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 년 전 나는 이곳 안성캠에 있었다. 매 학기 기말고사 시즌이 되면, 진도가 꽉 막혀버린 전공 실기 작곡 과제를 밤새워 작업했다. ‘나는 재능이 없는 걸까?’ 자책하기도 하며, 재능의 부족을 시간으로 채우려는 듯 무수히 많은 밤 캠퍼스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밤거리를 걷다 보면 막힌 생각이 정리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튀어나오곤 해서 다시 작업할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캠퍼스 밤길을 걷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나 나무가 보여주는 풍경 때문이었다.

  사람이 없는 텅 빈 캠퍼스의 밤. 열기가 식은 거리 옆 나무에 가로등 불빛이 비치면, 나무 잎사귀가 내뱉은 숨결을 볼 수 있다. 그 숨결은 맘껏 흐트러져 숲 안개처럼 보인다. 거리를 따라 무성히 무리 지은 나무들이 웅성웅성 뱉어낸 숨결 때문에 캠퍼스 밤거리의 풍경은 녹색 안개로 가득 찬, 마치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의 몽환적인 작품으로 변한다.

  그 시절 한참을 바라봤던 풍경은 세월이 지나도 냄새와 감정, 분위기와 아우라가 생생히 기억날 것이다. 나의 청춘을 표상하는 이미지로 마음속에 또렷이 남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머리가 복잡해지면 커피라도 손에 들고 근처 거리와 숲을 찾아 무작정 산책하곤 하는데, 캠퍼스를 다니며 만들어진 산책 습관은 이미 내 삶의 일부가 된 듯하다.

  최근 강단에 서게 되며 안성으로 돌아온 덕분에 그 신비로운 나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젊은 날의 나를 묵묵히 위로해준 나무들은 한치도 변하지 않은 채 그 자리 그대로 있는 듯했다. 하지만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를 올려다보니 짙은 나뭇잎 속에 연녹색 새 잎사귀들이 자그맣고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땐 변하지 않는 우직하고 거대한 나무로만 보였지만, 가까이 보니 단 한 그루도 빼놓지 않고 제각기 모습과 방법으로 생명을 성실하게 키우고 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 시절 밤 풍경을 보며 위로받았던 이유는 나무의 무한한 생명력과 성실함을 나도 모르게 알아차리고 공감한 건 아니었을까? 알아봐 주는 이가 없을지라도 묵묵히 새 잎사귀를 틔우는 나무처럼, 그 시절 내 노력에도 의미가 있기를 누군가 알아차려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우리의 청춘은 나무와 닮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비슷한 모습, 비슷한 생각, 비슷한 삶을 무리 지어 사는 것 같지만, 가까이 보면 제각각 꿈과 생각, 고민과 이야기를 피우며 자라고 있다. 재잘재잘.

  빨리 성장하지 않아 불안하고, 빨리 이루지 못해 걱정 많은 청춘이지만, 자기 안의 새 잎사귀를 품고 키운다면 느릴지라도 묵묵히 자랄 것이다. 분명히.

  나무가 자라는 성실함과 생명력 덕분에 내가 위로받은 것처럼, 우리가 사는 모습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우리가 더불어 사는 모습이 멋진 풍경이 되어 작품이 되길 바란다.

김석순 교수
음악예술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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