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가수가 등장했습니다. 사이버 가수 ‘아담’이 그 주인공이죠. 아담의 은퇴 이후 버추얼 휴먼은 한동안 문화예술계에 등장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그러다 2020년,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가 탄생했습니다. 여기서 똑똑, 버추얼 휴먼이 문화예술의 문을 두드립니다. 로지는 SNS와 광고에 등장하며 버추얼 휴먼이 빛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인간과 닮은 그들은 인간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미디어에 점점 스며들고 있습니다. 버추얼 휴먼이 예술을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권지현 기자 rnjswlgus1103@cauon.net


“살을 빼고 외모를 관리하거나 대중에게 계속 뭔가를 보여줘야 해서 긴장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젠 긴장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고 해야 하나요. 확실히 더 솔직하고 가식 없이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더 편안하고 솔직한 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버추얼 아이돌 그룹 이세돌 멤버 릴파 중앙일보 인터뷰 中-
 

온마인드의 대표 버추얼 인플루언서 ‘수아’. 패션에 민감하고 핫플레이스를 즐기는 트렌디한 면모와 가끔 나오는 엉뚱함이 매력적이다. 사진출처 수아 인스타그램
온마인드의 대표 버추얼 인플루언서 ‘수아’. 패션에 민감하고 핫플레이스를 즐기는 트렌디한 면모와 가끔 나오는 엉뚱함이 매력적이다. 사진출처 수아 인스타그램

 

“나는 무대에서 춤을 추고 노래해.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기도 하지. 내 일상을 SNS에 올리고 TV 광고도 찍어! 날 만나고 싶다고? 지금 당장 만나! 날 모른다고? 나잖아 나. 내 이름은 버추얼 휴먼이야!” 
 
  새로운 종의 탄생 

  버추얼 휴먼(Virtual Human)이란 가상(virtual)과 인간(human)의 합성어로 IT 산업이 발전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존재다. 버추얼 휴먼은 등장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고객과 소통하며 은행 업무를 도와주거나, 공부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역할을 대신한다. TV에 등장해 인간인 아나운서와 함께 뉴스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상민 온마인드 사업실장은 버추얼 휴먼이 등장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인류는 태초부터 늘 사람과 비슷한 것을 원해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인형이 첫 시작이라고 볼 수 있죠. AI 등의 기술이 발달한 이후 기술과 인간의 욕망이 맞물려 버추얼 휴먼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겁니다.” 

  버추얼 휴먼의 탄생을 뒷받침한 기술에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가 있다. 사람의 얼굴을 원하는 모습으로 바꿔주는 딥페이크, 영화 속 CG와 같은 시각 특수효과를 적용하는 VFX, 얼굴부터 몸까지 실시간으로 버추얼 휴먼을 보여주는 모션 캡처 및 3D 모델링까지. 이러한 기술이 더해져 버추얼 휴먼은 선명한 피부의 결, 눈동자의 움직임, 찰랑거리는 머리카락까지 더욱 사람의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사진출처 aespa 유튜브
사진출처 aespa 유튜브

 


  변치 않는 만능 엔터테이너 
  최근 버추얼 휴먼은 문화 산업에도 발을 딛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게 다가오는 버추얼 휴먼은 ‘버추얼 인플루언서’일 것이다. 미국의 버추얼 휴먼 ‘릴 미켈라’는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SNS로 소통하거나 패션모델로서 매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허인경 펄스나인 홍보실장은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에 관해 이야기했다. “최근 버추얼 인플루언서는 SNS상에서 수십만 팔로워를 거느리며 방송, 광고, 뉴스, 드라마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어요. 대중은 버추얼 인플루언서에게 호기심과 매력을 느끼며, 이들이 마치 연예인인 것처럼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죠. 놀라운 점은 몇몇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사람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엄청난 수익까지 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릴 미켈라의 연수익은 약 160억원에 달하기도 하죠.” 

  또한 하나의 아이돌 그룹을 형성해 활동하기도 한다. 이세계 아이돌(이세돌)과 이터니티(ETERN!TY) 등의 버추얼 아이돌 그룹은 인간 아이돌처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팬들과 소통한다. 이상민 사업실장은 버추얼 아이돌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를 언급했다. “버추얼 아이돌 그룹 이세돌이 음원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는데요. 이는 비 생명체에게도 사랑을 주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있음을 보여주죠. 외형적인 부분이나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등 다양한 이유로 버추얼 아이돌에 호감을 느끼는 겁니다.” 

  버추얼 휴먼은 가상의 아바타를 내세우면서 개인을 더욱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다. 실제 아이돌이었던 이세돌 멤버 ‘릴파’는 한 인터뷰에서 버추얼 아이돌로서 더 진솔하게 활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실에서는 다이어트 등 외적인 스트레스를 받거나 가식적으로 행동할 때가 많았지만 버추얼 아이돌로 활동할 때는 그런 제약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던 것이다. 

