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주택과 상가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흑석2구역의 모습. 사진 홍예원 기자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주택과 상가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흑석2구역의 모습. 사진 홍예원 기자

현재 흑석빗물펌프장 부지 개발 방향을 둘러싸고 지역 주민과 지자체, 공공임대주택의 수혜자인 청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공공임대주택 건설 통해  
열악한 청년 주거의 질 개선 기대” 
 
공원 조성 원하는 주민 반발 거세 
청년과 주민 의견 절충 방안 필요 


  개발 계획 변경이 불러온 갈등 
  6월 동작구는 소식지 ‘동작마당’을 통해 흑석빗물펌프장 이전 예정 부지인 흑석동 2-26번지 일대 복합개발을 통해 공공임대주택 210세대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현 흑석빗물펌프장 부지도 2020년 8월 4일 발표된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에 따라 공공임대주택이 건설될 것으로 보인다. 

  본래 흑석빗물펌프장 부지는 흑석동 일대가 재정비촉진구역에 선정되면서 2008년 흑석동 주민들을 위한 문화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었다. 서울특별시는 2008년 9월 11일 서울시보 제2861호를 통해 현 흑석빗물펌프장 부지인 흑석동 105번지 일대를 문화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20년 문화공원 조성 무산 소식이 들렸다. 2020년 1월 23일 서울시보 제3564호에 따르면 흑석빗물펌프장 부지가 흑석1재정비촉진구역에서 존치관리구역으로 전환되며 문화공원 조성 계획이 철회됐다. 장선주 동작구청 개발기획팀 주무관은 “장기간 재개발 사업이 지연돼 흑석빗물펌프장 이전 시기가 불확실했다”며 “조속한 이전을 통해 지역 재난위험을 최소화하고자 계획을 변경한 것”이라고 밝혔다.  
 

흑석빗물펌프장 앞 공공임대주택 건설 반대 현수막과 반대 서명을 위한 부스. 사진 홍예원 기자
흑석빗물펌프장 앞 공공임대주택 건설 반대 현수막과 반대 서명을 위한 부스. 사진 홍예원 기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는
  공공임대주택으로의 갑작스러운 계획 변경에 주민들은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흑석2재정비촉진구역(흑석2구역) 재개발정비사업 주민대표회의(주민대표회의)는 6월 27일부터 ‘흑석빗물펌프장 등 공공주택 건설 반대 집회’를 시작했고 7월 29일부터 8월 12일까지 공공임대주택 건설 반대 서명을 실시했다. 8월 12일에는 그간의 청원 및 반대 서명 자료를 동작구청에 제출하기도 했다. 

  흑석동 주민이자 부동산 중개업자이기도 한 A씨(66)는 “흑석동 재정비촉진구역 지정 시부터 공원 조성 이야기가 나왔다”며 “오랫동안 공원 조성을 기다린 주민의 입장도 생각해달라”고 호소했다. 오명순 흑석2구역 주민대표회의 총무는 “흑석동에는 공원이 없어 어린이와 어르신 등 모든 주민이 쉬며 이용할 공간이 없다”며 “주거 환경의 질적 향상을 위한 문화공원이 반드시 조성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좋은 위치의 땅을 공공임대주택 부지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반발도 있었다. A씨는 “흑석역 바로 앞이라는 좋은 위치에 공공임대주택이 아닌 공원을 지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김경순 행복한 아크로 공인중개사 대표는 “굳이 지가가 비싼 곳에 공공임대주택을 지어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유도할 필요는 없다”며 “지가가 싼 다른 지역에 공공임대주택을 지으면 청년의 주거권과 지역 주민의 권리를 함께 보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흑석동에는 공공임대주택이 이미 충분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진식 흑석2구역 주민대표회의 위원장은 6월 27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흑석동의 흑석뉴타운 개발 구역에는 각 구역별 부분 임대, 의무 임대 등이 포함돼 있으며 흑석2구역은 공공재개발로 공공임대주택이 추가 건설된다고 말했다. 이에 더 이상 공공임대 주택 건설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임대업자들의 이해관계도 얽혀있다. 서원석 교수(도시계획·부동산학과)는 “공공임대주택이 건설되면 주변 원룸 가격 이 인하될 것”이라며 “학교 주변은 임대료로 생계를 유지하는 임대업자가 많고 공공임대주택 건설은 생계와 직결된 문제이다 보니 반대가 강하다”고 밝혔다. 김경순씨는 “집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인 임대업자도 있다”며 “그들에게는 임대업이 직업이니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고 전했다. 
 

