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세 기자가 촬영한 필름 사진들이다. 필름 사진을 바라보다 문득 이동진 영화 평론가의 문장 하나가 떠오른다. ‘지나온 적 없는 어제의 세계들에 대한 근원적 노스탤지어.’ 사진 권지현·박서영·이서정 기자
문화부 세 기자가 촬영한 필름 사진들이다. 필름 사진을 바라보다 문득 이동진 영화 평론가의 문장 하나가 떠오른다. ‘지나온 적 없는 어제의 세계들에 대한 근원적 노스탤지어.’ 사진 권지현·박서영·이서정 기자

그냥 날이 좋아서, 선선해서 어떤 순간을 포착하고 싶을 때가 있다. 아날로그 감성이 한 겹 덧칠해진 필름 카메라는 그 순간을 더욱 기억하고 싶은 아련함을 준다. 4월의 봄부터 문화부 권지현 기자(권 기자)와 박서영 기자(박 기자), 이서정 기자(이 기자)는 각자의 일상에 필름 카메라를 더해 그 감성을 느껴보기로 했다.

  필름 카메라에 담은 첫 순간
  세 기자가 사용한 일회용 필름 카메라 ‘코닥 펀세이버’는 총 39컷의 순간을 담을 수 있었다. 필름 카메라를 처음 받아든 사람이라면 디지털카메라와는 다른 조작법에 어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작 순서는 비교적 간단하다. 찍고 싶은 피사체를 찾으면 카메라의 롤을 돌리고, 돌아가는 롤이 막히는 순간 뷰파인더로 보이는 대상을 응시하면 된다. 플래시를 터뜨리고 싶다면 번개 모양의 플래시 버튼을 누른 채 대기 버튼이 켜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깜빡. 대기 버튼에 빨간 불이 들어오는 순간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그렇게 필름에 한 순간이 기록된다.

  을지로4가역 ‘옥상필름 현상소’를 운영하는 홍의수 사장(52)은 벚꽃이 필 무렵 현상소에 사람이 몰린다며 웃음을 지었다. “보통 벚꽃과 단풍처럼 계절 이벤트에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요. 올해 벚꽃 시즌 동안 저희 현상소도 많이 바빴죠. 꽃놀이를 하는 곳 근처에 있는 현상소는 정말 정신없었다고 해요.” 필름 카메라에 만개한 꽃을 담고 싶은 사람이 많은 듯하다. 필름 카메라를 몇 번 경험해 본 박 기자와 이 기자도 이번 필름 카메라의 시작을 꽃과 함께했다.

안양천을 따라 걷다보니 끝없이 펼쳐진 벚꽃길이 나타났다.‘금천구 벚꽃로’에서 해가 서서히 저무는 순간을 포착했다.
안양천을 따라 걷다보니 끝없이 펼쳐진 벚꽃길이 나타났다. ‘금천구 벚꽃로’에서 해가 서서히 저무는 순간을 포착했다.

  박 기자는 싱그럽게 피어난 봄의 꽃을 담기 위해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양재 꽃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는 프리지아와 안개꽃, 장미 등 각양각색의 꽃들이 조화롭게 모여 있었다. 한쪽 눈을 감고 뷰파인더 너머로 보이는 꽃을 자연스럽게 담기 위해 몰입한 박 기자. 그의 모습은 제법 전문가 같았다.

  4월의 어느 날, 한 손에 필름 카메라를 들고 동네의 작은 산에 오른 이 기자. 자신만만했던 걸음과는 달리 벚꽃이 거의 진 무렵이라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의 전경을 담을 수 없었다. 터덜터덜 산을 내려오던 아쉬움의 찰나, 그의 눈에 곧게 서 있는 한 그루의 벚꽃 나무가 포착됐다. ‘찰칵.’ 이 기자의 첫 번째 셔터 주인공은 벚꽃 나무였다.

