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림(Do Dream)은 ‘꿈꾸고(Dream) 도전하라(Do)’, ‘꿈꾸고(Dream) 두(Do)드려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 여론부는 다양한 도전과 경험 끝에 중앙대 강단의 문을 두드린 이들을 만납니다. 강단에서 중앙대 학생들을 만나기까지 그들의 여정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번 주는 한 폭의 그림으로 울림과 감동을 전하는 김선두 교수(한국화전공)를 만나봤습니다. 김선두 교수의 이야기를 함께 두드려 볼까요? 소지현 기자 jihyeon86@cauon.net 

김선두 교수는 여러 가지 실험적인 방식으로 한국화를 다채롭게 표현하고 있는 대표적인 한국화 작가다.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제68회 서울특별시 문화상의 미술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진 소지현 기자.
김선두 교수는 여러 가지 실험적인 방식으로 한국화를 다채롭게 표현하고 있는 대표적인 한국화 작가다.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제68회 서울특별시 문화상의 미술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진 소지현 기자

“철없는 순수함과 동심이 제 예술의 원동력인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지금 교수직에 있기도 하고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고 조심하긴 합니다. 그래도 혼자 많이 내려놓고 아이처럼 철없이 호기심을 발산하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거죠.” 

마당 한 편에 분홍 꽃을 피운 매화나무가 보였다. 거리를 외롭게 떠돌던 고양이에게 자그마한 보금자리를 내준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약속 시간에 맞춰 준비돼있는 군고구마와 커피도 온기가 가득했다. 커피의 온도만큼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감각적으로 때론 소탈하게 그려내는 김선두 교수(한국화전공)와 그 공간은 매우 닮아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작업실답지 않은 정겨운 공간에서 그를 만났다. 

  -요즘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사회적 거리두기로 모임이 줄어들어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어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미술계가 어려워지기도 했지만 사람들과 만남이 줄어들어 작가로서는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더라고요. 마침 올해 2개의 개인전이 계획돼 있는데 그 전시를 준비하면서 지내고 있죠. 학교 강의도 나가고 있어요.” 

  -개인전과 강의 준비로 바쁠 듯하다.
  
“그래도 틈틈이 취미 생활을 즐깁니다. 축구나 야구 경기를 보고 또 직접 하기도 해요. 특히 아침마다 조기 축구 모임에 나가고 있어요. 화가와 운동이라니, 독특하죠? 어려서부터 시골에서 자란 덕에 운동을 좋아하게 됐어요. 꾸준한 운동이 작가 생활에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림을 그리는 일도 결국 체력 싸움이거든요.” 

  -한국화도 어렸을 적부터 좋아했나.
  
“한국화를 좋아했다기보단 처음엔 그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아버지가 한국화 화가셨거든요. 원래 초등학교 교사셨다가 그만두시고 화가의 길로 접어드셨죠. 그 뒤로는 약 10년 동안 떨어져 지냈어요. 가끔 아버지께서 집에 오시면 그림 그리시는 모습을 구경하곤 했죠. 자주 뵙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에 갖는 환상만큼이나 그림에 관한 애정도 커져만 갔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림을 좋아하게 됐고 막연하게 화가의 꿈을 키워나갔어요.” 

  -본격적으로 한국화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교내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시작됐어요. 한국화를 그려본 경험은 없었지만 교내 전시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특이한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마음에 한국화를 선택했죠. 처음 한국화를 그리는 것이다 보니 작품을 창조하기보단 모방에 가까웠어요. 그런데 종이에 먹이 번지고 색과 선이 어우러지는 그 느낌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렇게 한국화에 발을 들이게 됐습니다.” 

  -작품의 아이디어나 소재는 어떻게 얻는지.
  
“가장 확실한 건 일상 속 구체적인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림은 먼저 정해놓고 가면 안 되거든요. 일상에서 혼이 흔들릴 정도의 감동을 받고 깨달음이 있으면 하나의 설계가 만들어지죠. 또 사회의 불편한 부분들이 예술의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이상주의자이지만 사실 세상에는 부조리가 정말 많잖아요. 그런 부분들을 잘 통찰해보면 영감을 얻고 우리 삶을 들여다볼 수 있죠.” 

  -최근에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낮별>이라는 시리즈의 작품을 그리고 있어요. 원래 낮이 되면 별이 안 보이죠. 하지만 낮에도 밤처럼 별이 보인다는 상상을 넣은 겁니다. 얼핏 보면 밤하늘과 같지만 낮이기 때문에 자세히 보면 땅은 밝아요. 그리고 여기에 욕망이라는 주제를 더했어요. 그림 속 새들은 모두 벌레와 과자 봉지에만 시선이 꽂혀있습니다. 고개를 들면 별이 가득한 하늘과 예쁜 꽃이 있는데도 말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어요. 우리 삶에 중요한 의미들은 모두 욕망으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거죠.” 

