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든
일러스트 이든

메타버스가 무한한 기회의 땅이 되려면
지나친 낙관론과 섣부른 도입은 경계하고
발생할 사회 문제에 관해 적극 논의해야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시대가 열릴 수 있을까. 메타버스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외친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문화가 확산함에 따라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됐고 일상 및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메타버스는 중요한 키워드로 떠올랐다. 메타버스의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면서도 정작 그 개념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일각에서는 메타버스가 금방 사라질 거품이라는 회의론도 일고 있다. 메타버스가 정말 현실을 초월한 세계로 우리를 초대할 수 있을지 알아보자.

  메타버스, 이름만 번지르르?
  지난해 10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 경영자는 메타버스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회사 이름을 ‘메타’로 변경해 큰 화제가 됐다. 그러나 올해 초 메타의 주가는 크게 하락했고 메타버스 관련 사업 분야에서만 약 12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기록했다. 이후 메타버스가 허상임을 증명한 결과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김현석 교수(홍익대 시각디자인과)는 아직 메타버스 개념에 대한 합의가 부족하다고 이야기했다. “기존 게임이나 소셜 미디어와 비교했을 때 메타버스만이 가진 차별점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대표적인 메타버스 플랫폼인 ‘로블록스’나 ‘제페토’도 마찬가지죠. 메타버스를 아바타를 이용한 가상의 공간으로만 접근하는 게 아니라 현실의 자아보다 가상의 자아가 중요해지는 순간으로 정의한다면 서비스를 더욱 확장할 수 있을 거예요.”

  김민재 교수(서강대 메타버스전문대학원 메타버스테크놀로지전공)는 일부 메타버스 플랫폼이 지닌 한계를 지적했다. “VR(가상현실)은 일회성 몰입형 체험이지만, 메타버스는 우리 생활 자체이기 때문에 둘은 근본적인 환경이 달라요. ‘이프랜드’나 제페토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은 아이돌 스타 같은 캐릭터를 활용한 체험형 VR 콘텐츠에 불과하죠. 아직은 메타버스보다 낮은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1 디지털전환시대 콘텐츠 이용 트렌드 연구’에 따르면 메타버스 산업의 주 이용층은 10대부터 20대다. 이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은 ‘모여봐요 동물의 숲’, 제페토, ‘마인크래프트’ 순으로 모두 게임 분야에 해당했다. 김상윤 연구교수(일반대학원 컴퓨터공학과)는 메타버스의 유행이 특정 분야에만 치중됐다고 분석했다. “로블록스나 제페토는 메타버스를 ‘아바타가 살아가는 또 다른 세상’이라고 표현합니다. 문제는 그게 메타버스의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는 거예요. 메타버스는 현실과 가상이 결합하는 과정에서 사람에게 주는 새로운 가치나 경험을 의미하는데, 아직은 게임의 특성만 고려해서 메타버스를 구현하려는 경향이 있죠.”

  목적지 없이 메타버스에 올라타기만
  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메타버스 신산업 선도전략’으로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지원과 아카데미 신설 등을 지원하기 위해 약 2237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이미 공공부문에서는 여러 메타버스 사업을 시행 중이다. 그러나 사용자의 부족한 관심도가 꾸준히 문제로 제기된다. 지난해 10월 대구시에서 열린 ‘2021 동성로축제’는 메타버스를 도입해 비대면 행사를 진행했지만 동시 접속자가 1~2명에 불과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개최한 ‘2021 청년 과학기술인 일자리박람회’ 또한 대면으로 진행한 채용박람회에 비해 낮은 참여율을 보였다.

