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동전은 사실 앞면, 뒷면이라는 양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양면성을 띠는 것이 많습니다. 동과 서, 흑과 백, 위와 아래. 문화예술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문화예술을 보고도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기 마련이죠. 이번 주 문화부는 ‘모방’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죠. 패러디, 오마주, 리메이크 등을 활용한 현대 콘텐츠의 인기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방이 지나칠 때 우리는 표절이라는 문제점을 마주할 때도 있는데요. 나와 같은, 또는 나와 다른 생각이 담긴 ‘모방’ 이야기. 한 번 읽어보실까요. 권지현 기자 rnjswlgus1103@cauon.net

예술은 모방에서 시작해 
익숙함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매력 
 
대중문화 속 번져가는 재창작 작품 
창작의 길이 더욱 넓어지길

어제 발매된 신곡에서 익숙함을 느끼고, 어디선가 본듯한 영화를 관람하고, 만화가 원작인 드라마를 감상하고. 모두가 한 번쯤은 해봤을 테다. 이러한 작품을 보며 우리는 색다른 재미를 느낀다. 정반대의 선상에 있을 것만 같은 모방과 창조. 이 둘의 만남이 만들어가는 매력 속으로 빠져보자.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이미 발표된 작품에서 기인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방법은 패러디, 오마주, 리메이크 등 다양하다. 패러디는 특정 작품의 소재나 특정 작가의 고유한 문체를 모방해 저급하거나 걸맞지 않은 주제로 적용하는 것이다. 오마주는 어떤 예술가를 존경하거나 그의 작품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작품의 일부를 자신의 창작물에 차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리고 리메이크는 이전에 발표됐던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을 다시 만드는 작업을 가리킨다.

  이자혜 교수(동서대 방송영상학과)는 대부분의 예술이 이미 존재하는 작품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며 상호텍스트성을 언급했다. “시, 영화, 음악 등 어떤 의미가 있는 작품은 모두 텍스트라고 볼 수 있어요. 이때 예술가의 작품을 개인만의 창작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 상호텍스트성인데요. 이는 역사 속에서 탄생한 많은 작품이 과거의 무언가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알려줍니다. 예술에서 모방은 당연하다는 거죠.”

  이 작품, 어딘가 익숙하다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가 등장하는 요즘, 흥행한 원작을 바탕으로 한 리메이크 작품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리메이크 작품은 기존 줄거리와 동일한 제목 및 인물을 가져가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등장인물이 출연하거나 시대에 맞게 배경이 수정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디즈니는 자사 애니메이션을 리메이크해 새로운 영화를 만들었고 <알라딘>, <뮬란>, <덤보>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리메이크를 활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의태 교수(경운대 무인기공학과)는 리메이크를 통해 더욱 정교한 스토리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리메이크를 활용하면 기존 이야기를 더욱 고도화할 수 있어요. 즉 서사의 흐름은 유사해도 줄거리가 정교해지는 거죠. 이런 정밀한 콘텐츠를 소비한 시청자들은 남들과 다른 만족감을 느끼게 될 겁니다.”

  이자혜 교수는 리메이크 작품을 만드는 이유로 원작이 가진 안정성을 이야기했다. “창조 산업군인 문화예술 분야는 성공에 대한 리스크가 높아요. 좀 더 안정성을 갖고 가기 위해 리메이크를 계속 활용하는 거죠. 이미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기존 고객들을 유치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만든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한국에서 만든 영화 <수상한 그녀>는 일본, 중국, 필리핀, 태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리메이크됐다. 반대로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 사계절>을 리메이크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한국에서 만들어지기도 했다. 영화뿐만 아니라 중국 드라마 <보보경심(步步驚心)>을 기반으로 제작된 SBS 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는 지금까지도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왼쪽은 한국에서 만든 영화 '수상한 그녀', 오른쪽은 필리핀에서 리메이크한 '미스 그래니'라는 작품이다. 다른 나라의 작품을 성공적으로 리메이크하기 위해서는 로컬리제이션(localization)과 작품의 재해석 과정이 필요하다. 사진출처 다음영화
왼쪽은 한국에서 만든 영화 '수상한 그녀', 오른쪽은 필리핀에서 리메이크한 '미스 그래니'라는 작품이다. 다른 나라의 작품을 성공적으로 리메이크하기 위해서는 로컬리제이션(localization)과 작품의 재해석 과정이 필요하다. 사진출처 다음영화

  윤석진 교수(충남대 국어국문학과)는 타국의 작품을 리메이크할 때 고려할 사항을 설명했다. “언어와 제작진만 바꾸는 것을 넘어 원작의 국가적·민족적 속성을 자국 관점에서 재해석해야 해요. 이 문화적 재해석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작품을 비교하는 과정 속 문화적 상대성을 확인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죠.”

