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만 6번 연기할 정도로 작은 일에도 진심인 사람, 이혜정입니다.’ 방송국 인턴 면접에서 최종탈락한 후,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지원한 중대신문 면접에서 했던 자기소개의 첫마디였다. 영화 동아리에서 엑스트라를 연기한 것도, 작은 일에 진심인 것도 사실이었지만 엑스트라를 자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특별함에 집착하곤 했다. 영영 평범한 사람이 될까 무서웠다.

  한편 엑스트라와 비슷한 말 중 ‘모브(モブ)’라는 단어가 있다. 창작물 속 등장인물을 제외한 이름 없는 엑스트라의 무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과 대조되는 단어지만, 주인공 이름이 모브인 만화도 있다. 바로 작가 ONE의 만화 『모브사이코 100』이다. 주인공의 이름 ‘茂夫’를 훈독으로 읽으면 ‘시게오’지만, 음독으로 읽으면 ‘모브’로 작중 주인공은 모브로 불리곤 한다. 튀는 것 없는 외모와 내성적인 성격, 겉으로 보기엔 모든 것이 평범한 주인공의 특징을 반영한 설정이다.

  그러나 사실 모브는 평범한 중학생이 아니다. 세상에 몇 없는 강력한 힘의 ‘영 능력자’로, 초능력을 이용하면 ‘마라톤 대회 1등’이나 ‘범죄조직 만들기’ 같은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모두 해낼 수 있다. 하지만 모브는 초능력 쓰기를 강력하게 거부한다. 무서운 불량배 앞에서도 초능력을 걷어낸 힘으로만 맞서는가 하면, 마라톤 대회 1등을 목표로 형편없는 체력을 단련시키기 위해 매일 강변을 뛴다. 초능력을 사용하면 편한데 말이다.

  특별함을 동경하는 내게 모브와 같은 능력이 있었다면 아마 ‘나는 남들과 다른 존재’라며 자부심을 느꼈을 테다. 하지만 스스로에게서 어떤 능력도, 특별함도 찾을 수 없었다. 특별함이란 대체 뭔지 점점 모호해져 가기만 했다. 그래서 일단 특별해지는 대신 평범함을 피하기로 했다. 고백건대 저런 삶은 평범하다, 밋밋하다, 재미없다며 마음대로 분류했고 그런 일은 하지 않겠다며 다짐했다. 특별함은 남과의 비교를 통해 성립되는 가치라고 생각했다.

  반면 모브는 자신의 가치를 초능력과 같이 남과 구별되는 어떤 특징에서 찾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선의, 공감, 이해라는 감정의 힘을 믿는다. 초능력이 아닌 그 감정의 힘을 믿고 행동할 때 밋밋해 보이는 소년은 비로소 특별해진다. 

  여전히 나는 특별함을 동경한다. 다만 변화가 있다면, 세상은 특별한 소수가 아닌 평범한 다수에 의해 굴러가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소수의 대단한 개성보다는 다수의 안온한 눈빛, 다정한 말투, 실없는 농담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곤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기자로 활동하며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눈을 맞추고, 때론 한숨도 쉬면서 얻은 교훈이었다. 평범한 것도 어려운 시대겠다, 어쩌면 모브여도 괜찮지 않을까. 스스로 아주 특별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나는 모브로 살아간다. 

이혜정 뉴미디어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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