  -<낮별>의 영감은 어디서 비롯됐나.
  
“전라남도 강진군에 위치한 주작산 자연 휴양림에 간 적이 있습니다. 새벽 3시쯤 침대에서 내려와 통창 아래에서 턱을 괴고 날이 밝을 때까지 하늘을 올려다봤죠.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별들의 풍경이 무척 황홀했습니다. 문득 저 하늘이 낮에도 보이면 기가 막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어 별은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낮에는 별이 안 보이는 것처럼, 인생의 중대한 가치들은 잘 보이지 않고 가려져 있다는 게 섬광처럼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시작했죠. 지금은 만족할 때까지 <낮별>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데 완성되면 내년에 학고재 갤러리에서 크게 전시를 해보려고 합니다.” 

김선두 교수의 '낮별' 시리즈 중 일부다. 작품 속 새들은 머리 위에 놓인 아름다운 별과 꽃, 자연 등을 보지 못한 채 오로지 먹을 것에만 시선이 쏠려 있다. 그는 이처럼 욕망이 눈을 가릴 때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보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사진제공 김선두.
김선두 교수의 '낮별' 시리즈 중 일부다. 작품 속 새들은 머리 위에 놓인 아름다운 별과 꽃, 자연 등을 보지 못한 채 오로지 먹을 것에만 시선이 쏠려 있다. 그는 이처럼 욕망이 눈을 가릴 때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보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사진제공 김선두

  -1992년부터 2020년까지 정기적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개인전을 꼽자면.
  
“2020년 <김선두전>이 기억에 남아요. 보통 개인전의 이름은 전시하는 작품들의 전반적인 주제를 활용해 짓습니다. 그러나 그 개인전은 작가 김선두의 작품 세계의 전환점이자 현대미술을 온전히 이해하고 준비했던 의미 있는 전시였기 때문에   <김선두전>이라고 이름 붙였죠. 개인적으로 특별한 전시회였던 만큼 기억에 남네요.” 

  -구체적으로 작품 세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궁금하다.
  
“이전엔 정서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어요. 정서는 저마다 느껴지는 게 다르기 때문에 뚜렷한 주제 의식을 전달하기보단 열린 이야기와 해설을 허용합니다. 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재료도 다양해지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셈이죠.

  그러나 현대미술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한 후부터 달라졌어요. 현대미술은 추상적인 정서가 아닌 구체적인 주제 의식과 전하고자 하는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보통 하나의 이미지로 주제를 전달하기보다는 여러 개의 이미지를 통해 작품을 구성하곤 하죠. 하나의 이미지만으로는 구체적인 주제 의식을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한 작품에 3~5개 정도의 이미지를 활용해 구성을 만들게 됐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중앙대에서 같은 한국화전공을 가르치고 있는 김백균 교수의 도움이 컸죠. 김백균 교수는 현대미술에 관해 평론을 쓸 정도로 사견이 깊어요.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현대미술이 갖는 의미에 관한 생각이 바뀌게 됐습니다. 직접 김백균 교수의 강의를 들어보니 확실히 현대미술이 기존 방식과 다르다는 게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2020년 <김선두전>에서 처음 시도해봤죠.” 

  -다른 교수의 강의를 듣는다는 점이 신기하다.
  
“작가로서, 그리고 교수로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면 당연히 청강할 수 있죠. 좋은 작품과 더 나아가 좋은 강의를 위해서는 자존심을 세울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저도 학생들에게 좋은 강의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제야 가르칠 만 해졌더니 어느새 정년을 앞두고 있네요.” 

  -개인전 외에도 다양한 단체전에도 참여했다. 그중 독도와 관련된 이력들이 많이 보이는데.
  
“존경하는 은사님이신 이종상 서울대 교수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은사님은 본래 독도를 그리는 화가로 저명하셨습니다. 자연을 주로 화폭에 담는 한국화의 틀에서 벗어나 현실의 풍경을 거침없이 화폭에 담아낸 은사님의 작품들이 인상 깊었죠. 이에 이종상 교수님께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회가 생겨 교수님께서 서울대 박물관 관장으로 계실 때 기획하셨던 독도 기획전에 참여할 수 있었죠.” 

  -해당 전시회들에서 어떤 모습을 그리고자 했나.
  
“우리의 삶 속에 동해와 독도를 녹여보려고 노력했어요. 사실 영유권 분쟁이 있는 지역이잖아요. 개인적으로 예술에 지나치게 정치적인 요소를 녹여내는 것을 좋아하진 않아요. 그럼에도 동해와 독도는 진경 작업의 일환으로 그림을 남겨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죠. 그래서 전시회를 통해 그곳의 일상적인 생활상을 담았습니다.” 

