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가을 나뭇잎 때문이다. 아파트 정문에서 후문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진 넓은 도로 사이로 뒹구는 낙엽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사하기 위해 처음 들어가 본 집은 길가라서 조금 시끄러웠다. 그런데도 베란다 넘어 보이는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반해 하루 만에 계약했다. 십여 년이 지난 오늘도 집 주변의 나무는 한없이 푸르다. 이제 한 달 후면 자신의 온몸을 화려하게 털어내고 오로지 뿌리에 의지한 겨울을 보낼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깨끗이 비우고도 봄이면 또다시 이 세상에서 가장 싱싱한 싹을 보여주리라.
 
  나무에, 아니 자연에 열등감과 존경심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것이 이 봄의 새싹이다. 그들은 아무도 기대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시샘하지 않고도 오로지 스스로 가장 힘차게 새로운 시작을 한다. 화려했던 지난여름에 들뜨지 않고 쓸쓸했던 가을에 머물지 않으며 혹독한 겨울을 잊은 채 매해 봄을 만든다. 그렇게 자신을 한 번 더 키워낸다. 물론 이러한 시작이 자연만은 아니다.
 
  나의 40대 대학원 입학은 다소 무모해 보였다. 호기심 또는 허영심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알면서도 아무 말을 못 했다. 묻어뒀던 꿈의 실현 가능성은 희미했지만 한 학기만 다녀보자는 심정이었다. 그 용기가 5년 후 박사 학위를 받고 강단에 서게 했다. 떨리던 첫 수업이 눈에 선하다. 그때의 시작이 없었다면 오늘도 없었을 것이다.
 
  가장 오래 했던 글쓰기 강의는 1학년 필수 교양 과목이다. 그러다 보니 신입생을 해마다 만나곤 했다. 어떤 학생은 목표대로, 어떤 학생은 목표에 못 미치게, 또 어떤 학생은 목표보다 과분하게 입학하였다지만, 수업의 첫 분위기는 설레고 어설프다. 그래도 지금까지 지나온 과정과 무관하게 이제 다시 같은 선에서 시작하는 그들은 언제나 싱그러웠다. 그 처음을 함께하는 순간에도 늘 가슴이 뛰었다. 수업 시작 전, 학생들에게 항상 했던 말은 글쓰기에 관한 선입견을 버릴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새롭게 배우고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고도 글이 계속 쓰고 싶어졌다는 학생의 말은 그래서 더욱 고마웠다.
 
  급작스럽게 마지막 학기를 마친 지금, 수많은 순간과 얼굴이 떠오른다. 가슴 아팠던 슬픔도 들뜬 기쁨도 있었다. 아직은 차분하게 모두 정리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을 털어내고 새내기와 같이 다른 시작에 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인간은 나무처럼 해마다 새로운 출발을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지난 모든 것을 털어내고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있다. 가끔은 길을 몰라 한없이 구르기도 하고 눈에 덮인 긴 시간을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시 서는 푸른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시작이라는 동일선에 같이 선 우리에게 서로의 봄을 믿어보자. 그렇게 우리도 한 뼘씩 더 커질 것이다. 중앙대와 함께한 모든 시간은 시리게 아름다웠다. 

최석화 강사

다빈치교양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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