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지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삶뿐만 아니라 우리의 시선까지 뒤흔들었습니다. 이젠 우리가 팬데믹을 직시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시선을 끌다, 시야를 끌다-시끌시끌’은 사진을 통해 팬데믹에 시선을 끌어와 독자의 시야를 확장합니다. 팬데믹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화두를 사진기획 6부작으로 전합니다. 시끌시끌 네 번째 주제, 국내 기후변화입니다. 코로나19는 끝날 수 있어도 기후변화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기후변화를 막아야 다음 팬데믹의 도래를 최대한 억제할 수 있죠. 나무가 말라 죽고, 산이 불타는가 하면 해변이 물에 잠기고 야자수가 자랄 수 있게 됐습니다. 모두 강원도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사진부가 강원도 내 산과 바다의 변화를 1박 2일간 현장 취재했습니다. 우리가 방심한 틈을 타 심화한 국내 기후변화 사례를 시끌시끌하게 이야기해봅시다. 김수현 기자 ping_bi@cauon.net


건조 기후에 불타고 부러지는 산림
예전과 달라진 뜨거운 동해안 풍경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2일부로 완화됐다. 사람들은 드디어 코로나19가 종식을 향해간다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지만, 한차례 시련이 지나갔다고 또 다른 팬데믹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기후변화는 전염병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제기된다. 지금은 이른 자축이 아닌 전염병과 기후변화의 굴레로부터 탈출할 수 있도록 현실을 직시하는 시기여야 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은 기후변화의 신호를 체감하기 쉽지 않다. 미처 느끼지 못한 사이 국내 대표 관광지이자 가장 추운 지역인 강원도에서 기후변화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사진부가 1박 2일 강원도 답사를 통해 평창군 오대산 전나무숲과 강릉시 해안가를 찾아 한반도 기후변화의 증거를 포착했다.

  수분 부족으로 죽어가는 침엽수림
  1일 강원도 답사의 첫발을 디딘 곳은 평창군 진부면에 위치한 오대산 전나무숲길.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자란 전나무가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숲에 들어간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고사한 전나무가 눈에 띈다. 뿌리째 뽑히거나 밑동이 부러진 전나무가 파편과 함께 살아있는 나무 사이 맥없이 드러누웠다. 더 깊이 들어가자 굵은 나무줄기가 부서지듯 날카롭게 꺾이거나, 아직 어린나무임에도 잎이 전부 누렇게 변한 채 고사한 전나무도 보인다.

오대산 전나무숲에서 찾은 전나무 고사 현장이다. 사진부가 확인한 전나무 고사 유형은 밑동 혹은 뿌리부터 약해져 쓰러지거나 나무줄기가 부러지는 등 다양했다. 사진 김수현 기자
사진 김수현 기자
자란 지 몇 년 안 되어 보이는 얇은 전나무도 죽어 쓰러지고 있었다. 사진 김수현 기자

  2011년 ‘아름다운 생명상’의 명성이 무색하게 조용히 죽어가는 오대산 전나무는 기후변화로 고사하는 한반도 침엽수 실태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서재철 녹색연합 상근전문위원은 오대산 전나무가 기후 스트레스로 인해 고사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상록수인 전나무는 낙엽수와 달리 겨울에도 잠들지 않아요. 겨울엔 비가 안 오니 눈이 녹으며 5월 초까지 수분과 영양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20여 년 전부터 겨울 가뭄이 서서히 누적되며 적설량이 줄어든 것이 가장 큰 고사 원인이죠.”

사진 김수현 기자
등산로 근처에서 자생하는 전나무가 쓰러질 경우 탐방객의 안전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사진 김수현 기자

  기후 스트레스를 받은 나무는 수분 부족으로 약해진 상태에서 강풍 등 외부 영향을 받으면 건강한 나무보다 부러지기 쉽다. 이러한 침엽수 고사 현상은 오대산뿐만 아니라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등 해발 1500m가 넘는 산에서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서재철 위원은 같은 침엽수인 구상나무와 분비나무 고사 현상의 심각성을 덧붙였다. “구상나무와 분비나무가 자생하는 해발 1500m 위는 눈 이외 대안이 없는 열악한 환경이죠. 눈이 안 내리니 멸종이 언급될 정도로 심하게 죽어가고 있어요. 이 속도면 빠르면 10년 이내 극히 일부만 남고 다 죽을 겁니다.”

