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유종호 선생의 글을 자주 읽는다. 선생이 쓴 글들을 통해 시를 읽는 태도와 방법을 배웠다. 그래서 혼자 몰래 마음속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선생은 『서산이 되고 청노새 되어』(민음사, 2004)라는 시집을 낸 ‘아마추어 시인’이기도 하다. 선생이 ‘아마추어 시인’인 표면적인 이유는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 아니기 때문이지만, 선생이 ‘아마추어 시인’인 근본적인 이유는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마추어’의 어원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선생의 글을 통해 처음 알았다. 누구보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니, 선생은 분명 아마추어 시인이 맞다.

  유종호 선생의 ‘불멸의 한 줄은커녕’이라는 부제가 붙은 서시라는 시를 연구실 책상 앞에 붙여 놓고 매일 읽고 있다. 예순을 맞은 선생이 이전 책들을 전집으로 새로 펴내면서 쓴 시다. ‘아마추어 시인’답게 시로 서문을 대신했다. 전체 4연 중 1연만 아래에 옮긴다. “그리기는 하지만 여적/거북귀자 반듯하게 쓰지 못하고/맨날 옥편이며 영서사전 뒤져야 하고/아직도 조선말 모르는 거 천지인데/백죄 어느새 예순이라 한다.”

  특정 시기에 뚜렷한 업적을 낸 사람은 많지만, 지속해서 꾸준한 업적을 내는 사람은 드물다. 1935년생인 선생은 한국 나이로 88세이시다. 그럼에도 선생은 과거의 문학평론가가 아니라 현재의 문학평론가이다. 선생은 올해(2022년)에도 『사라지는 말들』이라는 좋은 책을 냈다. 이런 선생이 “아직도 조선말 모르는 거 천지”라고 썼다. 문학평론가로 일가를 이룬 사람의 ‘모르는 거 천지’라는 말은 일종의 겸양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말이 선생이 88세에도 여전히 현역 문학평론가로 글을 쓰게 하는 힘이라 생각한다. 모르는 게 많다는 말은, 알고 싶은 게 많다는 말이자 제대로 알고 싶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알거나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면, 새로운 앎이 불가능해진다. 최근 화제된 ‘심심한 사과’가 전형적인 사례다. ‘심심한 사과’는 상투적 사과 표현이다. 온라인에서 검색하면 금세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심심하다’를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라는 뜻으로 확신했다. 누군가 ‘심심(甚深)하다’가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라고 지적했지만, 누군가 왜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표현을 썼냐며 항의했다. 자기 탓은 하지 않고 남만 탓하는 전형적인 태도를 보여준 셈이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모르는 게 많아 부끄러웠다. 50대인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게 많지만, 20대의 나처럼 부끄럽지는 않다. 모르는 게 많아서 계속 배웠기 때문이다. 언젠가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해서 배우기를 그친다면, 그때야말로 정말 부끄러울 것 같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열심히 사전과 책에서 모르는 걸 배운다. 배움에는 끝이 없고, 배움을 통해 나는 그리고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고 믿는다.

류찬열 교수
다빈치교양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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