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패션은 어떤 의미인가요?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옷을 입었던 인류는 이제 자신의 신분 혹은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굳어진 성 역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패션을 드러내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는데요. 여기서 똑똑, 젠더리스(genderless)가 문화예술의 문을 두드립니다. 젠더리스는 특히 패션에서 화두를 드러내고 있죠. 남성복, 여성복이라는 명칭은 무의미해졌고 모델, 연예인을 넘어 일반 대중까지 단지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입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듯합니다. 젠더리스가 예술을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하시다면 지금 바로 펼쳐봅시다! 권지현 기자 rnjswlgus1103@cauon.net

“언제든 제 생각대로 꾸미고 달라질 수 있어요. 나의 몸을 소품처럼 쓰는 거죠. 제가 가진 탁월한 장점이죠.” -뮤지션 킹 프린세스-

사진출처 톰 브라운 공식 홈페이지
사진출처 톰 브라운 공식 홈페이지

 

‘이건 여자가 입는 거, 저건 남자가 입는 거 아니야?’ 무의식적으로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장래희망, 머리 스타일, 취미 그리고 패션에까지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의 성별을 구분하며 선을 긋곤 했었다. 이러한 고정관념에 갇혀 살던 사람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 이들은 이 선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개인의 개성, 자유, 편함 등 대중은 저마다의 가치에 도달하고자 패션에 그어진 선을 지우기 시작했다. 

  패션의 시간여행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술과 경제의 급성장은 대중에게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와 생활양식을 제공했고 남녀의 성 역할과 의복에 변화를 초래했다. 산업에 종사하는 남성들의 의복은 무거운 직물, 침착한 색상 등을 사용해 비즈니스 맨으로서의 진중함과 근엄함을 드러냈다. 단순화된 남성복과 달리 여성은 ‘크리놀린’과 ‘코르셋’ 등을 착용해 화려한 옷차림을 보였다. 크리놀린은 치마를 부풀리기 위한 버팀대이고 코르셋은 배와 허리 맵시를 내기 위해 입는 여성 속옷을 가리킨다. 

  남녀의 차별적 계급으로 인해 여성은 자연스레 남성의 과시용 소유물이 되거나 불편함을 감수하는 옷을 입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의복에는 문제점이 존재했다. 크리놀린을 입은 여성들은 크게 부풀려진 치마로 인해 마차에 끼어 부상을 입기도 했고, 허리를 너무 조인 코르셋에 기절하거나 장기가 손상되는 경우도 있었다.  

  과거 한국의 여성들도 미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이주영 교수(동명대 패션디자인학과)는 과거 한국 여성들이 겪었던 의복의 불편함에 관해 이야기했다. “여성의 몸매를 부각하기 위한 서양의 코르셋처럼 한국 복식에도 미를 과시하기 위해 착용한 것들이 있었어요. 조선 후기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면 치마는 굉장히 풍성한 반면 저고리는 극도로 짧고 작은 것을 볼 수 있죠. 이러한 하후상박(하의는 풍성하게 상의는 타이트하게 하는 것) 스타일을 위해 여성들은 저고리가 길다면 입지 않아도 됐을 가슴 가리개로 가슴을 동여맸고, 치마 안에는 여러 개의 속옷을 겹쳐 입으며 그 위에 또 너른 바지, 무지기, 대슘치마 등을 덧입었습니다. 미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한 것이죠.” 
 

사진출처 드림캐쳐 공식 인스타그램
사진출처 드림캐쳐 공식 인스타그램


  점차 흐려지는 경계선 
  시간이 흘러 남성과 여성 의복의 뚜렷한 경계는 점차 흐려졌다. 1920년대 이후 남녀평등 사상이 대두되며 향상된 여성의 지위는 패션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후 1960년대 후반에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여성해방운동과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으로 ‘유니섹스’ 스타일이 등장했다. 유니섹스 스타일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없앤 공용의 패션을 뜻하지만, 여성이 남성 패션을 따라 하는 개념에 국한되기도 한다. 이후 1970년대에는 남녀의 특징을 모두 소유하는 앤드로지너스 스타일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다 성의 경계를 아예 없애고자 한 스타일이 새롭게 등장했으니, 바로 ‘젠더리스(genderless)’다. ‘젠더 플루이드(gender-fluid)’, ‘젠더 뉴트럴(gender-neutral)’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젠더리스는 성과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옷차림을 즐기는 새로운 패션 경향을 가리킨다. 

  김수정 젠더리스 브랜드 ‘ACBF’ 대표는 유니섹스 패션과 젠더리스 패션의 차이에 관해 설명했다. “이전의 유니섹스는 단순하게 ‘한 가지 옷으로 여성과 남성이 모두 입을 수 있다’에 그쳤어요. 그러나 현재의 젠더리스는 여성복일지라도 남성이 입을 수 있고, 남성복일지라도 여성이 입을 수 있다는 의미로 좀 더 개념이 확장됐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출처 방탄소년단 공식 인스타그램
사진출처 방탄소년단 공식 인스타그램


  젠더리스 패션은 현재 진행형! 
  젠더리스 패션은 소위 Z세대와 같이 젊은 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고 다양한 브랜드에서도 젠더리스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미국의 패션 브랜드 ‘톰 브라운’은 크리놀린을 남성복에 활용한 독특한 패션을 탄생시켰고 남성들은 런웨이에서 플리츠 스커트와 니삭스를 입었다. 또한 2023 SS 컬렉션에서 남성용 트위드 재킷에 미니스커트를 매치했고 2022 가을 여성 컬렉션에서 정장을 출시했다. 

  젠더리스 패션은 다양한 디자인적 특성을 지닌다. 남성과 여성 패션 특징을 고루 담아 여성복인지 남성복인지의 판단을 모호하게 한다. 그리고 소재와 색상 등의 범주를 확장하면서 이질적인 요소의 복합을 통해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여성복에 주로 쓰이던 실크 소재나 리본 등을 남성복에 사용하면서 젠더리스 룩을 완성할 수 있다.  

  연예인들도 젠더리스 룩을 선보이고 있다. 가수 지드래곤은 샤넬의 여성복을 센스 있게 매치하거나 스커트로 감각적인 젠더리스 패션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는 브라운 스커트를 입고 레드카펫에 등장했고, 배우 이정재는 핑크색 재킷에 진주 목걸이를 걸고 나와 젠더리스 룩을 멋있게 소화했다. 또한 아이유와 소녀시대는 정장을 입은 채 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청소년이 입는 교복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여학생들을 위해 활동성이 낮은 치마 교복 대신 편안한 바지 교복을 출시하기도 했으며 일본에서는 남학생 역시 치마와 바지를 자유롭게 입을 수 있는 젠더리스 교복을 내놓기도 했다. 학부모들은 ‘성별에 대한 선입견 없이 성평등을 경험하며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수정 대표는 젠더리스 패션의 등장이 갖는 의의에 관해 말했다. “기존 고정관념에 얽매이길 싫어하는 세대 분위기가 잘 반영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SNS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나’를 중요시하고 자신을 어필하려 하기 때문에 누군가 정해놓은 틀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죠.” 

  옷은 사람의 기분을 나타내거나, 개성을 드러내기에 탁월한 수단이다. 그러나 아직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자신이 추구하는 패션을 포기하고 그저 유행을 따르고 있지는 않은가. 사회의 유행을 무조건 따라가기보다 조금씩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아 나서보자. 일상이 좀 더 편안할 수 있도록, 내 개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우리는 충분히 당당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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