  -준비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일화가 있는지.
  
“작업을 위해 독도에 갔는데 풍랑이 심해 섬에서 나오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폭풍우는 아니었는데 위험하다는 이유로 배가 뜨지 못했죠. 그래서 20여 명이 좁은 방에서 꼼짝없이 밤을 지새웠어요. 먹을 것도 없어 독도경비대로부터 라면을 얻어오기도 했습니다. 불편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독도의 일출을 볼 수 있었어요. 너무나 값진 경험이었죠.” 

울릉도에서 바라본 독도를 그린 '독도-작은리조트'. 라메르에릴에서 주최한 '한국의 진경-독도와 울릉도' 속 작품이다. 사진제공 김선두.
울릉도에서 바라본 독도를 그린 '독도-작은리조트'. 라메르에릴에서 주최한 '한국의 진경-독도와 울릉도' 속 작품이다. 사진제공 김선두

  -선배 작가로서 향후 한국화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한다면.
  
“작가의 삶이 녹록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에 미쳐서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죠. 돈을 못 벌어도 어때요.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재미있게 산다는 점에 의미가 있는 겁니다. 비록 현실적으로 부딪히기도 하겠지만 다른 부가적인 부분들을 생각하지 말고 즐겁게 작업하다 보면 견딜만하고 더불어 보람도 느끼게 되더라고요.” 

“제 그림의 기본 바탕은 장지 기법에 있어요. 고구려 벽화에서부터 시작된 고유 기법인데 마치 우리나라의 장 문화나 음식문화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장지 기법으로 색을 여러 번 칠하면 색이 맑은 느낌이 나면서도 깊어요. 마치 숙성된 장 혹은 잘 묵은 김치처럼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 속 오원 장승업 역의 대역을 맡은 적이 있다고.
  
“이 기회도 이종상 교수님의 추천으로 갖게 됐어요. 제자 중에서 장지 기법을 전수받아 30년 이상 고수한 제자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장지 기법이란 먹과 채색을 옅게 50차례 이상 덧칠함으로써 장지에 깊게 스며들고 번지게 하며 발색 효과를 극대화하는 기법을 말해요. 이때 장지는 장한 종이, 좋은 종이라는 뜻으로 닥나무로 만든 우리나라 종이인 한지를 의미하죠.” 

  -새로운 경험이었을 텐데 어땠는지.
  
“촬영을 하면서 옛날 우리 그림의 매력을 또다시 발견했어요. 촬영 때문에 옛 그림을 계속해서 모사하다 보니 중간 농도의 먹인 중묵을 맛깔스럽게 활용한 면모가 돋보이더라고요. 요즘은 농묵, 즉 진한 농도의 먹을 많이 사용하곤 하는데 옛 그림을 보니 중묵의 사용과 그 사이 적재적소에 점을 배치하는 점이 매우 매력적이었어요. 중묵의 새로운 발견이었죠.” 

  -2010년에는 시를 함께 엮은 시그림책 『너에게로 U턴하다』를 발간했다.
  
“시 쓰는 게 또 다른 취미 중 하나입니다. 문인은 아니지만 시와 그림은 굉장히 가까운 장르고 시를 모르면 그림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일부러 시를 써보기 시작했죠. 주변에 교류하는 문인들이 많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소설가 이청준 선생님께서 책 발간을 권유해주셨어요. 부끄러운 마음에 고민하다가 주변 문학평론가분께 제가 쓴 시 50여 편 중에 괜찮은 작품들을 골라달라고 부탁드렸죠. 그렇게 출간한 책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사진 작업에도 관심이 많다고.
  
“사진 촬영이 한국화와 일맥상통한 부분이 많더라고요. 한국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여백이에요. 그저 피사체를 예쁘게 배치하는 것에만 매몰되다 보면 작품이 잘 나오지 않죠. 사진도 마찬가지예요. 사물이 아니라 사물들이 만들어내는 그 여백에 집중해야 합니다. 작품 속 구성들이 겹치거나 손상되지 않게 그 여백을 잘 포착해서 담는 거죠. 아직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사진전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왕성한 활동 중에도 모교의 강단에 섰는데.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현실에서 전업 작가로 살아가는 게 쉽진 않아요.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위해 현실적으로 타협한 것이 교수였죠. 그렇다고 대충 강단에 서 있기만 하진 않았습니다. 좋은 후학들을 길러내는 데 이바지하고자 하는 마음 역시 굉장히 강했죠. 중앙대가 제게 특별한 곳이었던 만큼 모교의 강단에 서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른 학교에 갈 기회를 모두 거절하다가 1994년 운 좋게 이곳에 오게 됐죠. 중앙대에서 제자들을 만나고 도움을 줄 수 있어 뿌듯합니다.” 

