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언제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김성경 동문(정보시스템학과 05학번) 또한 그랬다. 동아리방에서 시작한 작은 울림은 이제 길거리를 가득 채우는 음악이 됐다. 캠퍼스를 자유롭게 거니는 힙스터 김성경 동문. 이제 그는 캠퍼스의 담장을 넘어 마이크를 들고 ‘보이비’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세상에 나섰다. 김성경 동문은 지금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비트 위에서 맘껏 풀어내고 있다. 대학생 김성경과 래퍼 보이비, 그 사이를 들여다봤다.  배효열 기자 hyo10@cauon.net

 

 

“눈곱 떼기 힘든 아침, 떡이 진 머리 익숙하지.” 래퍼로 활동하고 있는 김성경 동문이 참여한 <놀면 뭐해?>라는 곡의 가사다. 김성경 동문은 오늘도 캠퍼스에서 공부하며 우리 옆을 스치고 있다. 곧 졸업을 앞둔 김성경 동문. 그는 TV나 공연 무대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래퍼이면서 동시에 여느 학생들과 같이 학생식당을 이용하고 캠퍼스를 거닌다. 김성경 동문이 쓴 가사에는 그가 좋아하는 것들이 잔뜩 등장한다. 이를테면 멋진 축구선수들, 그가 겪은 사랑, 추억이 깃든 장소 등이 한 데 섞여 가사가 되고 음악이 된다. 연금술사 같은 매력을 지닌 래퍼 김성경 동문의 멜로디를 따라가 보자. 

  -평소 어떤 학생인지. 
  “대체로 강의실에서 존재감을 잘 드러내지 않아요. 발표할 때 존재감을 한 번씩 드러내는 스타일입니다. 다른 친구들이나 교수님이 보기에는 제가 입고 다니는 옷차림이 매우 특이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학내 주로 시간을 보내는 장소는. 
  “학생식당인 것 같네요. 요즘은 310관(100주년기념관) 참슬기식당 구석에서 스마트폰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기분을 조금 내고 싶을 땐 흑석 시장의 수제비 맛집 ‘수목식당’에서 고독하게 탄수화물을 음미하는 것을 즐기죠.” 

  -동아리 활동은 했었나. 
  “1학년때 안성캠 흑인음악동아리 ‘Outribe’에 가입했었어요. 나름 동아리 회장 출신입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포함한 음악 관련 활동을 시작했죠. 함께했던 동아리 멤버들의 실력이 당시 기준으로도 프로 못지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까지도 같이 작업하고 있는 음악 프로듀서 ‘ASSBRASS’, ‘EachONE’, ‘RD’ 같은 형들도 그곳에서 처음 만났고 ‘슈프림팀’과 함께했던 ‘DJ Freekey’ 형, 래퍼 ‘양갱’ 형, 영상 쪽에서 맹활약하는 ‘digipedi’의 ‘oroshi’ 형도 같은 동아리 멤버입니다. 운 좋게도 형들이 자체적으로 데모를 만들어서 프로모션하는 과정들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그룹 ‘방사능’(이후 리듬파워)으로 제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시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동아리에서의 추억이 궁금하다. 
  “흑인음악동아리에 들어가서 가을 축제 무대에 오른 적 있습니다. 야심 차게 대운동장 무대에 올라갔었는데요. 두 번째 곡에서 공연 MR이 담긴 CD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무대에서 내려왔던 기억이 있죠.” 

  -대학 시절을 하나의 키워드로 표현하자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키워드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제가 아직 졸업을 못 했거든요. 지금까지 제 모든 음악 활동은 나름 학업과의 병행이라고 보셔도 무관할 것 같습니다.” 

본인만의 음악을 세상에 증명해낸 김성경 동문, 중앙대 힙합 동아리에서 맺은 인연은 음악의 밑거름이 됐다.
본인만의 음악을 세상에 증명해낸 김성경 동문, 중앙대 힙합 동아리에서 맺은 인연은 음악의 밑거름이 됐다.

