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문으로 안내하는 점자블록
이동권 제약, 타 기본권 침해 유발

작동하지 않는 점자 안내판부터 횡단보도 양단에 미설치한 점자블록까지. 서울캠 곳곳에서 장애 학생의 이동에 제한을 둘 수 있는 요소들을 발견했다. 사진 박소리 기자
작동하지 않는 점자 안내판부터 횡단보도 양단에 미설치한 점자블록까지. 서울캠 곳곳에서 장애 학생의 이동에 제한을 둘 수 있는 요소들을 발견했다. 사진 박소리 기자

1월 26일 310관(100주년기념관)이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을 갱신했다. 이는 노인과 장애인 등이 시설을 이용할 때 불편은 없는지 점검하고 평가하는 제도다. 310관을 포함한 서울캠이 장애 학생들에게 배리어 프리할지 장애 학생의 관점에서 점검했다. 

  조금만 생각하면 보이는 것들 
  서울캠 시설팀에 따르면 서울캠에는 건물마다 점자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각 건물의 정보를 점자와 음성으로 안내하는 장치다. 그러나 102관(약학대학 및 R&D센터)과 104관(수림과학관), 107관(학생회관), 201관(본관), 301관(중앙문화예술관) 등 일부 건물의 점자 안내판은 음성 안내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 시각 장애인인 정승원 학생(사회학과 4)은 “점자 안내판은 장애 학생에게 건물의 위치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며 “설치한 안내판이 작동하지 않는 건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점자블록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문제도 있었다. 국토교통부의 ‘교통약자 이동편의시설 설치·관리매뉴얼’은 횡단보도 양단에 점자블록을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각 장애인에게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횡단보도 진입 부분에 점형블록을 배치하고 선형블록을 통해 횡단방향을 안내해야 한다. 그러나 102관 앞 횡단보도 등에는 점자블록이 설치되지 않았다. 서울캠 시설팀 관계자 A씨는 “매년 장애인 관련 예산을 확보해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다”며 “해당 점자블록과 관련한 문제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후문부터 310관 사이와 달리 정문과 중문 인근은 점자블록이 충분히 설치되지 않았다. 310관 지하 5층 출입구 앞 점자블록은 인도 중간에서 끊겨 있다. 시각 장애 학생은 점자블록에만 의존해 서라벌홀과 204관(중앙도서관) 등으로 이동하기 어렵다. A씨는 “점자블록 확충은 연차별로 계획을 세워 진행해야 한다”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서라벌홀 2층 출입구와 4층 엘리베이터 앞 등에 설치된 점자블록 위를 미끄럼 방지 매트가 가리기도 했다. 위유진 장애인권대학생네트워크 위원장(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은 “시각 장애인들은 점자블록을 통해 길이 끝나는 부분 등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며 “점자블록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다면 시각 장애인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310관 지하 5층과 연결된 점자블록은 잠금장치로 잠겨져 출입할 수 없는 문으로 유도하고 있었다(5일 기준). 조석주 서울캠 총무팀 차장은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출입문을 개방하지 않았다”며 “2일부터 출입문을 개방하기로 결정했으나 전달이 잘못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방호팀에 해당 출입문을 열어달라고 조치했다”고 언급했다. 

  6일 기준, 해당 출입구는 개방된 상태다. 그러나 여전히 휴일이나 밤에는 해당 출입문을 이용할 수 없다. 조석주 차장은 “해당 출입문에 보안 처리가 되지 않아 현재로서는 휴일이나 밤에는 출입할 수 없다”며 “보안 시스템을 설치할 때 점자블록이 어떤 출입문과 연결돼 있는지까지는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2월부터 가동된 중앙도서관 앞 에스컬레이터는 운행 방향을 점자로 안내하지 않았다. 시각 장애 학생이 역방향으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등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승원 학생은 “전맹 시각 장애인의 경우 소리로만 에스컬레이터의 상·하행을 구분하기 어렵다”며 “확실히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지체 장애 학생이 정문과 중문 사이를 오가기 위해서는 수림과학관 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만 한다. 서울캠 중앙마루에는 휠체어가 오갈 수 있는 경사로가 없기 때문이다. 대학본부는 서울캠이 부지 조건상 경사가 심해 현실적으로 완전히 배리어 프리한 캠퍼스를 만들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A씨는 “서울캠 중앙마루는 지대가 높아서 경사로 설치 기준을 만족하기 어렵다”며 “불완전하게 경사로를 설치하다 보면 오히려 경사로를 이용하다 다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전했다.

  장벽을 하나씩 허물려면 
  중앙대 인근 타대는 장애 학생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서울대는 장애 학생 이동 지원 차량 운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임희진 서울대 장애학생지원센터 전문위원은 “장애 학생들이 요청하면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탑승할 수 있는 차량을 운행한다”며 “한 학기 수업 시간에 맞춰 정기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숭실대는 장애 학생들의 이동을 지원하기 위해 건물 출입문을 자동출입문으로 교체 중이다. 전영석 숭실대 장애학생지원팀장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 출입문의 형태는 건물 출입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라며 “멀쩡한 문을 왜 자동문으로 교체하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배리어 프리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대학이 장애 학생의 이동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찬석 교수(사회학과)는 대학의 공적 역할을 언급했다. 서찬석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의 비율은 약 4~5%에 이르지만 물리적·사회적 장벽으로 인해 이동의 자유를 누리지 못해 비가시적인 집단으로 보일 뿐”이라며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함께 사회의 일원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으로서 공적 사명이 있다”며 “대학은 소수의 장애 학생이 비장애 학생과 같은 권리를 누리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는 언급도 있었다. 이학인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사무국장은 “비장애인은 겪어보지 못한 불편을 장애인은 마주해야 한다”며 “장애인에 관한 차별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움직임은 비장애인에게도 도움 될 수 있다. 서찬석 교수는 “이동의 제약이 있는 사람들에 맞춰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결국 모든 이들이 더 자유롭게 이동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위유진 위원장도 “대학본부가 장애 학생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데에 쓰일 예산을 소모 비용으로 인식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장애 학생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비장애 학생들의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학 내 장애 학생의 이동권 제약은 학습권 침해로도 번질 수 있다. 위유진 위원장은 “교육을 받기 위해선 학교에 가야 하지만 학교에 간다는 전제가 충족되지 않으면 학습권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동할 권리는 생존할 권리와 맞닿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정승원 학생도 “이동권은 최소한 보장돼야 할 생존권과도 같다”며 “이동의 제약으로 생활에 불편을 겪는 것은 생존할 권리를 침해받는 것과 같다”고 전했다. 

  장애 학생의 관점으로 서울캠의 이동 환경을 점검한 결과 여러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승원 학생은 “이동을 못 한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는지 잘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는 삶의 바탕이 된다. 어떤 환경이 누군가의 권리를 해칠지 고민해보는 그 자체로 캠퍼스의 장벽을 하나씩 허물 수 있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