  이자혜 교수는 로컬리제이션(localization)을 고려하고 원작과 어떤 차이를 둘지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품에 담긴 그 나라의 문화를 우리나라의 작품 안에 어떻게 녹일지 고민해야 해요. 로컬리제이션이 돼야 하는 거죠. 또한 원작과의 공통점, 차이점 간 밸런스가 중요합니다. 어떻게 원작과 차이를 둬서 대중에게 새로운 느낌을 줄지 고려해야 하죠.”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매우 익숙한 클래식을 반주로 한 음악, 가수는 다르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노래. 음악계에서도 기존 원곡을 바탕으로 새로운 음원이 만들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커버’다. 커버란 원곡을 다른 뮤지션이 편곡해 연주하는 것을 가리킨다.

  박재록 교수(상명대 뮤직테크놀로지학과)는 커버의 인식이 변화한 흐름을 이야기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커버는 대중음악에서 일반적으로 쓰곤 했어요. 작곡가가 먼저 악보를 출판하면 여러 음악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악보를 연주해 음반을 새로 내는 것이 흔했죠. 그러다 1960년대 이후엔 오리지널 음반 발매로 경쟁하기 시작했고, 1970년대 이후로는 오히려 커버가 특수해졌습니다.”

  한국의 대중가요에서도 커버 음원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아이돌 그룹 에스파의 <Dreams Come True>는 아이돌 그룹 S.E.S의 <Dreams Come True>를 커버한 노래다. 에스파의 뮤직비디오에서는 S.E.S의 뮤직비디오 속 분위기와 등장 캐릭터를 비슷하면서도 새롭게 재구성해 리메이크 분위기를 살렸다.

에스파의 'Dreams Come True'는 S.E.S의 'Dreams Come True'를 커버한 곡으로, 원곡 뮤직비디오와 비슷한 캐릭터를 뮤직비디오에 등장시켰다. 위는 S.E.S의 뮤직비디오, 아래는 에스파의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이다. 사진출처 SMTOWN 유튜브
에스파의 'Dreams Come True'는 S.E.S의 'Dreams Come True'를 커버한 곡으로, 원곡 뮤직비디오와 비슷한 캐릭터를 뮤직비디오에 등장시켰다. 위는 S.E.S의 뮤직비디오, 아래는 에스파의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이다. 사진출처 SMTOWN 유튜브

  박재록 교수는 원곡을 커버하는 이유로 안정성과 존경심을 꼽았다. “전통적으로 원곡을 커버하는 기본 목적은 안정적인 히트곡을 생산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한국 경연 프로그램의 유행에서 시작된 리메이크 붐은 비교적 쉬운 방법으로 음악적 흥행에 도움됐기에 지속될 수 있었죠. 또는 원곡 아티스트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커버하기도 해요.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이 대표적 예시입니다.”

  또한 ‘샘플링’을 통해 새로운 음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샘플링이란 기존에 발매된 음원을 재사용하는 음악 제작 방법을 말한다. 본래 샘플링은 1970년대의 초기 힙합 문화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다가 현대에 들어 대중음악의 주요 음악 제작 기법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

  아이돌 그룹 IVE의 <After LIKE>는 가수 글로리아 게이너의 디스코곡 <I will survive>를 샘플링한 곡이고, 아이돌 그룹 BLACKPINK의 <Shut Down>은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를 샘플링했다. 또한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의 <7 rings>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My Favorite Things>을 샘플링했다고 알려져 있다.

  다시 우리가 기억함으로써 
  우리는 왜 과거의 작품을 다시 만들고자 하는 것일까. 윤석진 교수는 원저작자와 재창작자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설명했다. “원저작자에게는 작품의 유명세와 함께 저작권이라는 경제적 이익이 발생하겠죠. 또한 재창작자는 완성도가 입증된 원작을 자신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는데서 즐거움을 얻을 거예요. 작품이 성공하면 작가로서의 입지를 구축할 수도 있죠.”

  이자혜 교수는 재창작을 통해 창작의 영역이 확장될 수 있음을 말했다. “사실 예술에 있어서 완벽하게 새로운 걸 찾아내는 건 쉽지 않기 때문에 재창작은 계속 이뤄져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대로 복원하는 방법도 있지만 원작 내 어떤 요소들을 대체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창작의 방법론이 풍성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품을 다시 만든다는 것은 어쩌면 오랫동안 그 작품이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른다. 재창작하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작품들, 원작과는 다른 감동과 재미를 지닌 또 하나의 원작을 함께 즐겨보는 건 어떨까.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