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문화예술 향유를 미뤄두곤 합니다. 감상의 순간이 찾아와도 무심하게 등을 돌리기도 하죠. 이번 학기 문화부는 문화예술을 잊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감성’을 전해 가슴 속에 큰 울림을 선사하고자 합니다. 이번 주 문화부는 카메라의 역사를 돌아보며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한 필름 카메라에 일상의 순간을 담아봤습니다. 빛바랜 듯한 필름 사진 속 여전히 따뜻하기만 한 추억을 떠올리며, 다 같이 감성 스위치를 딸깍- 올려볼까요? 이서정 기자 sinceresseoj@cauon.net

필름 현상소 ‘위켄드필름’의 벽면에 붙어있던 포스터. 뷰파인더로 색색깔의 필름 통을 응시하며 마지막 한 컷을 찍었다.
필름 현상소 ‘위켄드필름’의 벽면에 붙어있던 포스터. 뷰파인더로 색색깔의 필름 통을 응시하며 마지막 한 컷을 찍었다.

하나의 유행 또는 새로운 표현 방식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카메라


형태는 변해도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순간을 평생으로, 일상을 예술로

찰나의 기록이 영원한 기억으로. 풍경과 함께 그때의 시간을 간직한 사진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특별한 순간을 렌즈에 담았던 과거와 달리, 우리는 휴대폰만 있어도 일상의 모든 장면을 기록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카메라 형태가 탄생하기 전까지 수많은 발명과 도전이 존재했다. 틈이라곤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 그 많던 카메라는 다 어디로 갔을까.

  카메라, 과학에서 예술까지
  오늘날 카메라의 기원은 라틴어로 ‘어두운 방’을 뜻하는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ucra)’로부터 출발한다. 빛을 막은 상자 한 면에 구멍을 내고 그 작은 틈으로 빛이 들어오게 해 구멍 반대편 벽에 물체의 상이 거꾸로 맺히는 원리다. 기원전 4세기경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를 활용해 일식을 관찰했고, 16세기 이탈리아 과학자 델라 포르타는 저서 『자연마술』에서 카메라 옵스큐라를 밑그림을 그리는 데 보조 도구로 사용할 것을 추천하기도 했다.

  초기 카메라가 과학과 미술을 위한 장치에 가까웠다면, 현대에 와서 카메라는 그 자체로 예술에 가까워졌다. 조대연 교수(광주대 사진영상드론학과)는 사진이 기존의 예술은 나타내지 못한 부분까지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카메라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사진은 예술 표현의 욕구와 과학 기술을 융합시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었어요.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표현의 확장인 사진은 시각적 독창성과 함께 중요한 예술 표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김경화 넥스트 리터러시 연구소(미디어오늘 산하 연구소)장은 사진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예술의 일상화가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기술적으로 고성능 카메라를 장착한 스마트폰이 늘어나며 일상에서 사진찍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어요. 이후 SNS를 통해 사진을 공유하면서 사진을 매개로 한 시각 커뮤니케이션의 의미가 커졌죠. 사진을 통해 예술적 표현을 일상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나만의 흔적을 남기는 시대
  사진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계기는 필름 카메라의 등장이었다. 미국의 조지 이스트먼이 만든 필름 회사 코닥은 1888년 휴대용 ‘코닥 브라우니’ 카메라를 세상에 내놓았다. 100컷 분량의 필름 롤이 들어있는 코닥 브라우니는 간단히 손에 쥐고 연속적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였다. ‘버튼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해결해 드립니다.’라는 유명한 광고 문구는 필름 카메라의 시대를 열었다.

  김유진 교수(경일대 사진영상학부)는 필름 카메라만이 지닌 매력으로 소리를 꼽았다. “필름 카메라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찰칵-칙’하는 소리와 함께 한 장 한 장 필름이 감기는 소리가 정말 매력적입니다. 이게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주거든요. 오늘날 디지털카메라에서는 듣기 어렵죠.”

  그러나 점점 필름 카메라를 찾는 손길이 줄어들었다. 불편함을 버리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디지털카메라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대표적인 아날로그 카메라 주자였던 일본의 교세라와 미국의 폴라로이드는 디지털카메라와의 경쟁에서 밀려났고, 결국 필름의 대명사였던 코닥이 2012년 파산하며 필름 카메라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렌즈 너머 열린 새로운 세상
  최초로 상용화된 디지털카메라는 1981년 일본 소니의 마비카 제품이다. 필름 대신 휴대용 저장장치인 플로피 디스크를 이용했는데, 빠른 이미지 처리 속도와 편의성 등 디지털카메라의 핵심적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관련 기술이 크게 발전하며 2002년 국내 디지털카메라 판매량은 필름 카메라를 뛰어넘었고 사람들은 일명 ‘똑딱이 카메라’로 불리는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로 일상 속 순간을 담아냈다.

