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학기 사회부에서 활동한 기자는 여론부에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사회의 주요한 논쟁을 다루면서 성장할 수 있었지만 공격적인 어투의 취재원에 조금은 지쳐있었기 때문이었죠. 그 화살이 기자를 향해있진 않았지만 온종일 부정적인 말을 듣다 보면 기운이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특유의 따뜻한 문장을 좇아 여론부를 선택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나치게 가벼운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여론부에서의 경험은 기자의 삶을 온전히 바꿔버렸습니다. 기자는 모든 것에 정답이 있다고 믿던 사람이었습니다. 불확실하고 모호한 것을 싫어하며 자기주장이 강해 고집이 센 편이었죠. 새내기 시절 여러 귀인들을 만나 사회적 약자를 거시적으로만 들여다보면 안 된다고 배웠지만 여전히 서툴렀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찾아 나서기보다 자주 보는 신문 속에서 목격하고 문제의식만 가지는 데 그쳤죠. 사회적 약자를 조명하는 언론인을 꿈꾸는 사람치곤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여론부의 ‘보통의 이야기’ 코너로 기자는 비로소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기자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이의 하루를 자세히 살펴봤죠. 그늘에 가려져 편견 어린 시선을 받는 사람들이 이에 맞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동정의 눈길로 바라보는 약자가 아닌, 같은 공동체의 동료로서 그들을 만났습니다.

  또 ‘강단 두드림’을 통해 멀게만 느껴졌던 교수님과 유쾌한 대화도 가져봤는데요. ‘아리아리 동동’, ‘안녕하CAU’에서는 여러 학내 구성원들과 소통하며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지면서 잊고 지냈던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주는 기쁨을 일깨웠죠. 개강호에 진행한 ‘중대신문이 만난 사람’ 코너에서 전 EBS 사장인 김명중 동문을 찾아봬 후배 사랑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기자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상이 다채로운 사람들의 즐거운 서사로 채워졌습니다. 

  이제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좋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각자가 뿜어내는 에너지도 모두 달라 취재를 다녀온 기자의 마음에는 항상 새로운 색깔이 덧칠해집니다. 이는 또 다른 한 주의 원동력이 되죠. 

  요즘 세상이 삭막해진 것 같습니다. 나와 다른 집단을 배척하고 서로를 향해 혐오의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죠.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한 사회를 논하기보다 자신이 누리는 것을 놓기 싫어 두 눈을 감아버리더군요. 각자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개인주의가 어쩌면 이기주의 혹은 배타주의로 변질된 걸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혹시 앞만 보며 달려가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 그 걸음을 멈추고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여봅시다. 나의 이야기와 그들의 이야기가 만나 분명 풍성한 화음이 될 겁니다.

소지현 여론부장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