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신재생에너지가 중요해진 요즘. 세계적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안전한 대체에너지를 찾고 있는 사람이 있다. 김장현 동문(전자계산학과 75학번)은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한전KDN 역사의 산증인이다. 사원에서 사장의 자리까지 오랜 시간 쉼 없이 달려온 그. 김장현 동문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사업에 매진하고 있는 중이다. 실패와 성공에서 나오는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를 이끄는 김장현 동문. 에너지산업의 선두 주자로 결승점을 향해 열심히 달리는 김장현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배효열 기자 hyo10@cauon.net

 

컴퓨터 교육이 태동하던 시기 전자계산학과에 입학했던 김장현 동문은 국내 유일 에너지ICT 전문 공기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컴퓨터 교육이 태동하던 시기 전자계산학과에 입학했던 김장현 동문은 국내 유일 에너지ICT 전문 공기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선견지명’.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라는 뜻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앞을 내다보는 지혜를 이르는 말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중요하다. 김장현 동문은 다가올 IT 시대를 본능적으로 예측한 듯 컴퓨터와 함께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는 이제 개인의 미래를 넘어 인류 에너지의 미래를 내다보며 한전KDN을 이끌어가고 있다. 에너자이저 김장현 동문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함께 걸어가 보자. 

  -한전KDN은 어떤 회사인가. 
  “국내 유일의 에너지ICT 전문 공기업입니다.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에서부터 송·변전, 배전,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에 ICT 기술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고품질의 안전한 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다양한 공공사업을 수행하는 기업이죠. 아주 역동적인 조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데요.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조직 구성원들 모두가 열정적으로 움직이고 있답니다.” 

  -사장으로서 경영 철학은. 
  “모든 일에는 사람이 근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직 구성원들의 능력이 조화로운 협력으로 나타날 때 발전과 성장은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입니다. CEO는 다양한 기술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 최대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전KDN이 에너지ICT 공기업으로서 사회적 가치 실현과 국민 신뢰를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역할이죠. 임직원들에게 기회와 무대를 제공하고, 구성원 개개인의 성장과 회사의 성장을 융합하고 싶어요. 이를 위해 제가 먼저 다가가는 노력으로 포용과 이해가 바탕이 된 소통의 일터를 만들고 싶습니다.” 
 

  -전자계산학과에 입학한 계기가 있나.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만 해도 대학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학원 잡지에 대학교 소개가 있었는데요. 학원 잡지를 살펴보니 국어국문과나 영어영문과는 대학마다 있는 거예요. 그래서 희귀한 학과를 찾아봤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당시 전자계산학과가 있는 곳이 광운대, 동국대, 숭실대, 중앙대 이렇게 4개 대학밖에 없었어요. 그중 중앙대가 가장 좋다 느껴 지원했습니다. 몇 개 없는 학과라면 아무리 못해도 그 분야에서는 전국 순위권에 들 수 있잖아요. 전자계산학과에 입학해 새로운 걸 배우면 저보다 앞서간 사람이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원 잡지를 하나씩 살펴보던 제가 기특해요.” 
 

  -전공 수업은 어땠는지. 
  “전자계산학과가 처음 막 생겨나던 시기에 입학했습니다. 컴퓨터로 재미난 거를 하나보다 싶었는데 머리 아픈 수학 공부만 시키더라고요. 전자계산학이라는 게 응용과학이다 보니 교과서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형대수학이나 미적분 같은 수학만 공부했죠. 수학 공부를 하기 싫어 큰일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교과서 대신 IT 기업인 IBM의 매뉴얼을 갖고 공부했던 기억도 떠오르네요. 학문으로서 정립이 잘 안됐던 시기여서 공부하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군대에 다녀오니 서울대에도 전자계산학과가 생겼고 교과서도 슬슬 나오더라고요.” 
 

  -당시 컴퓨터는 어땠나. 
  “그 시절 컴퓨터는 지금 우리가 손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하나보다도 더 성능이 안 좋았습니다. 중앙대 컴퓨터실에 그런 컴퓨터가 여러 개 놓여 있었던 기억이 나요. 한 교수님께서 ‘너희 세대에는 통조림이나 깡통만 한 컴퓨터가 지금의 컴퓨터 성능을 훨씬 뛰어넘는 시대가 올 거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보다도 훨씬 더 발전했죠.” 
 