  김범준 교수(경기과학기술대 미디어디자인학과)는 디지털카메라의 편리성과 인터넷 기술이 결합해 자신을 드러내는 장이 생기면서 카메라 대중화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똑딱이 카메라의 유행 이후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바로 볼 수 있다는 즉시성에 매력을 느꼈고, 그때 우리나라에 싸이월드처럼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 나타났어요. 디지털카메라 기술과 함께 일상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 또 이를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 모두 어우러져 카메라의 대중화에 기여한 거죠.”

  그러나 언젠가부터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순간마다 디지털카메라 대신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내 든다. 특별한 공간에 가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 등 SNS 공간에 바로 공유한다. 지금처럼 성능이 좋은 카메라가 휴대폰 뒤에 달린 시점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2000년 삼성전자는 최초로 휴대폰에 35만 화소짜리 카메라를 장착했는데, 당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후 휴대폰 기술이 점점 발전함에 따라 내장 카메라 기술이나 화소도 모든 면에서 디지털카메라만큼 성장하게 됐다.

  순식간에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큰 타격을 입었다. 카메라영상기기공업회(CIPA)에 따르면 2010년 전 세계 디지털카메라 출하량은 약 1억2146만대로 정점을 찍었다가 감소하기 시작하면서 2020년 약 889만대에 그치는 데 불과했다. 이전처럼 집집마다 디지털카메라와 함께 여행을 다니던 시절은 추억 속으로 사라져갔다.

  변하지 않는 예스러움은 우리 곁에 돌아와
  스마트폰 등장 이후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주춤한 사이 눈에 띄는 유행이 움트기 시작했다. 바로 아날로그 열풍이다. 사람들은 다시 기억 저편에 있던 필름 카메라를 찾기 시작했다. 한국후지필름은 일회용 필름 카메라 ‘퀵 스냅’의 2017년 상반기 누적 판매량이 지난해 대비 200%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필름 카메라 인기에 힘입어 한국후지필름 본사에서 직접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현상 및 스캔하는 서비스도 시행했다. 더욱 쉽고 빠른 것을 원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번거로움과 예스러움에 눈을 돌린 것이다.

  조대연 교수는 빠름에 지친 현대인에게 아날로그 카메라는 디지털이 제공하지 못하는 부분을 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날로그 카메라의 느림과 결과의 불확실성 그리고 특수성 같은 특징은 디지털카메라에서 경험할 수 없어요. 이는 타인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욕구와도 부합하죠. 18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카메라와 사진술은 계속해서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하리라 생각합니다.”

  실제 필름 카메라를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는 한편, 스마트폰에 성능 좋은 카메라가 있음에도 필름 카메라 느낌이 나는 사진 앱을 구매하는 이들도 있다. 필름 카메라 앱 ‘구닥’은 2017년 출시 5개월 만에 약 150만명이 앱을 설치했고, 애플 앱스토어 전체 카테고리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인화 과정을 거치듯 사진을 찍고 3일이 지나서야 확인이 가능한데도 사람들은 직접 이 감성을 찾았다.

  윤태준 교수(광주대 사진영상드론학과)는 아날로그 카메라 열풍의 이유로 콘텐츠 자체가 지닌 차별성을 언급했다. “젊은 세대에게 사진은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도구이자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편리한 매체예요. 이러한 특징 때문에 사진을 더욱더 색다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찾는 것 같습니다. 필름 카메라 자체의 특성보다는 ‘다른 느낌의 사진’, ‘쉽게 만들 수 있는 느낌 있는 사진’을 원하는 거죠.”

  아날로그 카메라 열풍이 시사하는 바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김범준 교수는 이 모든 카메라 유행은 결국 카메라가 사라질 일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지금의 아날로그 카메라 인기가 지속할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요. 유행의 파도에 따라 카메라도 계속 오르고 내리는 흐름인 것으로 보입니다.”

  기억에 남을 특별한 날이 오면 서랍 속 카메라를 들고 나가 신중하게 셔터를 누르는 게 자연스러울 때가 있었다. 카메라의 형태는 바뀌었을지라도 여전히 담고 싶은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셔터를 누르며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이들은 남아 있다. 자신만의 눈빛으로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간직하게 하는 카메라, 그가 있기에 오늘도 추억은 차곡차곡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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