  두 기자와 달리 필름 카메라 초보였던 권 기자는 신문에 실을 만한 사진을 한 장이라도 건질 수 있을지 의 문이었다. 다행히도 옥상필름 현상소 홍의수 사장님이 건넨 한 마디는 권 기자에게 용기를 줬다. “현상을 맡기러 방문하는 손님의 약 80%는 필름 카메라를 처음 사용하는 분들이에요. 필름 뚜껑을 열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도 있죠.”

  권 기자는 지난 학기 취재차 들렀던 을지로 거리로 향했다. 가게 앞에 나란히 놓인 술병, 예스러운 카페 외벽 모두 매력적인 피사체가 됐다. 인터뷰를 위해 갔던 독립서점 ‘커넥티드북스토어’도 다시 방문했다. 필름 카메라에 서점의 모습을 담아도 괜찮겠냐는 질문에 직원이 직접 사진이 잘 나오는 구도를 추천해주기도 했다. 같은 공간에 필름 카메라만 하나 더해졌을 뿐인데 지난 을지로 기획 기사와는 사뭇 다른 감성이 묻어나는 듯했다.

  우리를 스쳐 간 일상 속 장면들이 필름 카메라에서는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필름 카메라 동아리 ‘카랜더’의 회장 김수정 학생(삼육대 보건관리학과)은 일상을 달리 보여주는 필름 사진의 매력을 말했다. “친구랑 카페 ‘공차’에서 장난으로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는데 인화한 사진을 보니 어디에나 있는 공차가 다르게 느껴졌어요. 어둡게 보이는 카운터, 텁텁한 나무색 책상 등 별거 없다고 여긴 공간이 색다르게 보였죠. 이게 바로 필름 카메라의 매력 아닐까요?”

  소중한 한 컷, 도전의 한 컷
  과거의 추억과 빈티지 감성을 떠올리게 하는 필름 카메라지만 주의할 점도 상당히 많다. 빛이 적은 실내에서는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으면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뿐더러 자칫하다 손가락이 나온 사진을 받아볼 수 있다. 꽤 까다로운 물건이었기에 박 기자도 결과물에 실망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컷 수가 정해진 만큼 그가 담고 싶은 장면만 골라 찍는 재미도 있었다. 수고스러운 과정마저 매력으로 다가오는 필름 카메라, 박 기자가 계속해서 구매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번 셔터를 누르면 끝이라는 생각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사진을 찍기도 했다. 부산 여행을 떠난 이 기자는 광안리와 해운대에서 피사체가 가장 잘 나올 수 있는 위치, 사진 구도 그리고 배경까지 고려해 심혈을 기울여 촬영했다. 서울의 삼청동길을 거닐 때는 차가 달리지 않는 최상의 순간을 포착하려 고군분투하기도 했다. 한 컷 한 컷 진심을 쏟게 하는 필름 카메라는 여행을 더 특별하고 진한 추억으로 오래도록 간직하게 해 주었다.

4월의 어느 날 부산 광안리. 봄 햇살을 받아 부드럽게 반짝이는 윤슬이 아름답고도 아련하게 와 닿는다.
4월의 어느 날 부산 광안리. 봄 햇살을 받아 부드럽게 반짝이는 윤슬이 아름답고도 아련하게 와 닿는다.

 

파도를 바라보며 사진의 구도를 고민하는 이 기자의 모습.
파도를 바라보며 사진의 구도를 고민하는 이 기자의 모습.

 

이 기자는 삼청동을 거닐며 가장 마음에 드는 찰나의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이 기자는 삼청동을 거닐며 가장 마음에 드는 찰나의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두 기자가 최고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무렵 권 기자의 머릿속에는 청개구리 같은 발상이 떠올랐다. ‘필름 카메라는 되도록 밝은 야외에서 사용하라고 하는데 실내나 야경을 찍으면 사진이 어떻게 나올까?’ 기자는 곧장 카메라를 들고 카페와 선유도 공원으로 향했다. 카페 곳곳에 있는 감성 소품을 찍거나, 일몰까지 기다린 후 공원의 몽환적인 야경을 담기도 했다. 스마트폰 카메라에서는 감성을 뽐내던 이들이 필름 카메라에는 어떻게 담겼을지 기대에 부푼 권 기자였다.

