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순간, 축구 해설위원은 우리의 감동을 배로 만들어준다. 김환 동문(컴퓨터공학부 03학번)은 치열한 그라운드를 지켜보며 현장의 생생함을 대중에게 전달한다. 축구를 좋아하는 컴퓨터공학부 학생이었던 김환 동문. 펜이나 마이크, 그 무엇으로든 축구에 관해 이야기할 수만 있다면 어떤 도전도 마다하지 않은 그였다. 오늘도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고 있는 청춘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축구 해설위원 김환 동문을 만나봤다. 배효열 기자 hyo10@cauon.net  사진 봉정현 기자

중대신문과의 인터뷰를 위해 김환 동문이 중앙대 서울캠으로 발걸음했다. 학창시절 추억이 어린 옛 대운동장은 아니지만 푸른 잔디가 깔린 대운동장에서 그를 만났다.
중대신문과의 인터뷰를 위해 김환 동문이 중앙대 서울캠으로 발걸음했다. 학창시절 추억이 어린 옛 대운동장은 아니지만 푸른 잔디가 깔린 대운동장에서 그를 만났다.

꿈을 향해 달려간 적 있는가. 여기 자신의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발을 옮긴 이가 있다. 중문 근처 작은 자취방에서 시작된 축구 해설위원의 꿈. 축구 해설위원 김환 동문은 과거 자신이 상상한 대로 마이크를 잡으며 사람들과 꿈 같은 90분을 보내고 있다. 축구를 사랑했던 그의 작은 소망이 어떻게 현실로 다가왔을지 하나씩 살펴보자. 

  -재학 당시 어떤 학생이었나. 
  “술 마시고 노는 것보단 옛날 대운동장에서 축구하고 자취방에서 축구 보는 것을 좋아했죠. 그때는 박지성 선수가 활약할 때였어요. 주말마다 축구 보고 싶은 친구들은 중문 슈퍼 뒤쪽 제 자취방으로 왔죠. 집에 케이블 TV와 게임기를 구비 해놨거든요. 친구들과 같이 씻고 밥 먹고 축구 게임하고. 또 새벽에 축구 보고 다음 날 오후 늦게 일어나고. 이게 일주일 중 가장 중요한 일과였던 것 같아요.” 

  -컴퓨터공학부에 진학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에서 타자 치는 속도가 제일 빠르고 친구들의 컴퓨터를 포맷해주다 보니 컴퓨터를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컴퓨터공학부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모르지만, 게임 같은 것을 만들지 않을까 생각하고 진학했어요.” 

  -전공수업은 어땠나. 
  “처음에 수학을 배우더라고요. 1학년 때는 왜 수학을 배우는지 몰랐어요. 1학년 1학기 때는 기초 교양 같은 것을 하잖아요. 그중 하나인가 싶었죠. 2학년이 되니까 미적분 정도는 알아야 하는 상황인데 도저히 못 따라가겠는 거예요. 이 길은 아닌가 보다 했죠.” 

  -학과 축구팀 감독도 맡았다고. 
  “친구들 데리고 자주 축구를 보러 다니니까 1학년 친구들이 제게 감독직을 부탁했어요. 2학년 때부터 졸업하기 직전까지 감독을 했죠. 컴퓨터공학부가 타 공대에 비해 인원도 적었거든요. 그래서 역사적으로 축구를 썩 잘하지 않는 학과였는데 ‘총장배 축구대회’에서 4강까지 진출한 게 기억나네요. 의대 축구팀 ‘스컬’에 졌었죠.” 

  -감독으로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출전 시간이 적은 선수들은 감독인 제게 불만이 많았어요. 따로 불러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죠. 저는 모든 선수를 1분이라도 다 뛰게 해줬거든요. 근데 한 친구가 1분밖에 못 뛰는 게 기분 나빴나 봐요. 친한 후배였는데 그때부터 저를 쳐다도 안 보더라고요.” 

  -신문방송학과 부전공도 했다고. 
  “학과 축구팀 감독이라면 축구 전술에 관해 잘 설명해야 하잖아요. 경기를 앞두고 전술에 관해 설명하는데, 문득 제가 잘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축구 해설위원을 해볼까 막연하게 꿈을 꿨죠. 축구 선수가 아닌 경우 축구 기자를 먼저하고 해설위원이 되는 게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축구 기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죠. 기자에 대해 하나도 몰랐을 때라서 신문방송학과를 전공하면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컴퓨터공학부보다 부전공인 신문방송학과 학점이 더 높았어요. 관심 있는 분야이기도 하고 신문방송학과는 글을 쓰고 아이디어를 내는 학과라서 괜찮은 성적을 받은 것 같아요.” 

  -재학 중 오마이뉴스에서 인턴 기자로 활동했다고. 
  “오마이뉴스에서 글쓰기 수업을 운영했어요. 그런데 그 수업을 듣기에는 시기가 늦었다고 느꼈죠. 오마이뉴스 인턴으로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글쓰기 커리큘럼을 함께 습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오마이뉴스 인턴 기간 중 굵직한 사건의 기사를 작성하며 글쓰기라는 걸 본격적으로 처음 배운 것 같습니다.” 