  김학구 교수(첨단영상대학원 영상공학전공)는 메타버스 관련 사업이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메타버스 활용 목적이 명확하지 않아도 단지 서비스에 ‘메타버스’라는 키워드가 붙었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은 새로운 것처럼 바라봐요. 이러한 열풍에 올라타 사람들의 이목을 일시적으로 끄는 형태의 사업이 많았죠. 여기에 속은 사람들은 막상 부족한 기술에 실망해 떠나고, 다시 메타버스에 현혹된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공공부문 사업이 메타버스 생태계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우운택 교수(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는 메타버스 거품이 생기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직 완전하지 않은 메타버스를 선점하고 싶은 지자체의 욕심과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메타버스 거품을 만들고 있죠. 메타버스는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전 세계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확장된 가상세계입니다. 지금은 사람이 없는 죽은 가상공간을 만드는 것에 불과해요.” 메타버스가 변화의 큰 흐름이라 해도 구체적인 목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완전한 기술 구현은 아직 먼 미래
  현실 정보를 가상으로 전송하기 위한 사물인터넷 및 초고속망, 3차원 위치기반 정보를 해석하는 인공지능 그리고 가상에서 생성된 정보와 지식을 현실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AR(증강현실)까지. 메타버스를 성공적으로 실현하려면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 발전하고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메타버스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인 생태계를 완전히 구축하지 못한 상황이다.

  김상윤 교수는 개별 기술 분야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5G 네트워크 기술과 VR 및 AR 기술, 콘텐츠나 데이터 기술 그리고 인공지능 등 다양한 영역의 기술을 조합해야 메타버스를 구현할 수 있어요. 메타버스 전체를 지원하는 사업보다 데이터 산업 활성화 같은 구체적인 접근 방식이 중요합니다.”

  김학구 교수는 메타버스가 가진 시공간적 확장성을 실현하려면 관련 하드웨어를 개발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새로운 정보통신기술 사업은 하드웨어 기술이 발전한 후 이를 뒷받침하는 소프트웨어 기술과 콘텐츠 산업이 뒤따르면서 성장합니다. 이에 비해 메타버스는 아직 편리한 사용성을 갖춘 고품질의 하드웨어 기기가 부족해요. 관련 기술이 점차 발전한다면 메타버스 시장에도 핵심 기기가 등장할 수 있죠.”

  메타버스 서비스 간 통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현석 교수는 진정한 메타버스 시대를 열려면 통일된 통신 규약인 프로토콜을 구축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메타버스 서비스 간 연결이 가능해지면 일상 경험을 메타버스 공간에 그대로 구현할 수 있을 거예요. 이를 위해 메타버스와 관련된 여러 프로토콜의 통합과 더불어 몰입형 미디어의 하드웨어 기술도 발전해야 합니다.”

  돌고 돌아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
  메타버스가 주목받으면서 새롭게 등장할 수 있는 사회적인 문제나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존재한다. 이미 그 위험성은 오늘날 디지털 환경에서 여러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2020년 5월, 로블록스에서 해커가 내부 시스템 접근권을 빼내 약 1억명의 이용자 개인정보를 유출한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해커는 일부 이용자 계정에 접속해 아이템을 팔기도 했다. 지난해 3월에는 아동성범죄 전력이 있는 20대 영국 남성이 로블록스와 어린이용 비디오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남자아이들에게 성적 접근을 시도했다가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사건도 있었다.

  김상윤 교수는 다가올 메타버스 시대에 대비해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메타버스 공간에서 아바타가 돌아다니는 것도 모두 데이터가 돼요. 그만큼 사생활 침해나 개인 정보 유출 같은 문제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죠. 현존하는 법과 제도가 메타버스 시대에 적합한 규정을 담고 있는지 선제적으로 공론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학구 교수는 메타버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윤리 문제를 언급했다. “메타버스 생태계에는 우리가 처음 보는 어려운 질문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메타버스 공간에서 폭행, 성희롱과 같은 범죄 등을 말하죠. 이러한 문제가 나타나기 전에 함부로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시민의식을 갖춰야 해요. 메타버스 콘텐츠가 지닌 시공간적 확장성과 편의성은 그 파급력이 엄청나기에 콘텐츠 제작자도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메타버스 세상을 그려낸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인 2045년에는 누구나 가상현실 ‘오아시스’에서 VR을 통해 상상 속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아마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메타버스의 미래도 이러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현실과 구분되지 않는 가상세계에서 살아가기에는 아직 그 실체가 구체화되지 않았다.

  천천히 쌓아 올린 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메타버스 바람에만 올라타려는 성급한 움직임보다 정확한 개념 합의부터 디지털 기술 도약까지 차근차근 나아가야 한다. 메타버스 생태계가 모두에게 공감을 주고 더 나은 삶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할 과제가 많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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