  이영근 타입캐스트 연구원은 문화 산업에서 버추얼 휴먼을 활용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을 말했다. “버추얼 휴먼은 사생활 문제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대중에게 비판받을 위험이 줄어들죠. 연예계와 같은 산업에서 발생할 경제적 위험을 제거할 수 있는 거예요. 또한 버추얼 휴먼은 장소와 시간에 제약이 없습니다. 콘텐츠를 무한히 만들 수 있고, 시차 등에 관계없이 전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사진출처 류이드 인스타그램
사진출처 류이드 인스타그램

 


  인간이 아니기에 남아있는 한계 
  그러나 버추얼 휴먼도 완벽한 존재는 아니다. 버추얼 휴먼을 만드는 과정 혹은 그 자체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딥페이크는 불건전·허위 영상 제작 등의 피해를 낳았던 기술 중 하나다. 연예인이나 유명인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얼굴을 딥페이크 기술로 합성해 영상을 만들거나 그를 이용해 협박하는 문제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딥페이크의 악용뿐만 아니라 버추얼 휴먼의 한계로 ‘불쾌한 골짜기’를 꼽기도 한다. 1970년 일본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소개한 불쾌한 골짜기 이론에서는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서 느낄 수 있는 불쾌감을 이야기한다. 

  오제욱 디오비스튜디오 대표는 불쾌한 골짜기 이론에 관해 설명했다. “불쾌한 골짜기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뇌가 불쾌감이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어요. 자연환경에서 빠르게 피아식별해야 하는 인간의 뇌는 인간과 닮은 듯 닮지 않은 묘한 얼굴을 경계 대상으로 봅니다. 정확한 식별을 방해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불일치에서 사람들은 섬뜩함과 불안함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황서이 교수(중앙대 인문콘텐츠연구소)는 현존하는 버추얼 휴먼이 불러올 수 있는 외모지상주의를 지적했다. “국내 버추얼 휴먼의 외형을 보면 아름다운 생김새와 신체적 조건이 모델에 가까워요. 모든 사람의 워너비가 될 수 있는 캐릭터로 만들어지는 거죠. 이는 버추얼 휴먼의 획일화된 미와 외모지상주의 문제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루이커버리 RuiCovery 유튜브
사진출처 루이커버리 RuiCovery 유튜브

 


  골짜기를 넘어 인간에게로 
  단순한 인간의 재현에서 이젠 하나의 독자적인 존재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버추얼 휴먼. 그들이 장애물을 딛고 올바르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불쾌한 골짜기의 해결 방법으로 한상열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외형을 넘어 소통을 강조한 기술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성별, 외모 등의 외적인 모습이나 태도 및 의견에서 자신과 유사한 사람에게 매력과 편안함을 느낀다고 하죠. 이는 버추얼 휴먼이 종합적 표현력과 소통 능력까지 닮아야 함을 시사합니다.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상호작용이 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하기 위해 컴퓨터그래픽스, 감성 컴퓨팅, 대화형 AI 등 버추얼 휴먼 구현 기술이 더 고도화될 필요가 있죠.” 

  기술을 활용하는 기업의 윤리 의식도 중요하다. 오제욱 대표는 딥페이크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기업이 가져야 할 태도에 관해 이야기했다. “고도화된 기술을 사용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사업 수행에 있어 기본적인 윤리를 지켜야 해요. 당사자의 허락 없이 타인의 얼굴을 이용해 버추얼 휴먼을 제작하는 행위는 적절치 않죠. 또한 누군가에게 받은 제안에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거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외모를 넘어 대중의 공감을 더욱 끌어낼 수 있는 버추얼 휴먼을 연구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한상열 선임연구원은 스토리텔링과 페르소나를 기반으로 한 연구와 마케팅이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인간은 독자적인 스토리텔링이나 타인이 인지하는 개성, 성격 등의 페르소나가 있어요. 반면 버추얼 휴먼은 그러한 페르소나가 없기에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페르소나 마케팅 기획을 위해 노력하고 소비자의 반응, 수용과 관련한 마케팅 연구가 더욱 수반돼야 하죠.” 

  황서이 교수도 공감을 이끌 수 있는 직접적인 세계관 등을 버추얼 휴먼에게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사례로 버추얼 휴먼이 SNS를 통해 지속적으로 사랑과 우정의 스토리를 게시하는데요. 행복한 시기에는 사진을 게시했다가 사이가 나빠지면 사진을 삭제하기도 하죠. 이러한 감정 표출 과정이 인간과 닮아 있어요. 이렇게 대중의 공감과 호감을 얻을 수 있는 버추얼 휴먼의 세계관 등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의 매력은 정말 다양하다. 좋은 성격, 재미있는 유머, 끌리는 외모, 뛰어난 가창력 등 각양각색의 이유로 우리는 인간에게 매력을 느낀다. SNS, 광고 등 다양한 미디어로 퍼지며 매력을 뽐내고 있는 버추얼 휴먼. 제법 사람 같아졌다. 그렇다면 이제 외모를 넘어 그들만의 스토리, 개성을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휴먼으로 나아갈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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