중앙대 학생들이 많이 거주하는 상도역 인근 원룸촌. 사진 진수민 기자
중앙대 학생들이 많이 거주하는 상도역 인근 원룸촌. 사진 진수민 기자

  청년 주거난 해결할 공공임대주택
  청년주거문제 해결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다. 우수명 교수(사회복지학부)는 “2000년대 이후 청년 1인 가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청년주거문제가 우리 사회 공통의 문제로 대두됐다”고 말했다. 서원석 교수는 “대학가 주변에서 공통적으로 청년들이 살 수 있는 원룸 등의 질이 가격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학생들은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중앙대 학생들 또한 청년 주거 문제에 직면해 있다. 지난해 중앙대 서울캠 기숙사 수용률은 약 13.1%로 전국 대학 평균 수용률 약 32%, 서울 지역 대학 평균 약 18%에 비해 낮다. 김경아 연구위원(중앙대 도시부동산연구소)은 “중앙대는 기숙사 수용률이 낮아 주거의 질에 비해 높은 가격대로 형성된 집에서 어쩔 수 없이 생활하는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흑석동의 특성이 청년 주거 문제를 심화시킨다는 분석도 있다. 박상률 하나부동산 대표는 “재개발에서 제외된 중앙대 정문 인근에는 노후화된 주택들이 많다”고 전했다. B학생은 “흑석역 일대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전월세 주택의 공급이 줄었다는 점도 큰 문제”라고 언급했다. 김유진 학생(영어영문학과 3)은 “학교가 한강 주변에 있어 타 대학가 원룸보다 보증금과 월세 비용이 비싸다”며 “비용에 비해 불법 건축물 문제나 위생, 방음 등 여러 측면에서 주거의 질이 낮다”고 말했다. 

  공공임대주택 건설이 이러한 청년주거환경을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윤성노 서울세입자협회 사무국장은 “공공임대주택은 흑석동 대학생 거주 요건 향상의 시작점”이라며 “공공임대주택 임대료는 시세의 반값 정도로 저렴하기 때문에 원룸촌 가격 인하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승성 한강리치부동산 대표는 “함께 어우러지는 사회를 만든다는 측면에서 젊은 세대를 위한 공공임대주택은 필요하다”며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찬성했다. 

  자취 경험이 있는 중앙대 학생들도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김유진 학생은 “공공임대주택 건설로 흑석역 일대 청년들의 주거의 질이 향상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B학생도 “학교와 가까운 거리에 만들어지는 공공임대주택이 등록금과 생활비 등으로 인한 경제적인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살아갈 흑석동을 위해 
  지역 주민들도 이러한 공공임대주택의 장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진식 위원장은 우리 사회가 주거난을 겪고 있는 상황 속에서 임대주택, 공공주택 등의 정책은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A씨도 “주민들에게 손해를 주지 않는다면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공공임대주택이 지어질 빗물펌프장 부지가 흑석역 바로 인근의 초역세권이기 때문에 해당 입지에 공공임대주택을 짓는 정책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공공임대주택의 위치 변경이 갈등 해결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진식 위원장은 공공임대주택 입지 선정에 있어서 현실적인 주민 갈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노량진 수산시장 옆 국공유지나 국립현충원 앞 공원 등 주민 갈등이 적은 지역에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나승성 대표도 “청년들을 위한 주거시설이 들어설 땅의 위치를 지역주민 반발이 심한 빗물펌프장 부지가 아닌 다른 곳으로 바꾸면 해결될 문제”라고 밝혔다. 

  다른 절충안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김경아 연구위원은 “협의회를 구성해 지역주민에게 혜택이 되는 공공시설과 임대주택을 함께 건설하면 갈등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유진 학생은 “공공임대주택을 찬성하는 방향으로 주민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임대업자들에게 일정 부분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등의 절충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나아갈 길이 멀다. 우수명 교수는 “급하게 재개발을 추진하기보다 끊임없는 토론과 타협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보다 성숙하고 공동체를 지향하는 국민이 많아진다면 이러한 문제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흑석동을 구성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타협을 통해 복잡한 이해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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