델이 달랐는데요. 과학이 계속 발전하면서 코로나19에 관한 새로운 정보가 나타났기 때문이죠.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예술에 대한 대중의 욕구도 커지고 있기에 메디컬 일러스트 분야도 점점 다양해지고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김나리 대표는 메디컬 일러스트 산업에서 나타나는 불균형에 관해 아쉽다는 의견을 표했다. “아직 한국에서는 메디컬 일러스트 시장에 대한 인지도나 입지가 크지 않아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대우받는 데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메디컬 쪽이 아니더라도 일러스트 분야 자체가 전반적으로 업계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일러스트의 중요성이 더 널리 알려지고 인식이나 처우가 개선돼야 한다고 봅니다.” 

  감성의 예술과 이성의 의학. 어찌 보면 가장 동떨어져 보이는 두 분야는 생각지도 못한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예술은 더 섬세하고 정확한 해부도를 남겼고, 구체적인 인체 비례와 구조는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만들어냈다. 섞이지 않을 것 같았던 두 분야의 만남은 새로운 시대를 향한 도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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