  -기자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가했는데. 
  “일반적인 시험을 통해서는 스포츠 신문의 축구 기자가 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때 한 일간 스포츠에서 연예부 기자를 뽑는 서바이벌을 연다는 공고를 봤죠. 일단 연예부 기자로 입사하면 스포츠부로 옮겨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했어요. 맨 처음엔 참가자 12명으로 시작했죠. 10주 차에 마지막 3명이 남았는데 저도 포함됐습니다. 우승은 못 했어요. 근데 담당 PD가 그러더라고요. 저를 좋게 봤으니까 취업 준비하지 말고 조금 기다리면 부르겠다고. 그래서 진짜 놀았습니다.(웃음)  
  일간 스포츠에서 졸업식 할 때쯤 연락이 와 어떤 부서에 가고 싶냐고 물어봤죠. 축구 기자를 하고 싶다고 솔직히 말했어요. 일단 알겠대요. 대신 경제팀에 잠깐 있으라고 하더라고요. 속는 셈 치고 거기에 한 반년 있었죠. 2010년 6월에 남아공 월드컵이 있었잖아요. 월드컵 때 취재할 인력이 필요하니까 그때 축구팀으로 가게 됐어요.” 

  -축구 기자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함부르크 SV 유소년 팀에서 한국 이름을 발견했어요. 손흥민 선수였죠. 당시에는 손흥민 선수를 검색해도 정보를 찾기 힘들었어요. 그러다 손흥민 선수가 춘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죠. 무작정 춘천 축구협회에다가 전화했습니다. 손흥민 선수 아버지가 축구 교실을 하고 있다고 해서 춘천으로 가 손흥민 선수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죠. 후에 손흥민 선수 훈련도 취재했어요. 손흥민 선수가 어린 시절 훈련하는 모습을 직접 본 경험은 이후에 기사를 쓰거나 해설할 때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함부르크 출장도 가 손흥민 선수랑 밥도 먹고 축구게임도 한 기억이 나네요.” 

  -축구계 비하인드 스토리를 많이 전달하기로 유명하다. 
  “제가 이적설을 보도할 때 선수 이름이나 팀을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어요. 선수나 팀에게 피해가 갈 염려도 있고 익명 보도가 재밌었기 때문이죠. 제가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이 추리하는 콘셉트였어요. 이런 식으로 하니까 축구계 사람들의 반응이 좋더라고요. 이후 에이전트나 선수들이 익명으로 잘 전달한다며 제게 이적설을 알려줬죠. 제가 기자 할 때도 무리하게 보도를 안 하는 편이었어요. 조심스럽게 보도하는 성격이 나중에 해설위원이 돼 정보 습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이런 보도 방식이 맞다 얘기는 못 하지만 그냥 제 방식은 그랬어요.” 

  -해설위원이 된 계기는. 
  “‘UEFA 유로 2012’를 취재하며 우크라이나로 향했어요. 서형욱 해설위원이 뒤늦게 우크라이나로 들어왔는데 제가 숙소 소개를 해주고 같이 다니며 인연이 됐어요. 그러다 서형욱 해설위원이 MBC 스포츠 플러스에서 해설위원을 구하는데 해설위원을 해볼 생각이 있냐고 제안했죠. 리허설이나 테스트 없이 바로 영국 2부리그 해설을 시작했어요. 첫 중계에서 나름대로 기존 해설위원들 흉내를 잘 내 매끄럽게 진행한 거 같아요. 그런데 새벽 중계를 마치고 오전에는 기자로 출근해야 하니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2016년부터 해설과 방송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김환 동문은 어느 장소에서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축구 이야기를 세상에 전한다. 중앙대 중문 근처 자취방에서 키운 해설위원의 꿈. 그가 손에 마이크를 잡기까지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김환 동문은 어느 장소에서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축구 이야기를 세상에 전한다. 중앙대 중문 근처 자취방에서 키운 해설위원의 꿈. 그가 손에 마이크를 잡기까지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해설 외에도 축구를 잘 챙겨보는지. 
  “주말에 한번 재미로 축구를 볼까 하다가도 축구를 보며 방송에서 할 말이 떠오르는 순간 짜증 나요. 좀 편하게 보고 싶은데……. TV로 보면 분석하게 되니까요. 축구를 보는 즐거움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죠.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축구를 직접 하는 즐거움에 빠졌답니다. 포지션은 주로 수비를 맡죠.(웃음)”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있나. 
  “저는 축구 여행 쪽으로 관심이 있어요. 코로나19 직전에 여행사랑 이야기도 했었는데 축구 여행 산업이 코로나19 이후 침체했거든요. 그래서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진정되면 축구 여행 관련 활동에 참여해볼 생각이에요. 요즘 대학생들이 해외 축구를 직접 보러 가는 것에 관심이 많잖아요. 함께 축구 이야기도 하면서 여행하면 좋을 것 같아요.” 

  -꿈을 찾으려 방황하는 중앙대 후배들에게 한마디. 
  “자신의 학과에 국한하지 않고 새로운 길로 가는 것도 인생이 즐거울 수 있어요. 차근차근 접근하다 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죠. 한 번에 되는 건 없어요. 저도 인턴 기자, 축구 기자를 거쳐 해설위원을 했습니다. 요즘은 관련 정보가 많기 때문에 성실하게 알아보면 도움 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당신에게 중앙대란?
  “제가 지방에서 올라왔거든요. 중앙대는 약간 신세계 같은 느낌이었어요. 서울에 너무 오고 싶었거든요. 저한테 서울은 중앙대였습니다. 중앙대 중문에서 약 5년 정도 살았어요. 꿈이 시작된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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