사진 김수현 기자
부러진 오대산 전나무. 전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나무 중 하나지만 기후 스트레스를 받으면 강풍에 쉽게 부러진다. 사진 김수현 기자

  건조한 대기를 타고 부는 산불
  늘 푸른 침엽수가 아닌 낙엽수라면 기후 건조로부터 안전한 걸까. 정답은 ‘아니오’다. 3월 강원도와 경상북도를 덮친 동해안 산불은 역대 국내 최장기간 산불로 기록됐다. 동해안 특성상 강한 바람과 불에 타기 쉬운 소나무의 높은 비중 등이 산불을 심화시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산불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큰 요인은 건조다.

  지구온난화로 빈번해진 가뭄과 건조 촉진은 산불이 발생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 건조한 생활 공간이나 지표면에서 증발한 수증기는 대기 중에 다시 모인다. 하지만 온실효과로 기후 평형이 깨지게 되면 강수가 균일하지 않고 특정 지역에선 폭우가, 또 다른 지역에선 폭염이 일어나는 등 극단적인 날씨가 이어진다.

  서재철 위원은 기후변화로 겨울 강수량이 크게 줄어 발생한 유례없는 겨울 가뭄이 올해 동해안 산불을 심화시켰다고 지목했다. “강원도와 경상북도에서 약 50년 만에 12월에서 2월까지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어요. 보통은 겨울에도 이렇게 건조하지 않은데 식물이 바짝 말랐기에 불이 붙으니 싹 타버린 거죠.”

  국내 평균 기온은 2012년 약 12.3℃에서 지난해 약 13.3℃로 9년 만에 약 1℃가 오르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김양지 교수(다빈치교양대학)는 강원도와 경상북도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전반적으로 따뜻해지고 건조해지는 기후변화를 겪고 있음을 언급했다. “겨울 강수량이 줄고 가뭄이 발생하는 건 특정 지역뿐만 아닌 한반도의 전반적인 현상입니다. 과거에 비해 가뭄 현상이 기후변화 때문에 발생한다고 봐야 해요.”

사진출처 녹색연합
3월에 발생한 울진·삼척 산불 화재 현장. 당시 가뭄으로 건조해진 환경 속에서 서울시의 3분의 1이 넘는 면적을 불태웠다. 사진출처 녹색연합

  소나무와 야자수의 기묘한 공존
  강릉시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수종은 소나무다. 강릉시 해변에 빼곡하게 들어선 해송 방풍림은 무려 700여 년 동안 묵묵히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라온 강릉시의 자연유산이다. 기자가 방문한 송정해변에도 모래언덕(사구) 위 솔향 가득한 소나무 숲 벤치에 걸터앉아 탁 트인 해변 풍광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보였다.

  길게 늘어진 소나무 숲길을 천천히 거닐며 강문해변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어느덧 소나무림이 끝나고 해송과 대비되는 사뭇 색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동해 풍경을 뒤로한 채 강문해변 한쪽을 장식한 건 다름 아닌 야자수. 눈앞에 있는 것이 ‘강원도’에서 자라는 ‘야자수’라는 사실이 어색하다. 강한 햇살을 내리받는 삐죽삐죽하고 통통한 야자수 옆에 세워진 색색의 보트가 이국적인 풍취를 자아낸다.

  솔의 고장 강릉시에 야자수가 등장한 건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강릉시는 기후변화에 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강릉역에 야자수를 배치했다. 일반적으로 제주도, 전라남도 여수시 등 남부지방에서만 자란다고 여겨지던 열대성 수목이 강원도 동해안에서도 식재가 가능해진 것이다.

  올해 강릉시는 선제적으로 기후변화에 대비해 안목해변, 강문해변, 경포해변에 야자수 51그루를 심고 관광객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강문해변을 찾은 관광객 이판수씨(71)는 예기치 않게 야자수 풍경을 본 소감과 우려를 밝혔다. “강릉 바닷가 같지 않고 이국적인 느낌이 나는 것 같아요. 야자수가 살 수 있는 환경이 됐으니 심어놓은 거겠죠. 좋은 점도 있지만 기후변화가 심해지는 아픔이 있는 것 같아요.”

사진 김수현 기자
강문해변에 식재된 야자수 사이로 한 관광객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 김수현 기자

  파도 속 사라지는 동해안 해변
  야자수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한편, 강릉시 터줏대감 소나무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송정해변을 걷다가 모래 아래 단단히 박혀있어야 할 해송 숲의 소나무 뿌리가 일부러 파헤친 듯 그대로 공기 중에 노출된 모습을 포착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소나무 뿌리 아래엔 시설물이 밖으로 나와 있었다. 이는 사구 아래 묻혀있어야 할 바닷물을 공급하는 해수인입관으로 추정된다.

