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혐오로 점철된 언론과 정치계의 행태
시혜적 시선을 거두고 당사자의 시선으로 봐야

‘바퀴를 열차와 승강장 틈 사이로 끼워 넣은 사진을 확보하고 자연스럽게 알려 고의적 열차 운행 방해 증빙, 여론전을 위한 보도 자료로 ‘할머니 임종 버스 타고 가세요 사건’ 활용 후 여론 급격히 악화.’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제작한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문건 내용이다.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 당시 열차와 승강장 사이 넓은 틈에 바퀴가 빠지는 사고가 있었다. 지하철이 시위로 지연되자 임종에 늦겠다고 항의하는 시민에겐 장애인 또한 열악한 이동수단으로 인해 어머니의 임종을 놓쳤다고 눈물로 사과했다. 하지만 해당 내용은 빠진 채 서울교통공사에 유리하게 편집된 보도 자료가 배포됐고 많은 언론이 편향된 보도 자료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특히 자극적이었던 키워드 ‘임종’은 포털에 장애인 시위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뜰 정도로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언론의 영향력을 망각한 신중치 않은 받아쓰기식 보도와 얕은 장애인권 인식은 국민의 장애인 비난 여론 형성과 20년 넘게 이어진 장애인 이동권 운동의 본질 흐리기에 일조했다.

  정치권은 어떤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는 시위가 진행된 3월 29일 경복궁역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를 만나 면담했다. 전장연은 선거 전부터 인수위에 정책요구안을 전달해왔다. 하지만 해당 면담은 이에 관한 인수위의 답변이 아닌 전장연의 정책 제안 설명을 다시 듣는 자리였다. 정책요구안 전달 시점이 한참 지나서야 전장연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냐’며 되물은 것이다. 면담 결과도 그저 ‘전장연과 소통했고, 요구안에 관한 답변을 검토하겠다’는 정도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실천, 하다못해 약속조차 없었다. 실로 보여주기식 면담이었다.

  전장연은 결국 정책요구안 답변을 20일까지 받기로 하고 인수위 측 요구사항인 시위 중단을 이행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는 SNS에 전장연의 시위 중단 발표에 관해 전장연이 시위가 비효율적임을 인지하고 포기했다고 조롱했다. 그는 ‘2호선은 후폭풍이 두려워 3호선이나 4호선 서민거주지역만 시위한다’,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라고 시위를 폄하해 당 내외에서 비판받은 바 있다. 국민의 권익과 평등을 위해 누구보다 노력해야 할 정치인의 책무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 약속이 아닌 장애인 단체 간 갈라치기로 문제를 타개하려 하고 있다.

  언론과 정치권이 차별의 시선과 기준을 대중에게 설파한다. 그들이 풀무질한 장애인 혐오가 한국 사회에 끓어 넘친다. 기저엔 이동권은 ‘정상인’이 장애인에게 베푸는 것이라는 시혜와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공리주의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들은 사과를 입에 달고 그들이 ‘욕의 무덤’이라고 부르는 지하철에 매일 스스로 들어가 투쟁한다. 더 무덤 같은 시설과 집에서만 갇혀 살 순 없기에.

  지금 글을 읽는 당신조차 은연중 장애인의 이동이 제한되는 것을 당연시한 적이 없는가. 2020년 기준 우리나라에 등록된 장애인의 88%가 후천적 원인으로 장애를 가졌다. 세상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아닌, 장애인과 ‘예비 장애인’이 함께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장애인은 타자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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