  -학교를 향한 애정이 남다른 것으로 보인다.
  
“중앙대는 제 꿈을 단련시킨 대장간, 즉 ‘시우터’ 같은 공간입니다. 어린 시절 중앙대에서 주최한 미술대회에 참가하면서 중앙대를 처음 만났어요. 그리고 중앙대에 입학하게 되면서 제대로 된 인연을 맺었죠. 중앙대 도서관 뒤에 붙어있던 합격자 공지를 확인하던 날의 설경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제 이름을 확인하고 도서관 계단을 내려오는데 눈앞에 명수대와 한강, 그리고 서울 시내가 펼쳐지더라고요. 거기에 함박눈이 흩날리면서 마치 저를 축하해 주는 것 같았는데요. 이제는 모교에서 교수가 돼 있네요. 은혜도 많이 받았고 꿈도 이뤘고, 이제는 제가 우리 제자들에게 꿈을 심어줘야죠.” 

  -교수로서 강단에서 있었던 일 중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임용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사군자 중에 매화를 그리는 수업을 진행했는데 제자들이 직접 매화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그림을 그렸으면 했죠. 제가 매화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매화 그림을 그렸었거든요. 마침 조기 축구를 즐겨 하던 초등학교 앞의 매화나무가 생각났죠. 그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매화나무를 직접 보고 그려보는 야외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문제는 그 일로 한 선배 교수님으로부터 꾸중을 들었단 거예요. 제자들과 학교 밖에서 놀고 왔다고 오해하셨죠. 억울했지만 평소 존경하던 은사님 중 한 분이셨기에 더 이상 야외 수업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대신 야외로 나갈 수 없으니 교정에 매화나무 5그루를 심었어요. 어느 날 그 은사님께서 매화나무를 보시더니 제게 매화나무값을 줘야겠다고 하셨죠. 하지만 이전에 꾸중하셨던 기억에 오기가 생겨 값을 받지 않겠다고 했던 일화가 갑자기 떠오르네요.”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어떤 가치를 전하고자 하는지.
  
“제가 1학년에게 대가가 되는 지름길을 알려주겠다며 ‘4박자 이야기’를 해주고 있어요. 머리, 가슴, 손 그리고 발로 나눠서 설명합니다. 먼저 머리에 관한 설명으로 그림의 주제는 곧 삶의 깨달음이기에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죠. 삶의 깨달음은 인문학으로부터 시작되니 문학, 사회, 철학 전반에 관한 독서를 권유합니다. 가슴은 넉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감성이 풍부해야 이입이 되고 상상력이 나오기 때문이에요. 손으로는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잘 표현해내는 기술을 익히고 발로는 많이 뛰어다니며 경험을 쌓으라고 하죠. 이 4박자가 필요한 것 같아요.” 

“무슨 일을 하더라도 기본기를 단단하게 했으면 좋겠어요. 원하는 목표를 이루려고 서두르다 보니 기본기를 소홀히 하는 학생들을 많이 봤거든요. 그러면 결국 발전 없이 쳇바퀴만 돌게 되죠.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기본기를 잘 쌓아두면 금방 도약할 수 있습니다.” 

김선두 교수의 대학교 4학년 모습이다. 아래에는 달력처럼 사용하면서 그의 일상이 겹겹이 쌓이고 있다. 그 기록이 마치 구름 같아 보이기도 하다. 사진제공 김선두.
김선두 교수의 대학교 4학년 모습이다. 아래에는 달력처럼 사용하면서 그의 일상이 겹겹이 쌓이고 있다. 그 기록이 마치 구름 같아 보이기도 하다. 사진제공 김선두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내년에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는데요. 제가 원래 게으른 사람인데 그렇게 살지 못했죠. 이제 사는 날까지 천성대로 게으름도 피우면서 자유롭게 살아보려고 합니다. 퇴임하면 작업실에서 원 없이 그림도 그릴 거예요. 정말 좋은 그림 그리면서 남은 삶을 잘 꾸려나가는 게 제 꿈입니다.” 

  -중앙대 후배들과 제자들에게 한 마디를 남긴다면.
  
“조금은 여유를 갖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욕망에 충실하게 사는 것도 좋죠.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 욕망에 너무 매몰되는 순간 멀리서 보기에, 솔직히 추해요. 가끔 전시회도 가고, 음악회도 가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하러 가세요. 한국화에 취미를 가지면 최고로 좋지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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