  -공부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었는지.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두 개의 동아리에 가입했었어요. 그중 하나는 ‘정오회’라는 문학 동아리입니다. 입학 후 학교 앞에서 자취했는데요. 용돈을 받으면 다 써버리고 밥 해먹을 쌀값도 안 남는 거예요. 그때 정오회에서 신입 회원을 모집하기 위한 대회를 열었었죠. 그 대회에서 상금도 줬던 걸로 기억해요. ‘새’ 혹은 ‘문’이라는 주제로 수필이나 시를 쓰는 대회였는데 거기서 상금을 받아 밥 사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더 열심히 활동했던 건 사진 동아리예요. ‘파인더스 패밀리’라는 동아리였는데 회장까지 맡았었죠. 그 당시만 해도 카메라가 엄청 귀했습니다. 어디 놀러 갈 때면 카메라를 돈 주고 빌려서 다니던 시대였는데요. 그때 사진 동아리에서 전시회도 하고 사진 찍으러 많이 돌아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졸업과 동시에 한국전력에 입사했다. 
  “굉장히 운이 좋았죠. 전역 후 복학했는데도 전국적으로 컴퓨터를 다루는 학생들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졸업과 동시에 여러 회사에서 입사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때 대부분이 컴퓨터를 단순하게 계산기로 알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기업 경영진에서 통찰력을 갖춘 사람들은 앞으로 업무에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던 거죠. 그래서 당시 큰 기업들에서 전자계산학과 출신을 많이 뽑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학과 내에서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는데도 7개 정도 회사에서 입사 제의가 왔어요. 당시에는 면접을 보러 가면 차비도 만원 정도씩 챙겨줘서 여러 회사에 면접 보러 많이 다녔죠.(웃음) 다양한 회사의 제의가 있었지만 저는 한전을 선택했습니다.” 
 

  -한전 재직 기간 동안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회사에 들어오니 다른 사원들은 프로그램을 정말 잘 만들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니 열심히 전공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게 걱정됐죠. 동료들을 따라잡기 위해 밤에 다른 사원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몰래 공부했습니다. 잘 알지 못했지만 남이 만든 프로그램들을 밤새도록 보기만 했죠. 다른 사원들이 오기 전까지 다시 돌려놔야 하니까 회사에서 자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신입사원 시절에 큰 실수를 저지른 적도 있어요. 다음 날 아침 부장님이 엄청나게 화내셨죠. 물건도 집어 던지시고 저를 자르겠다고 으름장을 놓으셔서 신입사원이었던 저는 숨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계장님이 일을 잘해보려다 실수한 것이니 어쩔 수 없다며 대변해줬죠. 계장님이 이렇게 말하니 부장님도 화를 가라앉히시더라고요. 당시 계장과 부장의 계급은 정말 큰 차이가 났는데도 저를 위해 그렇게 말해주신 게 정말 고마웠습니다. 실수한 것을 수습하기 위해 차도 없이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그게 제일 선명한 기억이에요.” 
 

  -계장님께 참 고마웠겠는데. 
  “정말 감사하죠. 부하직원을 위해 상사에게 하기 힘든 말도 할 줄 아는 그런 분이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목숨 바쳐 따를 수 있는 상사를 한 사람이라도 만들고 나를 따르는 후배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성공한 거예요. 또 다른 상사께서는 본인이 진급해서 부서를 옮기면 17년 동안 항상 저를 불러서 함께 일하도록 했습니다. 처음에는 새 부서에 적응하는 게 힘들어서 제발 놔달라고 부탁도 했었죠. 그러다 어느 순간 상사님이 가진 카리스마와 내공을 믿고 그분을 따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에게서 배운 게 제 직장생활에 큰 힘이 됐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쉬고 싶어요. 한전에서 오랜 기간 일하며 하루도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체력이 떨어지면 게을러지더라고요. 이걸 느끼며 은퇴 제도가 왜 있는지 알게 됐어요. 은퇴 후에도 한전KDN을 계속 바라보고 있을 계획입니다. 제가 다녔던 회사이고 한전KDN이 만들어질 때 함께 있었기 때문에 애정이 있어요. 기업 문화를 잘 정착 시켜서 좋은 인재들이 나오고 회사가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IT업계 관련 사람들을 만나면 제 경험치를 바탕으로 한 노하우를 함께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에 관심을 두고 있죠.” 
 

  -중앙대 후배들에게 한마디.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들도 언젠가 내가 가용할 자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딱딱한 말일 수도 있는데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어떤 사람이 필요 없다고 내치지 말고 모든 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거죠. 앞으로 사회에 나와 생활할 텐데 자신 위주로만 생각하지 않고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내가 나서서 한다면 훗날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이 많아질 거예요.” 

  -당신에게 중앙대란?
  "중앙대는 저의 자부심이자 자존감을 키워준 학교입니다."

사무실과 현장을 가리지 않고 발로 뛰는 김장현 동문. 높은 자리에 있음에도 늘 직원들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그다. 사람을 중요시하는 김장현 동문의 경영 철학은 약 2시간에 걸친 인터뷰 내내 따뜻한 마음으로 전해졌다. 학교를 떠난 지 약 4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김장현 동문의 가슴 한편에는 중앙대를 향한 애정이 남아있다.
사무실과 현장을 가리지 않고 발로 뛰는 김장현 동문. 높은 자리에 있음에도 늘 직원들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그다. 사람을 중요시하는 김장현 동문의 경영 철학은 약 2시간에 걸친 인터뷰 내내 따뜻한 마음으로 전해졌다. 학교를 떠난 지 약 4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김장현 동문의 가슴 한편에는 중앙대를 향한 애정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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