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석역을 통해 통학하는 중앙인이라면 한 번쯤 흑석빗물펌프장 앞 빼곡하게 걸린 현수막을 발견하셨을 겁니다. 흑석빗물펌프장 부지에 공공임대주택을 짓겠다는 지자체의 정책에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인데요. 흑석동 일대는 현재 공공재개발과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둘러싸고 여러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이 어떤 개발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또 이를 둘러싼 주장에는 무엇이 있는지 중대신문과 함께 흑석동을 들여다봅시다. 홍예원 기자 yeah_on@cauon.net
 

흑석역과 중앙대병원 사이의 흑석2구역에서는 현재 공공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이미지 홍예원 기자

주민 동의율 미충족으로 
공공재개발로 선회 

동의 조건 두고 갈등 불거져 
“면적 동의율 고려해야 해” 

건물 노후화로 주민 불편 지속 
“시설 개선 위해 재개발 필요” 

시공사 선정 과정 절차 밟아 
“정부의 중재 필요하다”


지난해 흑석2재정비촉진구역(흑석2구역)이 공공재개발 사업지로 선정됐다. 현재 흑석2구역 재개발정비사업 주민대표회의(주민대표회의)의 주도로 공공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공공재개발에 반대하는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며 재개발을 둘러싼 주민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 그 시작은 
  흑석역부터 중앙대병원 부근까지 해당하는 흑석2구역은 2008년 9월 11일 재정비촉진지역으로 지정됐다. 서울특별시(서울시)는 노후 불량 주택이 밀집되고 도로와 공원 등 기반시설이 열악한 흑석동을 재정비해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기반시설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35조에 의해 정비사업을 시행하는 경우에는 토지등소유자로 구성된 조합을 설립해야 하며, 조합을 설립하려면 토지등소유자의 4분의 3 이상 및 토지면적의 2분의 1 이상의 토지소유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흑석2구역 주민들은 재개발을 위해 주민 동의율을 조사했지만 동의율 약 75%를 넘지 못해 약 12년간 사업이 정체됐다. 흑석2구역은 상가가 밀집돼 있어 재개발이 이뤄지는 동안 수입을 얻을 수 없는 상가 소유자와 세입자 비율이 높은 탓이다. 

  흑석2구역 일부 주민들은 공공재개발사업후보지 공모에 신청했다. 공공재개발은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10년 이상 정비사업이 정체된 사업지를 선정해 진행하는 사업이다. 공공재개발에는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도시재정비법) 제15조가 적용돼 토지면적 조건 없이 토지등소유자 동의를 50% 이상을 확보하면 재개발을 진행할 수 있다. 이에 흑석2구역은 지난해 1월 15일 공공재개발 1호 사업지로 선정됐다. 지난해 9월, 흑석2구역 주민대표회의가 약 59.7%의 주민 동의를 받아 구성됐고 공공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후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공공재개발 사업시행자로 선정돼 현재 공공재개발 시공사 선정 중이다. 

8월 30일 공공재개발 반대하는 흑석2구역 비대위는 서울특별시청 앞에서 전국 27개 비대위와 연합해 공공재개발 반대 시위를 전개했다. 사진제공 최조홍
8월 30일 공공재개발 반대하는 흑석2구역 비대위는 서울특별시청 앞에서 전국 27개 비대위와 연합해 공공재개발 반대 시위를 전개했다. 사진제공 최조홍

  도시재정비법 두고 반응 엇갈려 
  재개발을 두고 찬반으로 팽팽하게 이어져 온 대립 구도는 흑석2구역이 공공재개발 구역으로 선정된 이후 더욱 심화됐다. 일부 상가소유자 등으로 구성된 ‘흑석2구역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도시재정비법 적용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공공재개발에 반대하고 있다. 흑석2구역 비대위는 지난해 7월부터 활동을 시작해 8월 30일에는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과 경기, 인천 등 27개 공공재개발 구역 비대위와 함께 연합집회를 열기도 했다. 최조홍 흑석2구역 비대위 위원장은 “사유재산권은 다수결로 침해할 수 없는 중대한 기본권”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민 동의율 약 75%를 충족하지 못해 재개발을 하지 않고 있었다”며 “주민 의견을 무시하고 도시재정비법을 적용해 무작정 재개발을 진행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덧붙였다. 

  일부 주민은 도시재정비법에 토지면적을 고려한 동의 요건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흑석2구역 상가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A씨(65)는 “도시재정비법은 4~5평짜리 가진 사람과 100평, 200평의 땅을 가진 사람 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다”며 “단순히 과반수가 동의해서 공공재개발을 진행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밝혔다. 최조홍 비대위원장은 “땅을 실질적으로 소유한 사람들의 동의율을 고려하지 않는 법은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위헌 법률”이라며 “비대위의 주장에 동작구와 서울시 등 규정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재개발을 추진 중인 주민대표회의는 상반된 입장이다. 오명순 주민대표회의 총무는 “흑석2구역은 일부 건물에서 비가 오면 물이 새는 등 낙후된 건물이 많아 재개발이 꼭 필요했다”며 “하지만 상가가 밀집돼 있어 재개발 동의율 약 75%를 오랫동안 충족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흑석2구역 명수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B씨(72)는 “흑석동이 재정비촉진구역으로 지정된 후 언제 재개발이 될 줄 몰라 낡은 집에서 불편을 감수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재개발은 국가에서 주도하는 사업이니 중간에 불발될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어 안심된다”고 언급했다. 