  기다림 끝에 닿은 추억 조각들
  권 기자가 방문한 옥상필름 현상소에서는 컬러로 필름 현상하는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카메라 안에 있는 필름 통을 꺼낸 후 필름피커로 통 안의 필름을 잡아 뺀다. 이때 현상기 안에 있는 칸마다 약품을 넣어 약품 처리를 완료해야 한다. 필름 리드에 필름을 붙인 후 완벽히 빛이 완벽히 차단된 현상기 안에 필름을 넣었다. 약 15~20분이 지났을까. 금세 필름 현상이 완료됐다. 이후 약품 처리가 완료된 필름을 스캐너에 집어넣고 약 5~10분이 지나자 기자가 찍은 필름카메라 사진의 결과물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권 기자의 카메라에 담긴 을지로와 연남동, 일본풍 으로 꾸며진 ‘니지모리스튜디오’의 모습은 있지도 않은 아련한 과거의 기억을 만들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실내 사진과 야경은 필름 카메라로 담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카페에서 찍은 사진은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아 경계가 불명확했고 아이폰에서는 예뻤던 선유도 야경은 어두움 그 자체였다. 중간중간 손가락이 나와 쓸 수 없는 사진도 있었다.

  찍고 난 사진을 묵묵히 바라보던 권 기자는 다음을 기약하며 홍의수 사장님께 필름 카메라를 잘 찍는 방 법을 물었다. “카메라마다 쓰여 있는 렌즈 밝기나 거 리를 잘 보고 그 기준에 맞게 사진을 찍어야 해요. 보통 1m 이상 거리를 두고 찍어야 하는 필름 카메라로 셀카나 음식 사진을 찍는 것은 적절하지 않죠. 플래시를 잘 쓰는 것도 중요해요. 필름 카메라는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입자 감도가 낮기에 실내나 어두운 풍경에서는 무조건 플래시를 터뜨려야 합니다.” 사장님의 조언을 먼저 듣고 사진을 찍었으면 더욱 완벽한 모습을 담을 수 있지 않았을까 속상한 마음도 들었다.

  오후 6시경 연남동의 ‘연남필름’에 방문한 이 기자는 당일 현상이 끝났다는 말에 눈물을 삼켰다. 다음 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사진을 보고 싶은 마음에 한성대입구역 ‘위켄드필름’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예상보다 하루를 더 기다려 받은 필름 사진은 이 기자에게 마냥 예쁘고 소중하기만 했다. 기다리는 동안의 설렘이 사진에 덧칠된 까닭일까. 물론 너무 밝거나 어두운 사진도 있었다. 다시 찍을 수 없다는 생각 이 아른거렸지만 이 아쉬움마저 필름 카메라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고, 이 기자는 생각했다.

  39컷을 다 채우고 사진관에 현상을 맡긴 박 기자는 직접 찍은 사진이 어떻게 나왔을지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사진관 연락을 기다렸다. 기다림 끝에 받은 사진은 그때의 추억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했다. 사진 속 빈티지한 느낌과 노이즈가 평범한 추억을 더욱 낭만적으로 만들어줬다. 청춘을 기록하는 삶을 선물해준 물건, 박 기자에게 필름 카메라는 그런 존재였다.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나오는지 확인할 수도, 현상된 사진을 지울 수도 없는 필름 카메라. 필름 사진 속 어색한 표정, 삐뚤어진 수평과 구도를 보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러나 세 기자는 동시에 생각했다. 꾸밈없는 날 것 그대로의 추억이기에 더욱 소중할지도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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