 

  -래퍼로서 첫 무대는 어땠나. 
  “첫 무대는 정보시스템학과 엠티였습니다. 당시에 민중가요 동아리 형들이 MC 스나이퍼의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라는 곡을 불렀는데요. 저는 힙합 옷을 입고 다닌다는 이유로 반강제 동원됐죠. 합주도 몇 번 하고 나름대로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는 순간 모든 가사를 까먹고 외계어로 프리스타일만 하다가 내려왔어요. 당시 정보시스템학과의 촉망받던 힙합 유망주로서 그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룹 ‘리듬파워’로 활동하고 있는데. 
  “리듬파워의 지구인과 행주, 그리고 저까지 셋 다 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들이에요. 교실 뒤에서 다이나믹 듀오, 드렁큰 타이거, 원타임 노래들을 따라 하다가 우리 곡들을 만들어 보고 싶어졌죠. 대학에 들어와서 제가 동아리 형들을 만나게 되면서 데뷔앨범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클럽 공연에 오를 래퍼를 오디션으로 뽑는 경우도 꽤 많았어요. 저희도 그렇게 공연을 시작할 수 있었고요. 
  원래 그룹 이름은 ‘방사능’이었습니다. 2011년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고 나서 ‘방사능’이라는 이름을 쓰기 많이 조심스러워졌었죠. 어쩔 수 없이 당시 저희의 대표곡이었던 ‘리듬파워’로 그룹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 참가했다. 
  “당시 저와 저희 팀은 앨범을 여러 장 냈지만 대중적으로는 아무런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저는 입대를 해야 했고, 또래 친구들보다 뒤처진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전역하자마자 <쇼미더머니>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쇼미더머니>는 짧은 시간 안에 곡을 만들어내는 것만큼이나 새로 쓴 가사를 외워야 하는 것도 중요했던 것 같아요. 디스 배틀 가사는 촬영 전날 완성됐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암기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도저히 잘 수가 없어서 알람을 한 시간 간격으로 맞춰놓고 한 시간씩 자고 연습하고를 밤새 반복했던 기억이 나네요.” 
 
  -가장 애착 가는 곡은.  
  “작년에 <TAKEMETOTHEMOON (feat. SUMIN)>이라는 솔로 곡을 냈습니다. 래퍼가 팝적인 소리를 풀어낼 때 나오는 전형적이지 않은 매력들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예전부터 꼭 도전해보고 싶었는데요. 제 나름대로는 나쁘지 않게 소화했던 것 같아서 마음에 드는 곡이에요. 사실 가장 애착 있는 곡은 따로 있는데 그 곡은 아직 발매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음악적 영감을 얻는지. 
  “예전에는 뭔가 삶에 잘 달라붙는 공감을 얻을 만한 혹은 개인적인 얘기들이 좋은 곡을 만들기 위한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강박 비슷할 정도였죠. 요즘에는 출발점 자체를 좀 넓게 보고 ‘들어서 좋으면 장땡’이라는 마인드로 접근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예전보다 사운드에 집중하고 거기에서 더 영감을 얻는 것 같아요.” 

  -축구와 관련된 가사가 많다. 
  “제가 박지성 키드거든요. 프리미어리그에서 박지성 선수가 활약하던 시절에 해외축구에 관심을 두게 됐어요. 당시 아버지가 런던으로 출장을 다녀오시며 포스터를 몇 개 사 오셨는데 아스날에서 활약했던 베르캄프, 융베리, 앙리의 포스터였죠. 그 포스터들이 제 방에 붙어있게 된 때부터 아스날을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박지성 선수는 거의 매번 아스날을 상대로 맹활약을 펼쳤었죠.” 

  -좋은 음악가가 되려면. 
  “‘이래도 되나?’ 싶은 것을 무작정 시도하는 음악가들을 좋아해요. 음악을 많이 좋아하시면 됩니다. 당연한 말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좋아하는 게 직업이 돼가는 과정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이 희석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서요.” 

  -어떤 음악가로 기억되고 싶나. 
  “만능 미드필더 같은 래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도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본인의 것이 확실히 있으면서도 유연하게 커리어를 이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앞으로의 목표가 무엇인지.  
  “올해 목표는 졸업입니다. 졸업식 날 저녁에 작은 규모로 파티를 열 생각인데, 재학생분들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졸업식 뒤풀이 파티 장소와 시간은 추후 제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지 올리겠습니다. 중대신문 구독자 여러분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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