흑석2구역은 상가가 밀집된 지역이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상가 소유주나 상가 세입자는 수익을 얻기 어렵다. 사진 홍예원 기자
흑석2구역은 상가가 밀집된 지역이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상가 소유주나 상가 세입자는 수익을 얻기 어렵다. 사진 홍예원 기자


  공공재개발을 둘러싼 득과 실 
  공공재개발을 통해 개발할 경우, 조합원분양분을 제외한 주택의 50% 이상을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해야 한다. 이에 도시규제완화와 분양가상한제 제외 등의 특례를 받는다. 지난해 5월 SH는 흑석2구역 주민설명회에서 흑석2구역을 용적률 약 599.9%로 개발해 지하 5층~지상 49층 아파트 4채를 건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건설되는 1324가구 중 공공임대주택으로 제공되는 주택은 357가구다. 오명순 총무는 “공공재개발 이전 민간재개발 계획에 비해 공공임대주택 지급 비율이 높아졌지만 용적률 완화 등을 통해 손실보다는 이득을 얻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공공재개발로 인해 주민 재정착률이 높아질 수 있다고 전했다. 홍준현 교수(공공인재학부)는 “공공재개발은 공공임대주택 공급 등의 조건으로 원주민들이 지역을 떠나게 되는 일을 막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흑석2구역 지역 특성상 재정착률이 낮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조홍 비대위원장은 “흑석2구역은 상가주택이 많지 않기에 건물 소유주는 다른 곳에 집을 보유하고 있다”며 “원주민의 경우도 5평 정도의 작은 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분담금을 납부할 능력이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5월에 발표한 SH의 주민설명회 자료에 따르면 재개발 이후 판매 및 근린시설은 전체 면적의 약 19%를 차지한다. 상가 분양의 경우 「서울특별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 제38조 제2항에 따라 공급된다. 종전 건축물의 용도가 분양건축물 용도와 동일하거나 비슷한 시설이며 사업자등록을 하고 영업하는 건축물의 소유자가 제1순위로 공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토지나 건물을 소유하지 않은 상가 세입자는 상가 분양 제5순위이다. 

  흑석2구역에서 생활용품점을 운영하는 C씨(62)는 “상가 임대와 같은 재개발 혜택은 상가 건물 소유자만 가질 수 있다”며 “세입자들은 지금보다 몇 배는 비싸질 임대료로 재개발된 상가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장선주 동작구청 개발기획팀 주무관은 “흑석2구역 내 상가 면적을 고려한 상가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며 “구체적 내용은 SH와 협의해 반영하겠다”고 전했다. 

  상가 세입자들은 임차인에 대한 보상 대책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흑석2구역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D씨(43)는 “SH 측에서 4개월 정도의 영업 손실만을 보상한다고 말했다”며 2년 정도의 영업 수익에 해당하는 권리금과 큰 차이가 있다”고 전했다. C씨와 D씨는 “현재 마련된 보상대책에 의하면 흑석2구역 공공재개발은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임차인을 쫓아내는 사업일 뿐”이라고 전했다. 이에 이현욱 SH 공공재정비1부 주임은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영업손실을 보상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주민들과의 협의를 통해 보상 방안을 늘려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편 대학 상권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최조홍 비대위원장은 “흑석2구역은 9호선과 중앙대, 중앙대병원이 있는 대학촌”이라며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면 중앙대 학생들은 밥 먹고 놀러 다닐 대학촌을 잃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A씨(65)는 “홍대와 성신여대 대학가처럼 흑석2구역도 중앙대를 중심으로 상권이 활성화돼 있다”고 전했다. 이지우 학생(중국어문학전공 4)은 “흑석2구역의 식당과 술집은 중앙대 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라며 “아파트 아래 상가만 있다면 지금과 같은 대학가 분위기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의 노력 통해 갈등 해결해야 
  재개발로 인한 갈등을 겪고 있는 구역은 흑석2구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동대문구 신설제1구역과 영등포구 양평제13구역 등 여러 지역이 재개발 추진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 지역 통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가는 주민 간 갈등 해결을 위한 지자체와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서원석 교수(도시계획·부동산학과)는 “공공재개발은 민간과 공공이 함께 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정부가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역구성원의 사회 통합 의지도 요구된다. 서원석 교수는 “재개발은 사유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의견 통합을 위해서는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주민들의 의견 통합 의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흑석2구역은 현재 시공사 선정 단계에 있다. 삼성물산의 두 차례의 단독 입찰로 인해 16일 삼성물산이 수의계약 대상자로 선정됐다. 장선주 주무관은 “서울시 사전기획 자문 절차를 통해 흑석2구역의 재정비촉진계획변경(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재정비촉진사업과 관계자는 “재정비촉진계획변경은 2023년 초에 확정될 것”이라며 “변경 계획에 따라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양측의 의견 대립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흑석2구역의 공공재개발은 진행되고 있다.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주의 깊게 청취하고 갈등을 중재하는 지자체의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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