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차례 거듭해 악랄해지는 디지털 성범죄 
언론과 대중은 여전히 제자리걸음

일부 언론이 디지털 성범죄를 벌인 ‘엘’에 관해 보도하며 올해 8월 또다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엘은 일부 공범과 함께 피해자들에게 성 착취물 촬영을 강요해 이를 텔레그램에 유포했다. 확인된 피해자 수는 6명, 성 착취 사진과 영상물 수는 약 350개가 넘었다.
 
  과거 N번방 사건 주범이었던 조주빈과 문형욱에게 각각 징역 42년형, 34년형이 내려졌고 디지털 성 착취물 유통을 막기 위해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마련됐다. 그러나 실효성은 없었다. 소수의 범죄자만 처벌됐고 디지털 성범죄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수차례의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할 동안 언론은 무얼 했나. 이번 사건 발생 후 각 언론사에서는 헤드라인에 걸린 ‘단독’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바빴다. 일부 언론은 헤드라인에 범죄 장면을 그대로 묘사하거나 기사에 선정적 단어를 나열하기에 이르렀다. 한국기자협회는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을 통해 ‘언론은 가해자 중심적 성 관념에 입각한 용어 사용이나 피해자와 시민에게 공포감과 불쾌감을 주고 불필요한 성적인 상상을 유발하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관련 규제를 처참히 무시하듯 언론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범죄 사실을 표현해 오히려 흥밋거리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가해자 엘을 ‘악마’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악마’, ‘괴물’ 등 비현실적인 존재로 가해자를 수식하면 범죄의 무게가 가벼이 여겨지게 한다. 성범죄 보도에 있어 책임을 저버린 언론의 행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N번방 사건 당시에도 조주빈은 자신을 악마라고 지칭했고 언론은 ‘악마의 삶’이라는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뿐만 아니다. ‘알고보니 봉사왕’, ‘평범한 이웃’이라는 수식어로 가해자의 과거 행적, 범죄를 저지른 이유 등을 설명하기 바빴다. 언론이 가해자에게 범죄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서사를 부여하고 퍼뜨려선 안 된다.
 
  단순한 자극성·흥미성 보도는 아닌지 언론 자체적인 반성이 필요하다. 가해자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왜 목 깁스를 했는지가 범죄 사건 자체를 조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단 말인가. 범죄를 단순한 화젯거리로 볼 것이 아니라 바로잡아야 할 과제임을 시사해야 한다. 사건이 터질 때만 집중 보도하는 언론에서 범죄 예방을 위해 나서는 언론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언론이 범죄 보도에 변화를 보여야 하듯, 기사를 보는 대중도 필히 변화해야 한다. 기사를 쓰는 건 언론이지만 무엇을 쓰고, 어떻게 쓰는지에는 대중도 영향을 미친다. 단지 수동적인 자세로 기사를 읽고 받아들인다면 언론의 잘못된 행위는 바뀌지 않는다. 언론이 범죄에 대해 제대로 된 보도를 하고 있는지, 피해자 인권을 해치는 보도를 하진 않았는지 감시하는 파수꾼 역할을 책임감 있게 수행해야 한다.
 
  알려야 할 사건을 직접 제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언론이 비추지 못한 부분이나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주제를 대중이 직접 밝히는 것이다. 범죄 등 중요한 사건에 능동적인 관심을 가지고 언론과 함께 범죄 예방과 의식 제고에 힘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교묘하고 악랄한 디지털 성범죄에 맞서 우리도 변화할 때다. 점점 고착화되는 범죄 고리를 끊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고민해야 한다. 극히 소수의 범죄자만이 법적 처벌을 받았다. N번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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