사진 김수현 기자
송정해변 사구에서 자라는 소나무 숲을 지탱하던 모래가 해안침식으로 인해 유실되어 소나무 뿌리를 비롯해 해수인입관으로 추정되는 시설물이 모래 밖으로 노출돼있다. 사진 김수현 기자

  소나무 뿌리와 인공시설물이 모래 밖으로 드러난 이유는 해안침식으로 인한 백사장(사빈) 모래 유실이다. 송정해변의 침식이 계속돼 지난해부턴 사구 위에 위치한 소나무까지 해안 침식 영향권 아래 놓인 것이다. 해안 침식은 단순히 사빈 면적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침식 과정에서 해안가 주택 균열과 해안 도로 붕괴 등 시설 파괴를 야기한다. 강릉시 주민 심왕수씨(57)는 강릉시뿐만 아니라 동해안 전체가 해안 침식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해변을 모래로 메우기도 하고 침식이 심하더라고요. 주문진해변, 안목해변, 사천해변에는 모래가 흘러나가지 못하게 인공 구조물을 만들어놨어요. 동해안이 침식돼가고 있죠.”

사진 김수현 기자
사천진 해수욕장뿐만 아니라 그 옆에 위치한 사천해변 또한 침식이 심각하다. 인공구조물이 설치된 사천해변은 침식된 사빈이 마치 하나의 큰 벽과 같이 가파른 모습이었다. 사진 김수현 기자

  극심한 해안침식 현상은 강릉시 해안가 전체가 앓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강문해변, 경포해변, 사천해변, 사천진 해수욕장 모두 해안침식이 드러났다. 일정 구간 사빈이 아예 사라질 정도로 침식이 심각했던 사천진 해수욕장은 지난해 모래를 채우는 양빈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또다시 파도가 닿는 부분은 마치 깎아지른 절벽처럼 침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조성훈 강릉시청 해양수산과 주무관은 양빈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해안침식이 일어나면 응급으로 복구 작업을 합니다. 동해안은 겨울에 침식이 잦고 여름에 모래가 퇴적되는데, 심할 때는 양빈 작업을 주기적으로 하고 있죠. 예전에 비해 침식이 자주 일어나는 게 사실이에요.”

사진 김수현 기자
특정 구간의 모든 모래가 쓸려갈 정도로 침식이 심했던 사천진 해수욕장은 작년 응급 복구를 진행해 다시 백사장이 생겨났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조성한 사빈은 파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금방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사천진 해수욕장에 다시 생긴 백사장 또한 복구 작업이 무색하게 많은 모래가 침식되고 있었다. 사진 김수현 기자

  해안침식의 요인은 복합적이다. 인위적 요인으로는 겨울에 쓸려나갔던 모래가 방파제 같은 구조물의 방해를 받아 돌아오지 못하거나, 하천에서 바다로 공급돼야 할 모래가 댐 등으로 차단된 경우가 있다. 해안 개발로 설치된 옹벽 등이 파랑 에너지의 반사파를 증가시키기도 한다.

  기후변화적 요인도 작용한다. 김인호 교수(강원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과)는 해수면 상승이 파랑 에너지의 강도와 빈도를 증가시켜 침식을 야기한다고 설명했다. “파도 높이는 수심과 비례해요. 해수면이 높아지면 파도가 그만큼 세진다는 거죠. 모래를 이동시키는 흐름을 유발하는 파랑 에너지가 점점 증가함으로써 침식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진 김수현 기자
침식이 진행되는 강문해변에 파도가 들이치고 있다. 해수면 상승으로 파도가 세지면 더 많은 모래가 침식된다. 사진 김수현 기자

  김양지 교수는 동해안 해수면 상승의 원인 중 하나로 수온 상승을 짚었다. “동해는 대한해협을 통해 흐르는 대마난류의 영향으로 서해보다 수온 상승 폭이 크죠. 전 세계 평균 수온 상승 폭보다도 동해 수온 상승 폭이 굉장히 높습니다. 열팽창에 의해 해수 부피가 늘어나 해수면이 상승할 수 있어요.”

사진 김수현 기자
송정해변에 파도가 들이치는 해안선을 따라 모래가 길게 침식돼있다. 침식이 진행 중인 사빈은 조금만 건드려도 쉽게 모래가 밑으로 흘러내린다. 사진 김수현 기자

  기후변화는 먼 미래가 아니다. 지난 시간 겪어온 팬데믹의 원인이자 당장 한반도가 직면한 중대 사안이다. 지구의 고통에 경각심을 갖고 언제라도 찾아올 더 큰 팬데믹과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실효성 있는 기후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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